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처형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 전 세계 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퍼지면서 파문이 더 커지고 있다.
이 동영상에는 목에 밧줄이 감긴 후세인에게 누군가 시아파 지도자의 이름을 부르고 후세인에게 "지옥에나 떨어져랴"고 저주를 퍼붓는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아랍권의 90%를 차지하는 수니파는 원래 후세인에게 동정적이었는데 동영상이 유포되면서 종파적 갈등은 더욱 커졌다. 1일 후세인의 고향인 티크리트에서는 수천명의 군중들이 소총을 공중에 쏘아대며 그의 죽음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2일(현지 시각) 누리 알 말리키 이라크 총리는 누가 욕설을 하고 처형 장면을 녹화해 유포했는지에 대해 공식 조사를 명령했다. 조사위원회는 이라크 내무부 산하에 3명의 위원으로 꾸려졌다.
AP통신, AFP통신 등에 따르면 후세인을 기소했던 검사인 문키트 알 파룬은 네덜란드의 TV2와의 인터뷰에서 "정부의 고위 관리 2명이 휴대폰을 꺼내 촬영했다"며 "아마도 이들은 동영상을 위성 TV에 팔아 돈을 벌기 위해서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관리들의 이름과 이라크 정부가 촬영을 허락했는지 여부는 알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후세인의 사형 장면은 이라크 정부도 공식 기록했다. 그러나 후세인 처형 직후 이라크 정부가 배포한 동영상에는 음성이 담겨있지 않다. 이에비해 아랍의 위성방송 알 자지라 등과 인터넷을 통해 유포되고 있는 2분30초 정도의 휴대폰 동영상에는 음성이 들어있다.
후세인의 처형 현장에는 모두 25명이 있었다. 이 가운데 14명은 검사·판사·보안요원·의사 등 이라크 정부 소속의 관리였다. 또 5명의 두건을 쓴 사형 집행인이 있었다. 이들은 공식 기록원을 제외하고는 휴대폰을 소지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정부 관리 2명은 몰래 가지고 들어간 것이다.
종파적 상징이 들어있어
@BRI@비공식 동영상에는 후세인을 모욕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후세인이 교수대에 끌려가자 누군가 "모하메드와 그 후손을 위해 기도하며 적들에게 저주를 내리시고 모하메드의 아들인 무크타다 (알 사드르), 무크타다, 무크타다"라고 외친다. 무크타다 알 사드르는 6만 병력으로 이뤄진 마흐디 여단을 이끌고 있는 이라크 시아파의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이다.
후세인이 "이게 남자답게 행동하는 것이냐?"고 조소하자 누군가 "지옥에나 떨어져라"라고 욕을 한다. "모하메드 바키르 알 사르드여 영원하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바키르 알 사드르는 지난 1980년 후세인에 의해 처형당한 시아파 지도자다.
후세인 조롱이 계속되자 파룬 검사가 "이제 그만! 이 사람은 곧 처형될 사람이다"고 제지하는 목소리도 들어있다.
후세인 처형 장면을 봤던 시아파 정치인인 사마 알 아스카리는 2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후세인에 대한 욕설은 정부 관리가 아니라 경비병들이 한 것"이라며 "이들은 교육받지 못한 자들"이라고 주장했다.
AFP통신은 "많은 아랍 언론에 등장하는 비평가들은 이런 장면이 법의 집행이라기 보다는 종파적 린치처럼 보인다고 비판하고 있다"며 "여기에 사형이 금지된 이드 알 아다에 후세인이 처형된 것도 불만을 키웠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후세인이 교수대 위에 서서 마지막 기도를 하는데 누군가 사드르의 이름을 부르면서 이를 방해했다"며 "이런 모습들은 수니파의 분노를 더욱 촉발시키고 있으며, 말리키 정부의 종파적 특성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식 절차 지키지 않은 사형 집행
여기에 이번 사형이 잘랄 탈라바니 대통령 등의 서명없이 누리 알 말리키 이라크 총리(시아파)의 서명만으로 집행된 것도 수니파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이라크 법에 따르면 사형 집행에는 대통령과 2명의 부통령의 서명이 필요한데 이것이 없이 총리 서명만으로 사형이 집행된 것이다. 쿠르드족인 잘랄 탈라바니 이라크 대통령은 후세인 처형에 반대해왔다.
이와관련 <뉴욕타임스> 등은 잘마이 칼릴자드 이라크 주재 미국 대사는 후세인의 처형을 14일간 연기해줄 것을 말리키 총리에게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고 전했다.
말리키 총리는 29일 밤 몇시간 안에 후세인을 처형하기로 결심했다. 결국 그의 고집을 꺽지 못한 미국 정부는 후세인을 그동안 수용되어있던 미군 기지에서 처형장인 카다미야 감옥까지 헬기로 안전하게 이송해주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이라크에 있는 미국 정부 관리들의 주장이다.
후세인은 미군 블랙호크 헬기로 실려 30일 새벽 5시30분 카다미야 감옥-후세인 정권 당시 비밀 경찰이 정적을 처형하던 장소-으로 옮겨졌다. 헬기에 탑승하기 전 또 카다미야 감옥의 처형장 밖에서 휴대폰 등에 대한 검색이 있었으나 이라크 정부 관리 2명은 몰래 가지고 들어갔다.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의 맹방이었던 영국의 존 프레스콧 부총리도 2일 "사담 후세인의 처형은 비참한 일"이라고 비난하면서 "솔직히 말해 이런 종류의 기록물이 공개된 것은 절대 용납될 수 없다, 이에 관련된 사람들은 누구든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례적인 반응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