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20대 재테크에 미쳐라>. 2006년 마지막 주, 서울의 한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 1위 자리를 차지한 책 제목이다(얼마 전에는 초등학생이 천만원을 어떤 식으로 모았는지를 말하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도 있었다).
세상이 바뀐 까닭에 20대 젊은이에게 사회과학 이론서 따위를 권했다간 싫은 소릴 듣는다는 것 정도는 안다. 그럼에도 20대(30대나 40대만 되어도 이러지 않는다)에게 재테크에 미치라고 공개적으로 권할 정도인 줄은 정말 몰랐다. 그런 책이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 팔리는 책이라는 건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대한민국 20대가 모두 재테크에 미쳐 있는 상황을 떠올려 보자. 끔찍하지 않은가?
하지만 다행히도 세상사람 모두가 부자가 되기를 소망하고, 물질의 축복을 바라며, 재테크에 미쳐 있는 건 아니다. 그 희망의 증거가 될 만한 책 한 권을 소개한다.
"재산이란 용어가 오직 경제적 가치로만 이해"되고, "인간의 능력은 창조성을 발전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재산의 증가를 위해서만 쓰도록 강요"받는 사회, 인간관계마저 "정신적 이로움이 아니라 경제적인 필요에 의해 제한"되는 현실을 개탄하는 다양한 인물들의 목소리를 한 군데 모은 책, 바로 <자발적 가난>이다.
자발적 가난이란 무엇인가? 안드레 밴던브뤼크는 이렇게 설명한다. "자발적 가난은 욕구의 결핍에서 나온다. 자발적 가난은 이러한 결핍에 만족한다. 자발적 가난은 꼭 필요한 최소의 것으로, 존재의 단순한 골격만으로 부유함의 모든 욕구를 대체한다. 자발적 가난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이며, 하나의 기원이며, 성취이다." 말이 조금 어렵다. 자발적 가난을 이야기 하는 다른 이들의 목소리를 좀 더 소개하자.
"문명화란 불필요한 필요의 끝없는 확장이다" – 마크 트웨인
"근본적인 문명화라는 삶의 진정한 알맹이는 필요를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신중하고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데 달려 있다" – 간디
"늘 명심하라. 행복을 위해 필요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가난에 대한 사랑은 우리를 스스로의 군주로 만든다" – 성 베르나르
"불쌍한 부자들, 그들이 가진 것은 고작 돈뿐이다" – 톰 무어
"부는 노예 제도의 외교관이다" – 세네카
"처음에는 심술궂은 의지에서 탐욕이 솟아나지만, 채워짐에 따라 탐욕은 습관이 된다. 그리고 저항하지 않는 습관은 필수가 된다" – 아우구스티누스
올해엔 '자발적 가난'에 대해 생각해 보자
@BRI@얼핏 미친 소리처럼 들린다. 하지만 최소한 대한민국 20대를 모두 재테크에 미치도록 만드는 것 보다는 덜 미친 소리다. 모두가 재테크에 미쳐 있는 사회와 모두가 자발적 가난을 택한 사회, 당신이라면 둘 중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
나 역시 이 책을 읽을 때마다 긴가민가하다. 이 책을 아무리 반복해서 읽어도 자발적으로 가난을 택할 결심을 하진 못했다. 하지만 "부자 되세요"가 덕담이 아니라, 모욕이 될 수도, 한 편으로는 저주가 될 수도 있다는 건 분명히 깨달았다.
새해가 밝았다. 지난 한 해 오로지 돈만 바라보고(이 표현이 경망스럽게 여겨진다면 '오로지 재테크에만 관심을 갖고'로 바꿔도 좋다) 살아 왔다면, 2007년 올 해는 다른 데도 관심을 가져 보자. 지난 한 해 부자 될 욕심과 노력들이 날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못했다면, 올 해는 자발적 가난에 대해서도 한번쯤 생각 해 보자.
자발적 가난이 엄두가 안난다면 부에 대한 집착이 우리 삶을 얼마나 좀 먹고 있느지 정도만이라도 돌아 보자. 2007년에도 모두가 재테크에 미쳐 있어서야 되겠는가? 그런 세상을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 줄 수는 없다. 새해 벽두에 자발적 가난을 권하는 까닭이다.
덧붙이는 글 | <자발적 가난>
지은이 : E.F.슈마허 외
엮은이 : 밴던브뤼크
옮긴이 : 이덕임
펴낸곳 : 그물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