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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만에 세상에 돌아왔습니다. 세상에 돌아왔다고 하니 어디 선계라도 갔던 듯 들릴 텐데요. 그렇지는 않습니다만 세상일에서 완전히 떠났다가 왔기에 그렇게 말해도 될 것 같습니다.
세상일에서 완전히 떠나기란 죽어서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세상일에 이끌리는 기운은 죽어서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면서도 떠날 수 없어 꿈으로 나타나는 것이 세상일인데 이번 연말에 1주일간 제가 참가했던 수련프로그램에서는 일정순간은 그게 가능했습니다.
과거와 미래의 인연의 끈을 다 놓을 수 있었던 순간들이 지금도 분명하게 떠오릅니다.
@BRI@'동학수련'이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동학이라고 하면 구한말 국권회복을 위한 민중운동의 하나로 여기고 그 성격에 대해서 '동학농민운동', '동학혁명', '갑오농민전쟁' 등의 논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옛날에는 '동학 난'이라 하여 구한말에 빈발했던 민란의 수준으로 평가절하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동학 난이라 부르지는 않는 것으로 압니다.
동학운동과 관련된 책을 그동안 제법 많이 보았고 최근에는 표영삼 선생이 지으신 <동학>(통나무출판사)1, 2를 읽었습니다.
동학에 '수련'이 있다는 것은 작년 초 우연히 동학연구자인 원광대교수 박맹수 선생과 부산예술대 교수 김춘성 선생의 대답집을 읽고서입니다. 그래서 이번 연말연시는 단식수련회나 명상수련회에 가지 않고 천도교의 화악산수도원에 들어가 동학수련을 한 것입니다.
수련을 하면서 어렴풋이 저 자신이 '한울'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동학의 기본 사상인 시천주(侍天主)가 제대로 된 것이지요. 동학수련에서는 '강령'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내 안에 한울을 모심으로 내가 즉 한울이 되는 원리이고, 그것을 해 내는 수련의 요체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천지부모'와 '이천식천' 같은 핵심 사상들을 체증하는 수련이 진행되었습니다. 특히 저는 '향아설위'의 가르침이 큰 깨달음으로 다가왔습니다. 향아설위는 도올 김용옥선생이 풀이한 <동경대전>에서 설명되어 있지만 이것을 체험하고 내 삶으로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었습니다.
수련이 깊어지면 몸은 물론 마음이 한없이 맑아지면서 과거의 번잡한 얽힘이 풀리면서 하나로 꿰어지기도 하고 미래가 투명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저는 3일째 되는 날부터 계속 그런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런 체험은 그동안 '동사섭수련'과 '간화선수련' 등을 통해 체험했던 것들이지만 이번에는 더 오랫동안 지속되었고 상태가 좋았습니다.
제대로 된 수련은 수련자로 하여금 주변 사람과 상황들에 대해서 훨씬 긍정적이 되게 하고 모든 사람이 하늘임(인내천)을 온몸으로 알게 됩니다. 일주일 내내 하얀 눈이 뒤덮인 800고지 산 속에 있는 수도원은 40여 명의 수련생과 수도원 관계자들의 맑은 기운이 차 있었습니다.
무척 추운 날이 며칠 계속되었는데 강추위가 '맑고 밝다'는 느낌으로 다가온 것도 새로운 발견이었습니다. 새해 새벽 0시에는 새해를 여는 타종식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에 달무리가 있었는데 밤늦게까지 서쪽으로 달과 함께 가는 것도 보았습니다.
강령이니 강화니 하는 동학 수련에서 쓰는 말들이 있는데 수련을 하지 않은 사람이 듣기에는 주술적으로 들릴 수도 있어 여기서는 더 자세히 말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특히 '지기금지 원위대강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至氣今至 願爲大降 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 萬事知)'라는 21자 주문은 웬만한 동학관련 책에 다 나오는 구절인데, 동학의 교세가 왕성하게 퍼져 나갈 때는 경주와 남원 등지에서는 민중들이 이 21자 주문을 외는 소리에 동네가 소란 할 지경이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이이화 선생님께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 주문을 통해 한울님을 모시는 수련이 동학수련입니다. 이렇게만 말하면 동학수련에 대해 모두 말한 것이 되지만 제대로 전달되었다고는 또 말할 수 없습니다. 수련은 말이나 글로 전달할 수 없고 체험을 통해서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번 수련에서 체험한 한울님에 대해서 말하지 못하는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강령이 되었을 때 함께 간 마리학교(강화도에 있는 대안중학교) 교사 성아무개 선생님이 저를 안아주었는데 계속 저는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마리학교의 같은 학부모인 김아무개 선생님이 저를 또 안아주었는데 이번에는 계속 고맙다고 하면서 울었습니다. 눈물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찬란한 세상에 대해 그렇게 된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죄송하고 모든 사람이 고마웠던 것입니다. 그런 상태에 대해 이해가 되는지요?
경전이나 고전에서 모든 사람이 다 존귀하고 생명은 우주하고도 바꿀 수 없다고 하는 것을 읽을 때 우리는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지만 정작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고 다 부처고, 돌멩이 하나에도 불성이 있다는데 대해 부정하지 않지만 정작 모든 사람을 부처로 섬기지는 못합니다. 또 스스로 하늘이라는 글귀에는 동의하지만 어느새 하늘로서의 체통과 위신을 잃고 쩨쩨하게 굴고 조잔한 일상을 삽니다. 경전이나 성현들의 가르침대로 직접 몸으로 체험하고 그렇게 살아내는 것이 수련입니다.
천도교라는 종교가 참 인상적이었던 모습을 본대로 말해 볼까 합니다. 처음 수도원에 도착해서 불목지기인 줄 알았던 할아버지가 있었습니다.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청소하고 심부름하는 허술한 할아버지를 연상하면 됩니다. 이분이 원장님이었습니다. 입도식 할 때 원장님으로 나오셨습니다.
여러 건물 제일 뒤편의 제일 작은 한 평 반 남짓한 뒷구석 방이 원장실이었습니다. 수련기간 내내 나무하고, 불 때고, 청소하고 물 퍼 나르고 현수막 달고, 쉬지 않고 일하는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습니다.
성직자가 없는 것도 놀라웠습니다. 수련기간에 기도회를 집전하거나 설교를 할 때 평신도가 돌아가면서 했습니다. 절이나 교회에 가면 스님이나 목사님이 하늘과 같은 존재라는 것이 현실입니다.
불·법·승 3보라 하여 스님에게는 꼭 3배를 올린다거나 높은 강대상에 평신도는 얼씬도 할 수 없는 것을 아는 저로서는 참 놀랍고 재미있는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스님들은 무조건 가르치려고 하는 습성을 가진 것도 잘 아는 저로서 천도교의 기도식은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수련생의 일부는 중요한 결의를 했습니다. 기미년 3·1 독립운동 당시에 했듯이 1월 5일부터 2월 22일까지 49일 기도를 각자의 처소에서 하기로 했습니다. 함께 공동기도문도 만들었고 기도진행방식도 의논하여 정했습니다.
수도원에서 샴푸가 욕실에 있다거나, 수세식화장실을 만들어 놓았다거나, 밭에 화학비닐이 있다거나 하는 몇몇 의아한 일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제 기도와 수련에 전혀 걸림돌이 되지는 않는 것을 보고 참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