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감기에 걸려 며칠 째 몸앓이를 하다 모처럼 일어나 카레를 만들어 먹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피리연주자 강효선씨였다.
국립국악원 상임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는 그녀는 지난 6월 'Attraction'이라는 타이틀의 음반을 내고 한국적 월드 뮤직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이. 나는 그녀를 지난 12월 초 한국예술평론가협회에서 뽑은 '신인예술가상'을 수상하던 날 처음 만났다.
"오늘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있는데 보러 올래요?"
기침이 심해 약간 망설여졌지만, 첫만남에서 함께 와인을 마시며 공감대를 형성하였던 터라 직접 연주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었다. 단단히 채비를 하고 병원에 들러 주사도 한 방 맞고 세종문화회관으로 향했다.
공연을 두어시간 앞두고 찾아간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분장실1. 그녀는 나처럼 감기에 걸린 상태, 약을 먹고 어지러움과 메스꺼움을 호소하며 분장실 의자에 축 쳐져 있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간단히 식사를 마쳤다. 이윽고 공연 시간, 나는 객석으로 돌아가 앉았다.'무대에서 쓰러지는 건 아닐까?' 약간 걱정이 일어났다.
@BRI@공연장인 세종 체임버홀은 세종문화회관의 실내악 전용홀, 클래식 공연을 위해 특화된 극장으로 82.2㎡의 무대면적에 최상의 음향 조건을 갖춘 476석 규모의 홀 전체가 하나의 음향 반사판이 되는 음악 전용극장이란다.
네이버 검색을 해보니 세계적인 음향 컨설팅 전문가 전진용 교수로부터 음향 자문을 받아, 실내악에 적합한 최적의 소리를 내고 모든 좌석에 고른 음향이 전달될 수 있게끔 설계되었다는데 과연 '공명'이 뚜렷했다.
이번 공연은 2005년 기획했던 '눈으로 보는 우리의 소리' 공연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지정하는 '2006년 올해의 예술상' 본선에 올라 그 연장선상에서 기획되었다고 한다.
지난 2001년 1월 창단한 공연기획사 '베르디아니'는 그동안 다양한 장르를 소개하며 연주범위를 넓혀 왔다. 이번 2006년 송년음악회는 다른 나라의 노래를 소개하면서 한국의 정서를 생각 하는 자리로, 이번 공연에는 러시아 민요와 영국의 전통가곡 그리고 한국 노래가 만나고 클래식 기타 연주가 내내 흘렀다.
러시아의 노래는 현재 모스크바 국립음악원 오페라 극장 단원으로 활동 중인 베이스 이연성 , 한국의 노래는 국립국악원 민속단원이며 남원춘향제 대통령상을 수상한 이주은, 영국의 노래는 Boston song Festival 우승자인 테너 임상훈이 각각 불러 여러 감흥을 주었다.
피리 연주는 국립국악원 창작단원인 강효선 , 기타연주는 아리오소 기타합주단 상임지휘자이인 이기섭 , 2006년 베스트음반 ‘바람이 전하는 말’의 작곡자 기타리스트 권정구, 피아노는 현 서경대학교의 빅토르 교수가 맡았다.
'기타와 노래의 이야기'라는 제목처럼 기타와 피아노의 반주로 4개국의 노래가 연주되어 마치 종합선물세트를 선물받은 양 푸짐한 기분이 들었다. 특히 강효선씨는 무대에 서자 언제 아팠냐는 듯 열정적으로 피리를 불었다. 그녀의 음반에서 익히 들었던 것처럼 양악과 국악이 서로 끌어 안으며 절묘한 화음을 만들어 내었다.
공연 내내 들었던 감흥은 '배려받고 있다'는 기분. 목소리와 악기, 동양과 서양을 아우르는 다양한 정서를 느끼게 해주었으며 대중적이면서도 음악성이 높은 선곡 등이 돋보였다. 특히 공연 전반에 흐르는 클래식 기타 연주가 안정감있게 균형감을 선사했다.
공연이 끝나고 객석 여기저기서 '앵콜~'이 터져나왔다. 강효선씨의 피리와 권정구씨의 기타 연주로 로 영화 쉬리의 주제가 'When I Dream'을 연주했다. 막혀있던 코가 절로 뚫리며 몸 안에 편안한 에너지로 충전된 느낌이었다. 꽃다발도 없이 찾아간 손이 미안했다.
인사를 나누고 세종문화회관을 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탔다.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2006년이 저물어 가는 아쉬움과 신년의 설레임을 느낄 여유도 없었던 내가 보였다. 잠시 나를 돌아보는 여유를 갖게 해준 공연에 감사하며, 2007년 6월 '기타와 노래의 이야기 2편' 공연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