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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춘의 <아름다운 집> 표지
손석춘의 <아름다운 집> 표지 ⓒ 들녘
1938년에 시작되는 주인공 이진선의 일기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신학문의 꿈에 부풀어 철학을 공부하고자 연희전문에 입학했지만, 전쟁의 광풍이 밀려오는 식민지 조선의 상황 속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다.

일제 식민지 정책의 당위성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보도 태도에 분개하고, 독립운동가로 이름 높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변절해가는 모습에 절망하면서 청년 이진선은 사회주의에서 희망을 찾고, 혁명가의 삶을 살아가고자 다짐한다.

사회주의 혁명가 이진선의 삶을 일기 형식으로 보여주고 있는 손석춘의 소설 <아름다운 집>을 읽으면서 떠올린 책이 장준하의 <돌베개>였다. 학도병으로 끌려가 탈출한 뒤 임시정부를 찾아갔던 청년 장준하. 해방 후 이승만, 박정희로 이어지는 독재체제에 저항하다가 숨을 거둔 장준하의 삶이 해방 전후사를 살아간 한 지식인의 삶을 감동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장준하는 사회주의를 용납하지 않았다.

손석춘이 그려낸 혁명가 이진선은 장준하와는 달리 사회주의의 길을 걸었다. 연희전문 사상연구회에서 활동하다 검거와 함께 퇴학당했고 해방 후 조선공산당 재건에 뛰어들었다. 조선공산당 기관지 <해방일보>에서 언론활동에 전념한다. 이 무렵 연희전문이 연희대학으로 승격되면서 이진선에게 철학과 교수로 와줄 것을 제의를 받았지만 이를 거절하면서 일기에 이렇게 썼다.

지금은 철학을 수업할 때가 아니다. 철학을 실천할 시대다. (101쪽)

하지만 해방 이후의 상황도 순탄하지 못했다. 미군정과 친일 세력에 의한 조선 공산당 탄압,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 움직임, 소련군의 지원 속에 주도권을 장악한 북조선로동당과 남조선로동당(남로당)의 갈등 속에서 번민과 회의에 빠지기도 하지만, 순수한 동지들의 모습을 통해 다시 힘을 얻어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남과 북에 분단 정부가 수립되면서 남로당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사회주의자들은 어느 쪽에서도 인정을 받을 수 없었다. 친일파가 권력의 기반을 이룬 대한민국에서 사회주의는 박멸의 대상일 뿐이었다. 소련의 지원 속에 건설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도 김일성 중심의 권력이 강화되는 속에서 남로당 출신들은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전쟁의 와중에서 아내와 아들을 잃고 남은 일생을 사회주의 북한에 살면서 혁명 지도자로 출발해서 봉건 군주처럼 우상화되어가는 북의 권력체제에 실망하면서 살아가는 사회주의자 이진선의 마지막은 자살로 이어진다. 그 마지막은 이렇게 묘사되고 있다.

이야기는 여기서 모두 끝났다. 혁명과 전쟁의 한복판에서 모든 것을 잃고 평생을 수도승처럼 살아온 일흔여덟의 지식인 이진선은 결국 한 발의 총성으로 '사회주의' 제단에 삶을 바쳤다.(409쪽)

격동의 세월을 온몸으로 치열하게 살아간 한 지식인의 삶이 '아름다운 집'에서는 감동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돌베게를 통해 읽었던 장준하의 삶을 통해 느낀 감동이 또 다른 모습으로 되살아났다.

그럼 불꽃같은 삶을 살다 간 혁명가 이진선이 추구하고자 했던 세상은 무엇이었을까? 1950년 9월 20일자 일기에서 이진선은 아들 서돌의 말을 통해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아부지 어디 가는지 난 다 안다."

근심이 가득한 여린을 바라보며 난 웃었다.

"응, 그래? 우리 서돌이 똘똘하구나. 어디 가는데?"
"혁명하러 가시죠?"

다시 여린과 눈길이 마주치며 눈웃음을 지었다.

"우리 아들이 혁명이 뭔지를 알까?"
"그럼요. 왜 몰라요?"

서돌이의 해맑은 눈이 다시 진지해졌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두 잘살게 아름다운 집을 짓는 거에요. 맞죠?"(134-135쪽)

아름다운 집

손석춘 지음, 들녘(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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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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