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부자인 사람하고 가난한 사람하고 결혼하면 세상에 가난한 사람은 없어질텐데…."

어렸을 때 보았던 어떤 드라마의 주인공 어린이의 말입니다. 같은 반 친구의 학용품을 허락없이(?) 빌려 쓰던 달동네의 가난한 초등학생이 선생님에게 내뱉던 이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정다운님은 제가 최고랍니다"

@BRI@대학을 졸업하기 전, 저는 당시 21살이던 지금의 정다운님(이름 불러주는 것을 좋아해서 실명을 거론했습니다)을 만나 5년의 열애 끝에 결혼했습니다.

장인 장모님은 안정된 초등학교 교사로 '사'자 들어가는 사위도 볼 수 있는 딸이 무슨 데모하는 단체에서 일하는, 다섯살이나 많은 사람하고 결혼이냐며 유학이라도 가라며 반대를 하셨지요.

그나마 그런 사람이 가끔 텔레비전에도 나오고 신문에도 나오고 해서 위안을 삼았는데 더구나 이제는 다 망해간다는 농사를 짓겠다고 하고 있으니, 차마 말씀은 못하셔도 얼마나 답답하고 기가 막히겠습니까.

그런데도 우리 정다운님은 잘난 거 하나 없는 제가 최고랍니다. 제가 농사지으러 간다고 했을 때 두말 않고 함께 했으며, 지금도 돈도 못 벌고 명예도 없고 매일 땀 냄새 풍기며 노동일 하는 제가 최고랍니다. 결혼한 지 만 5년 되었으니 한 10년 쯤 되면 그 콩깍지가 벗겨질까요?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아내가 교사라고 말하면 의외라는 반응과 함께 "돈 걱정은 안 하겠네" 하는 식의 표현을 합니다. 아내인 정다운님도 남편이 농부라 말하면 그 얼굴에서 놀람과 안쓰러운 표정을 읽는다고 합니다.

두 경우 다 경제적인 문제를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 같습니다. 부정할 수 없습니다. 굳이 변명을 찾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혹시 <벗(백남룡·1988)>이라는 북한 소설을 아십니까? 화려한 인민배우와 공장의 선반공인 두 부부가 신분과 생활의 차이로 인해 겪는 갈등과 사랑 얘기입니다. 요즘 여기 나오는 두 주인공이 우리 부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교사 아내, 농부 남편'이 잘못된 조합인가요?

농촌으로 들어와 살면서 한해 두해가 갈수록 다툼이 늘어납니다. "동료 친구 다 가는 대학원 가겠다"는 정다운님에게 전 "지금은 안 된다"고 다투고, "해외 연수라도 한 번 가고 싶다" "안 된다"고 다투고, "새 옷 좀 사야겠다" "다음에 사자"고 다투고….

남자와 여자는 생각이 다르고,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니 다투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겠지요. 그런데 저희 부부는 큰 다툼도 작은 다툼도 관통하는 하나의 맥이 있습니다. 바로 시간과 돈의 씀씀이에 관한 것이지요.

교사인 정다운님은 주위에 선생님들밖에 없습니다. 친구도 선배도 후배도 거의 다 초등학교 교사입니다. 이제야 알게 된 사실인데 선생님들은 대학원을 거의 다 다니고 요즘은 외국도 많이들 다니시더군요. 또 부부교사가 많다고 하는데 말은 안 해도 정다운님도 많이 부러워하고 있을 겁니다.

반대로 저는 주위에 농사꾼밖에 없습니다. 온통 관심은 어려워만 가는 농촌, 농사 얘기뿐입니다. 이런 상황이니 저녁먹고 나누는 대화가 자연스럽게 어울리기가 힘이 듭니다.

그래서 사람은 끼리끼리 어울려야 되는 것인가요? 교사 아내와 농부 남편은 잘못된 조합인가요?

TV 속 얘기가 현실이 되기를 꿈꿉니다

아닙니다. 지금은 아직 저희가 부족해서일 겁니다. 농부인 제 입장에서 보면 여전히 정다운님은 제게 너무나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아내입니다. 못난 저를 최고라 생각하는 마음이 고맙고, 정말 열심히 아이들을 사랑으로 가르치는 선생님인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가끔 정다운님은 "내 남편이 교사가 아니라서 너무 좋아"라고 말합니다. 땀 흘리며 땅을 일구고 생명을 가꾸는 농부인 남편이 믿음직스러워보이나 봅니다. 교사라서 못 보는 세상을 남편 때문에 보고, 농부라서 못 보는 세상을 아내 때문에 보니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모 재벌의 가계도가 뉴스에 보도된 것을 보았습니다. 정·재계가 다 한 식구인…. 마치 누가 일부러 그렇게 정략결혼이라도 시키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에이~ 아니겠지요?

그러나 꿈꿔 봅니다. 요즘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도 나오듯 연변 처녀가 재벌가의 며느리가 되는 것이 별 일이 아닌 세상을. 달동네의 소년 가장이 말하듯 가난한 사람이 없어지는 세상을 말이지요.

그러면 교사 아내와 농부 남편인 저희 부부를 이상한 눈으로 보는 사람도 없어지겠죠?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윤요왕씨는 귀농한 농사꾼으로, 공부방 교사로, 지역활동가로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댓글

인권연대는 1999년 7월 2일 창립이후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에 따라 국내외 인권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인권단체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