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사형이 결정된 지 불과 4일만에 전격적으로 처형되었다.
아랍의 위성방송인 알 자지라는 30일(현지시각) "일반인들도 사형이 확정된 뒤 4일 만에 교수대로 끌려가는 경우가 없다"며 "미국과 이라크 정부가 지나치게 서둘렸다"고 평했다.
이라크 법에 따르면 사형이 확정된 지 한달 안에 처형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봐도 사형 확정 4일만에 교수형에 처한 것은 속전속결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후세인은 지난 1982년 바그다드 북부 두자일 마을 주민 148명을 사형한 혐의로 처형됐다. 그러나 지난 1987~1988년 독가스 등을 사용해 쿠르드 주민 18만명을 죽인 혐의에 대한 재판이 내년 1월부터 시작될 예정이었다. 후세인의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단죄가 필요했다면 이 재판이 끝난 뒤에 처형해도 됐다.
실제 일부 쿠르드족 가운데는 후세인의 처형에 기뻐하면서도 한편 쿠르드족 학살 사건의 진상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게된 것에 대해 실망을 표시하는 사람들도 있다.
미국은 관여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BRI@현재 미국 정부는 후세인 처형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상 미국의 허수아비 정권에 불과한 현 이라크 정부가 독자적으로 후세인 처형을 결정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라크 정부가 독자성을 갖춘 다음에 후세인을 처형했다면 최소한 모양새는 갖출 수 있었다.
결국 조지 부시 행정부는 후세인 처형을 대단히 서둘렀다는 의미가 된다. 몇가지 이유를 꼽을 수 있다.
지난 2003년 3월 미국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선제예방공격 차원에서 이라크를 공격했다. 그러나 2년동안 이라크 전역을 샅샅이 뒤졌지만 대량살상무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라크 전쟁의 명분이 없어진 것이다.
지난 2003년 5월 이라크 전쟁 종전 선언을 했으나 저항세력의 끈질긴 공격으로 현재 미군 사망자만 2998명에 이른다. 미국 국민의 70% 정도가 이라크 전쟁이 잘못되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는 시점에서 부시 행정부로서는 무엇인가 획기적인 전리품이 필요했다. 바로 후세인의 속전속결식 처형이었던 것이다.
두자일 마을 주민 148명을 학살한 혐의로 후세인을 처형함으로써 비록 대량살상무기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이라크 전쟁은 정당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다.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이번 후세인 처형은 미국이 이라크 침공이후 대량살상무기 발견에 실패하고 이라크 정정불안 등 참담한 상황을 맞았지만 후세인의 반인도적 행위에 대한 처단을 통해 개전 명분을 충족시키려는 의미도 있다"고 분석했다.
또 하나는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에서 발빼기를 하는 이정표로 삼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내년 1월 이라크 전쟁에 대한 또 다른 전략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부시 대통령은 현재 1만5000~3만명의 미군 증파를 얘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혼란스러운 이라크 상황을 좀 더 빨리 정리함으로써 되레 좀 더 빠른 철군을 위한 환경 조성을 위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후세인 처형은 "이제 이라크 전쟁은 역사적으로 끝났다"는 명분으로 내세울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미국의 의도가 제대로 관철될 것으로 보는 견해는 드물다.
지난 30일까지 12월 한달동안 이라크 안 미군의 사망자는 108명에 이르러 올 해 들어 한달 사망자로는 최고를 기록했다. 각종 종파간의 갈등으로 이라크 민간인들은 12월 한달동안 하루 평균 76명씩 사망했다. 후세인이 처형된 날에만 이라크 전역에서 자살 폭탄 테러 등으로 80명이 숨졌다.
부시에 되레 정치적 부담될 수도
지난 2003년 12월 티크리트의 한 농가 토굴속에서 후세인이 잡혔을 때 미국은 환호했다. 수염이 덮수룩한 상태로 무기력하게 끌려나오는 후세인의 모습을 대대적으로 방영함으로써 저항세력의 공세가 무기력하게 될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이후 이라크 게릴라들의 공세는 계속되었다. 전쟁은 질질 끌게되었고 결국 지난 11월7일 미 중간선거에서 공화당 정부가 패배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번에 후세인이 처형당했다고 저항세력의 공세가 누그러질 기미는 거의 없다. 쿠르드족이나 시아파, 쿠웨이트나 이란인들은 후세인의 처형에 환호하지만 아랍권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수니파들은 분노하고 있다. 이슬람 명절인 하지를 맞아 사우디의 메카를 순례중인 전 세계의 이슬람 교도 대부분은 후세인의 처형에 반감을 보였다.
이라크가 종파간의 갈등으로 결국 북부의 쿠르드족, 남부의 시아파, 중부의 수니파 등 3개 지역으로 분할 될 것이라는 예상이 계속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편 부시 대통령으로서는 이번 후세인의 처형이 '정치적 이벤트'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부담이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은 "후세인 전 대통령 처형은 이라크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후세인 전 대통령 처형이 심판인지 보복인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이 대표적이다.
부시 대통령의 맹방으로 3000명의 병력을 이라크에 보냈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도 "이번 처형은 정치적, 역사적으로 실수가 될 것임을 확신한다"고 밝혔다.
부시 행정부가 후세인을 처형한 명분은 민간인 학살이다. 그런데 이라크 전쟁 뒤 무고하게 죽은 이라크인은 조사 기관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 5만명에서 최대 20만명에 이른다.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간 근본적 원인은 바로 조지 부시라는 말이 나온다. 처형된 후세인과 부시 대통령이 묘하게 '오버랩'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후세인이 처형된 직후 미 백악관은 "그의 사형은 이라크 민주화를 위한 이정표"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과연 후세인의 죽음이 이라크 민주화를 위한 이정표가 될 지 아니면 최소 3개 지역으로 분열되는 분기점이 될 지 속단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