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필리핀 바나우에에서 새벽 5시에 출발하여 해발 2000m가 넘는 코딜레라 산맥을 넘어 지프니는 달린다. 천길 절벽 밑으로 아스라이 계곡물이 흰 물거품을 내고 흘러가고 있다.
3시간을 넘게 우리는 부족의 이름을 그대로 지역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는 본톡과 사가다를 향해 가고 있다.
이곳은 산세가 험하지만 금, 은 등 광산지대로 산 정상까지 오르는데 바나우에 만큼은 덜 위험해 보였다.
산 정상에 오르니 겨울을 느끼게 하고 아침 여명과 함께 발아래 펼쳐지는 구름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본톡지방의 또 다른 라이스 테라스
산악지대 사람들이 일구어 놓은 생명줄인 계단식 논은 이푸가오나 본톡, 사가다할 것 없이 유사함을 느낄 수 있었다. 본톡 사람들의 계단식 논은 치코강을 끼고 있는 곳이라 우리나라 산골마을을 연상케 하였다.
본톡 지역은 비교적 논농사를 정교하게 잘 가꾼 반면, 사가다 지역은 고산지대로 벼 보다는 양배추, 배추, 감귤, 도마도 등 다양한 작물을 볼 수 있었다.
본톡족, 사가다족, 이푸가오족 3개 부족이 끝없는 물 전쟁으로 해드 헌터라는 악명이 붙어다닌 것은 스페인 통치시대 때 이곳 사람들을 미개한 족이라 분류하면서 불렸다고 한다.
이 세 부족 중에 전통을 고수하는 이푸가오족에 의해 쌀 농사기술이 이전되어 오늘에 이른다고 한다.
해발 1500m 고원마을, 산으로만 이루어진 지역이라고 해서 도(道) 이름도 마운틴 도, 사가다에 도착하면 우린 60년대 시골 고향에 온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한다.
비포장 길을 따라 산마루를 넘어가면서 발아래 펼쳐지는 다락논과 울창한 소나무 사이로 다닥다닥 게딱지처럼 붙은 마을은 한 폭의 수채화 같았다.
마을입구에 들어서면 금방이라도 어머님이 달려 나올듯한 정겨운 마을이었다. 그곳에는 벼를 수확한 뒤 이모작으로 양배추와 토마토가 자라고 있었고, 노랗게 익어가는 감귤밭은 제주도의 시골마을에 온 것 같았다.
절벽에 매달려 있는 사자(死者)의 관, 이색 장례문화
사가다는 석회암 동굴과 이고롯족의 특이한 장례풍습으로 유명한 곳이다.
동굴까지 가는 길은 걸어서 30분 정도 걸린다. 송림 사이로 석회석 바위가 즐비하게 늘어져 있고, 그 사이에 죽은 사람의 관을 바위틈이나 절벽에 메달아 놓은 것을 발견하고 모두가 소스라치게 놀라고 만다.
바로 이고롯족의 이색 장례문화로 사람이 죽으면 관을 바위 사이에 걸어둔다고 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나무로 만든 관이 썩어 주변에는 해골을 볼 수 있어 더욱 신기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죽은 자의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기 싶게 하기 위함이 아닌가 생각된다.
소나무 숲 사이로 40년 전 고향마을을 보고
수마깅 동굴은 아무런 보조시설도 없이 300m를 걸어서 체험하는 이색 동굴체험이었다. 5명당 1명의 안내원이 램프를 들고 동굴을 안내하고 있으며, 이들의 도움 없이는 위험하고 미끄러워 도저히 체험할 수가 없다.
동굴 끝 지점에 오면 바위 사이에 조개 껍질 화석이 수없이 많이 박혀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옛날 이 바위들이 지각변동에 의해 바닷속 바위가 산이 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가다는 우리네 70년대 새마을운동을 하기 이전의 고향마을처럼 느껴졌다.
단지 아쉬움은 이들의 사는 모습과 문화를 체험하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17시간 동안 비포장도로와 교통지옥을 체험하면서 로스 바뇨스에 도착했다.
멀고 험난한 여정이었지만 나는 돈으로 살 수 없는 40년전 내 고향 마을을 보고 온 것 같아 이번 오지체험 여행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필리핀 오지마을 체험은 2006년 12월 26일부터 29일까지 4일간 필리핀에 있는 국제미작연구소(IRRI) 가족과 함께 다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