2007년 1월부터 아파트를 포함한 모든 경비직에도 최저임금이 적용됩니다. 요즘 이것 때문에 아파트 주민여러분들이 걱정이 많으신 모양입니다. 이 최저임금법개정안을 추진한 국회의원으로서 저의 의견도 개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내니까 유명대학의 경제학과 교수님이 말씀하시더군요.
"임금이라는 것은 노동시장에서 수요과 공급에 의해 형성되는 시장가격이고 따라서 국가의 개입이 불필요한 부분이라서 나는 반대한다. 나는 오히려 지금 있는 최저임금법도 없애야 된다고 생각한다."
저는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 헌법은 국민의 기본권을, 인간으로서 누려야할 최소한의 존엄성을 시장이 아니라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고 했을까요? 그것은 시장의 효율성을 무시하거나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장점을 살리되 단점을 보완하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최저임금법은 일종의 사회법입니다. 시장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에 대해 정부가 보완적 역할을 함으로써 국민으로서의 기본권을 지킬 수 있도록 한다는 헌법정신과 사회적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 법입니다.
그런데 이 법에서 지금까지 소외된 국민들이 있었습니다. 감시근로자, 혹은 단속근로자(연속적이지 않다는 뜻)로 불리는 이른바 경비직입니다. 보통의 근로자들이 8시간 근무를 하는데 비해, 이 분들은 대부분 12시간 맞교대를 합니다.
이 분들이 최저임금법 적용대상에서 제외된 것은 근무시간이 일반적 근로자보다 50%나 많아서 시급으로 계산되는 최저임금(시간당 3100원)을 적용할 경우 아파트 주민, 빌딩 입주자들에게 너무 많은 부담이 갈 수 있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890원 때문에 경비아저씨를 해고하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이번에 개정된 최저임금법으로 많은 부담이 생기는 것일까요? 어떤 분들은 관리비가 한달에 몇 만원씩 오를 것처럼 말씀하십니다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렇지 않습니다. 우선 최저임금 전체를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80%(시급 2480원)만 적용합니다. 또 내년 시행 첫 해에는 70%(시급 2170원)만 적용합니다.
또 전체 아파트 중에서 10% 정도의 아파트만 이 법의 적용을 받게 됩니다. 나머지 90% 정도는 이미 최저임금 이상의 월급을 받고 계십니다. (80% 적용시) 이것은 아파트들을 실제로 방문해서 조사한 연구결과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럼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월급을 주고 있는 이 10%의 아파트들은 얼마나 부담이 늘까요? 조사연구에 따르면 80% 적용시 경비원 1명당 월 7만7000원의 인상 요인이 있습니다.
600가구가 사는 복도형 아파트의 경우 보통 8명의 경비원이 있습니다. 그렇게 따지만 월 61만6000원, 가구당 1000원 정도 더 내면 됩니다. 그리고 내년에는 890원만 더 내면 됩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정작 이런 얘기들이 아닙니다. 지금 네티즌들이 걱정하는, 아파트 반상회와 부녀회에서 나오는 얘기들은 제가 법 개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수없이 들었던 얘기들이었습니다.
"아파트관리비를 인상한다고 하면 경비를 줄이자고 할 것이다."
"경비원을 쓰던 것을 무인카메라로 바꿀 것이다."
"결국에서는 최저임금 적용해서 경비원들만 실직시킬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조사연구를 해보니 아파트 경비원들께서는 단순히 경비만 보는 것이 아니라 택배와 우편물을 받고, 찻길에 뛰노는 아이들을 보살펴주고, 엘리베이터의 이상 유무를 확인하고, 비오는 날이면 우산을 받쳐주고 계단의 빗물을 닦고, 이중 주차된 차를 함께 밀어주고, 음식물 쓰레기 수거와 분리수거를 도맡아 하고 있어서 경비업무 이외의 다른 업무의 노동강도가 상당히 높았습니다. 실제로는 여기에 열거된 일 외에 더 많은 일들을 하고 계십니다.
아파트 경비를 줄이거나 무인카메라로 바꾸면 이런 일들을 바랄 수 없거나, 주민들 스스로 순번을 돌아가며 해야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렇게 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조사결과가 나왔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지금도 부족합니다. 아파트 경비원 아저씨들은 내년에는 70%만 우리나라 국민이고 내후년부터는 80%만 우리 국민일까요? 한 달에 890원을 부담하기 싫어서 그분들을 모든 국민이 누리고 있는 기본권에서 제외시켜야 할까요? 그분들은 우리 국민이 아닐까요?
경비원 아저씨도 당연히 기본권을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그분들이 근로시간이 많다는 이유로 (사실 이것도 황당한 이유입니다만), 다른 국민들보다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 것이 당연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요? 저는 그래서도 안 되고, 우리 국민들이 그것을 잘했다고 할 것 같지도 않습니다. 저는 국민이 동의하면 지금이라도 재개정안을 내서 최저임금을 100% 다 적용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아파트는 890원보다 더 많은 돈을 부담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원칙입니다. 이해관계에 얽매여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원칙을 어그러뜨리는 일은 최소한의 수준이고 그 사회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한달에 수백원, 기천원의 돈을 아끼기 위해 모든 국민들 중에서 경비아저씨들만의 기본권을 현저하게 제한하는 것이 바람직한 기본권의 제한은 아닐 것입니다. 올해는 최저임금법이 제정된지 20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동안 경비직에 근무하시는 분들만 이 법의 예외였습니다. 21세기가 7년이나 지난 2007년, 여전히 이 분들이 최저임금법의 예외여야 할까요?
우리 국민이, 우리 사회 구성원이 하나의 공동체로서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것, 하나의 공동체를 유지하게 하는 것, 사회적 연대, 우리 사회에 지금 필요한 것들은 오히려 이런 것이 아닐까요? 세상이 점점 메마르고 정이 없어진다고 합니다. 그래도 저는 한달에 수백원, 기천원의 관리비를 줄이자고 경비원 한명 자르자고 할 국민들은 없을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그런 믿음조차 없다면 이런 최저임금법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저는 이런 모습을 그려봅니다. 내년 1월 30일, 아파트 주민 대표가 2007년 첫 달 월급을 경비원 아저씨께 드리면서 "최저임금법이 개정된 것 축하드립니다. 그동안 저희가 당연히 드렸어야 될 몫을 이제야 드립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런 말씀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조정식 기자는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