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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때 시간이 적혀있는 강화도만의 달력입니다. 아침 저녁으로 바닷물이 들고 남을 표시해 놓았습니다.
물때 시간이 적혀있는 강화도만의 달력입니다. 아침 저녁으로 바닷물이 들고 남을 표시해 놓았습니다. ⓒ 이승숙
강화도에는 강화도만의 달력이 있다

강화로 이사 온 이듬해 여름이었다. 어느 날 밤, 아는 집에 밤마실을 갔다. 그 집 마당을 들어서니 뜨락에 신발들이 여럿 있었다. 모두 밤마실을 온 거였다. 그 날 밤 우리는 흥에 겨워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놀았다.

흥이 도도해지자 새날이 아빠 이병찬씨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또 다른 사람이 일어나서 시를 한 수 읊었다. 새별이 아빠 오영호씨는 한 쪽에 치워져 있던 장구를 꺼내더니 장단을 맞춰주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다 같이 어깨춤을 추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참으로 흥겨운 자리였다.

밤을 새워서 놀았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그런데 누가 그랬다.

@BRI@"바다 보러 가자!"

그 한 마디에 치기어린 소년들처럼 환성을 지르면서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리고 트럭 뒤에 올라타고 바다를 향해 달렸다.

안개가 엷게 낀 들판을 가로질러 동막해수욕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바다 속으로 뛰어 들었다. 마흔을 넘긴 사람들이 마치 애들처럼 물에서 철없이 놀았다. 그 순간 우리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웠다.

그날 새벽의 일탈이 너무 좋았던 우리는 그 후로 매일 바다로 나왔다. 이른 아침과 저녁에 바다에 가서 수영을 했다. 외지에서 온 사람들은 낮에 놀고 햇살이 빠지면 바다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우리는 해를 피해서 저녁과 새벽에 주로 수영을 하러 갔다.

그때 꼭 필요했던 게 바로 물때를 알려주는 달력이었다. 물이 들고 나는 때를 달력을 보고 알았고 그때에 맞춰서 여름 내내 바다에 놀러 갔다.

강화도의 여러 기관과 업체에서 나눠주는 달력에는 물때 시간표가 다 들어가 있습니다.
강화도의 여러 기관과 업체에서 나눠주는 달력에는 물때 시간표가 다 들어가 있습니다. ⓒ 이승숙
물때 맞춰 즐기는 바다 수영, 강화살이의 또 다른 즐거움

여름이면 새벽마다 수영을 하러 가는 꿈같은 세월을 몇 년 더 살았다. 그러다가 애들이 자라자 그 즐거움을 슬며시 잊어버리게 되었다. 머리가 굵어진 애들은 더 이상 새벽 수영을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래서 강화에서 사는 즐거움 중의 하나였던 새벽 수영은 점점 기억에서 멀어져 가게 되었다.

해마다 여름이 되면 아는 사람들이 강화로 많이 놀러 온다. 그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우리는 물때 시간표가 있는 달력을 꼭 챙긴다. 바다 수영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알려주기 위해서는 아니다. 그들은 바다 수영보다는 갯벌에서 놀기를 더 좋아한다. 그래서 언제 갯벌이 드러나는지를 알려주기 위해서 달력을 챙긴다.

바다는 하루에 두 번 물이 들어왔다 나간다. 그렇지만 매일 일정한 시간에 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건 아니다. 바닷물은 매일 조금씩 시간이 바뀌면서 들고 난다. 오늘 아침 9시 1분에 최고조로 물이 들어왔다면 내일은 아침 9시 50분께에 물이 최고조로 높이 들어온다. 그리고 그 다음날은 아침 10시 50분께에 물이 최고로 높아진다. 이렇게 하루에 약 50분 가까이씩 늦게 물이 차고 들어온다.

새로 얻어온 달력을 벽에 걸었다. 새 달력이라서 두툼하고 깨끗했다. 달력 한 장에는 30일 정도의 날짜가 주어진다. 1년 12달은 길어 보이지만 한 달 30일은 금방이다. 어영부영 하다보면 일 년이 후딱 가버린다.

기대에 찬 마음으로 새 달력을 넘겼다. 올해도 열심히 살아야겠다. 바쁘다는 핑계로 찾지 않았던 이웃들도 찾아봐야겠다. 한 달은 금방이고 1년도 금방이다. 뒤로 미루기엔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 그때 그 사람들을 다시 찾아서 올 한해도 생생한 기쁨으로 채워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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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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