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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야마 부시코>라는 영화가 있다. 내용은 '고려장'과 비슷한 이야기다. 일본 고대의 산촌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인데 그 마을에서는 70세가 되면 '나라야마'라는 산에 버려져 거기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불문율로 되어 있다.
다들 너무도 가난하여 노동력을 상실한 노인은 없애버려야만 어린 핏줄들이 살아 갈 수 있기 때문에 생긴 풍습이다.
노인병원에 하루 도우미로 갔었다. 팔순 어머니를 곧 모시게 되는 나는 꼭 노인전문 돌봄 시설에 가서 노인돌보기 실습을 하고 싶었다. 이 병원에서 하루를 살면서 <나라야마 부시코>를 떠올렸고 현대판 고려장을 생각했다.
@BRI@내가 노인전문병원에 간 것은 오직 한 가지 이유였다. 힘도 잃고, 정신도 희미해진 노인들의 다양한 모습들을 보고 각각의 돌보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다. 어머니를 모실 때 마음만 앞서고 요령이 없으면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선입견 없이 몸을 못 쓰는 노인들의 실태를 잘 살펴보고 돌보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내 바람이었지만 신산스런 상념이 하루 종일 오락가락했다.
병들고 힘 못 쓰는 부모를 버린다는 면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자기 집에 모시지 않겠다는 결정은 똑 같아 보였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목숨이 연장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현대 의술과 복지제도의 힘에 의해 시설에서 목숨을 이어간다는 사실은 확실히 다른 점이다.
고려장과 같다니…, 노인복지제도나 실버산업에 대해 내가 대단히 살벌하게 얘기하는 것처럼 들릴지 모른다.
부모를 산 채로 내다 버린 것은 입을 하나 줄여야만 새끼들이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이유가 더 많아졌고 더 고상해졌다. 더 이상 부모를 모실 수 없는 여러 가지 이유는 이미 사회적으로 공인받고 있기까지 하다. 그 결과물이 노인병원이고 노인전문요양시설이다.
이 모든 것들이 내 눈에는 새롭게 단장을 한 현대화된 고려장, 현대화된 노인 버리기 풍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언제부터 부모 모시는 것, 노인 돌보는 것이 '전문직'이 되었고 '전문능력'을 필요로 하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여러 말 할 필요 없을 것이다. 우리가 엉뚱하게 살기 시작하고 불필요한 삶의 방식을 선택하고 나서부터임이 분명하다.
어느 할머니는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주문처럼 같은 소리를 반복해댔다. "아이고 어쩌꼬. 아이고오 하나님. 아이고오 나 어쩌고오"하면서 눈을 부리부리 홉뜨고 목소리는 어찌나 큰지 병실이 쩌렁 울렸다. 허공을 휘잡기도 하고 지나가는 사람을 손짓하며 계속 그러고 있으니 모든 사람들이 쳐다보지도 않고 외면하고 있었다.
한 할머니는 계속 투덜거렸다. 간병인이 발톱을 깎아 주는데 온갖 트집을 잡고 투덜거렸다. 나를 안내하던 수석 간호사가 그 할머니를 가서 꼭 안아 주었더니 갑자기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서럽게 우는지 처음에는 한풀이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했는데 할머니의 한풀이가 예사롭지 않았다. '내가 글만 쓸 줄 알면 만리장성을 쓸 거야. 만리장성을. 내가 그렇게 키우지 않았는데 이것들이 나를 여기다 갖다 버리고…"라면서 울었다.
발톱 깎는 문제를 자꾸 투덜거렸지만 속내는 딴 데 있었던 것이다. 속속들이 내막을 다 아는지 간호사가 할머니를 껴안은 채 같이 흐느껴 울었다.
음식을 떠먹여야 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죽을 먹이고 있었는데 좀 천천히 조금씩 먹을 수 있게 했으면 싶었지만 간병인은 숟가락 가득 죽을 떠서 "자아, 자아"하면서 규칙적으로 음식을 입에 밀어 넣었다.
'죽'이라는 이름의 영양제를 입으로 주입하는 것으로 보였다. 음식은 하늘이다. 사시사철 하늘기운 땅기운이 스며 있는 생명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하늘도 생명도 아니었다. 숟가락이 들어오기 전에 음식을 넘겨야 하는 그 할아버지는 자꾸 죽을 흘리셨고 간병인은 다음 노인에게 밥 먹을 준비하라고 지시하고 있었다.
어머니를 직접 모시기로 하고 향과 물과 그릇과 음악과 그림과 색과 꼴을 준비하고 어머니의 몸 상태를 생각하며 집을 아예 새로 고치고 있는 내 눈에 노인시설들이 곱게 보일 리 없다는 것을 안다.
아무리 환경운동가가 원장인 노인병원이지만 누운 자리에서도 문만 열면 하늘이 보이고 나무도 있고 새들의 지저귐도 들리는 집을 만드는 내게 그 노인병원이 눈에 찰 리가 없다. 그러나 우리의 왜곡된 삶의 선택이 부모를 노인시설로 보내고 있다는 내 판단에는 변함이 없다.
원장선생뿐 아니라 수석 간호사와 오래 면담을 했다. 여러 사례들도 들었고 내 조건에서 선택해야 할 경우들에 대해 조목조목 물어가며 적었다. 간호사는 종이접기나 밀가루 반죽으로 모형 만들기가 좋다고 권했다. 노인이 소일거리를 갖고 대화상대가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였다.
이곳의 노인들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과 섬김의 흔적이 조금이라도 묻어나는 것은 오직 돈의 힘이고 원장선생의 고귀한 정신 때문으로 보였다. 모든 병원 관계자들은 얼굴이 환했고 친절했다. 원장은 병실 순회 진료를 하면서 참 유쾌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가위바위보 게임도 했고 수수께끼 풀기도 했다.
나의 현장실습을 흔쾌히 받아 준 원장선생은 그랬다. 유산이라도 좀 있는 노인네들하고 찢어지게 가난한 노인네들은 자식들로부터 받는 대접이 다르다고 했다. 병원을 찾아오는 횟수나 장례식 때 빚어지는 풍경들도 적나라하게 말해 줬다.
홀대하던 부모가 죽었을 때 자식들이 홀연히 나타나 소중한 '상품'으로 대하는 경우에 대해 들었다. 명절이나 연휴가 있으면 부모의 임종시간을 조절하기 위해 호흡기를 사용하는 자식들 이야기도 들었다. 호흡기가 있으면서 안 쓰면 법 위반으로 처벌받는다고 했다. 그래서 이 병원장은 생명에 대해 오랜 연찬과 고심 끝에 호흡기를 설치하지 않기로 했단다.
한 할아버지는 물리치료실에서 내 도움을 받으면서 신바람이 나기 시작했다. 한국전쟁 때 고지를 누비던 이야기를 했다. 총알이 사람을 피해 다닌다고 했다. 절대 사람이 총알을 피할 수는 없다고 했다.
총알이 사람을 피해 다닌다? 그렇다면 병과 늙음도 한 동안 우리를 피해 주는 것이고 절대 사람이 피할 수는 없다는 말인가?
그 할아버지는 재산을 모아 자식들에게 손 안 벌리고 요양비를 다 대고 있다고 했다. 이때 <나라야마 부시코>의 뒷부분이 떠올랐다. 70살이 다 된 아버지 '오린'은 안절부절 못하는 아들 '다츠헤이'를 보다 못해 자기가 더 이상 쓸모없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아무도 모르게 멀쩡한 이빨을 부러뜨리는 장면이 떠올랐다.
자식에게 양심의 가책을 덜어주고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한 어버이들의 선택도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구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