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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여인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
<비운의 여인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 ⓒ 가람기획
최근 캐럴 섀퍼가 쓴 이 작품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가 출판되었다는 걸 알았을 때 잠깐 망설였다. 메리 스튜어트에 관한 책이라면 이미 질리도록 보았던 터라 과연 이 책을 읽는다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결국 이 책을 읽지 않을 수 없었다. 메리스튜어트라는 신비한 인물에 관해서 단 한가지만이라도 새로이 알게 된다면 결국 이 책을 읽은 보람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몇 장 넘기지 않아서, 나는 이 책이 이제껏 읽어왔던 책들과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쓰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호사스러우며 욕구를 충족시킬 수는 있으나 예측이 가능한 프랑스의 생활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친구가 거의 없고, 오락거리는 훨씬 적으며, 적들이 넘쳐나는, 새롭고도 예측이 불가능한 스코틀랜드에서의 생활을 택할 것인가?

더욱 모험적인 여정을 택하는 것이 항상 그녀의 천성에 가까웠다. 일생 동안 도전정신이 가득했으며 보수적인 성향을 조금도 보이지 않았던 메리는, 안락한 삶이 아무리 매력적이고 합리적이라 할지라도 그 속에서 자신이 활기를 잃어갈 것이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일생동안 보수적인 성향을 조금도 보이지 않았던 메리. 이 부분에서 잠깐, 그동안 읽었던 책들의 어조를 떠올렸다. 아하, 내가 읽었던 책들이 모두 메리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에서 쓰인 책들이었구나.

메리 스튜어트에 관한 최고의 명저로 꼽히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에서 그녀는 너무나 감정적이고, 성적인 매력으로 가득 차 있으며, 정치적이고 냉정하지 못해서 일생을 불행하게 살다간 비극의 여인으로 묘사된다.

진 플레이디가 쓴 소설 <포더링헤이로 가는 길>에서도 그녀는 사랑의 정염에 모든 것을 걸었다가 결국 가진 것을 다 잃고 몰락해가는 비극의 여왕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물론, 이 일련의 책들을 통해 내 머릿속에 자리 잡은 메리의 모습도 그런 것이었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던, 순진하고 가엾고 멍청했던 여인.

@BRI@그러나 이 구절, 보수적인 성향이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던 메리, 내 눈을 번쩍 뜨게 했다. 메리라는 인물을 약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 굉장히 많은 풍경이 그 색채를 바꾸는 것이다! 우선, 치명적인 결점으로 후세에 두고두고 회자되었던 그녀의 세 번째 결혼 부분을 살펴보자.

똑같이 배우자를 살해하고 다음 배우자를 맞았지만 헨리 8세는 메리처럼 국민들의 증오를 사지도, 역사에 죄인으로 그려지지도 않았다. 그녀가 만일 남성군주였더라도 국민들은 그녀를 몰아냈을까. 메리의 두 번째 남편이 메리의 살해를 기도했던 형편없는 인물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보았을 때, 사후에 그녀에게 씌워진 악녀이미지는 결국 많은 부분 남성의 시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는 결론이 난다. 두 번째로, 그녀의 통치 스타일을 보자.

그녀는 광신적인 열정이 드물었으며, 관례나 기존의 방식들을 경멸했고, 쓸모없는 선입관에서 자유로워지기를 원했다. 솔직함과 세련됨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그녀는 현대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인물이었다.

작가는 메리 스튜어트를 관례와 선입견에서 자유로운, 실익을 중시하는 진보적인 군주로 그리고 있다. 다른 많은 작가들은 같은 부분을 놓고 '스스로의 감정에만 몰두하고, 냉정하게 상황판단을 내리지 못한 어리석은 여인'으로 묘사해왔다. 책장을 넘기면서 내 안에 자리 잡았던 메리 스튜어트의 초상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진보. 그래, 메리를 그런 키워드로 바라볼 수도 있구나!

페미니즘의 시선으로 메리를 바라보다

책이 끝나갈 때쯤이면 작가가 메리 스튜어트에게 보내는 색다른 시선이 결국 페미니즘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 작가의 페미니즘은, 근래에 새롭게 힘을 얻고 있는 '다양한 계층의 여성을 아우르는 페미니즘'과 맞닿아 있다.

즉, 백인 중산층 여성만의 시선을 중심으로 했던 종래의 페미니즘이 그 틀을 깨가는 과정에서 메리 스튜어트라는 비극적인 인물을 재해석한 것이다. 이는 '창녀'를 단죄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을 오히려 '반페미니즘'이라고 규명한 니키 로버츠의 <역사속의 매춘부들>과도 그 궤를 같이 한다.

역사 속 인물을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이들, 엘리자베스 1세를 추종하는 이들, 종교사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들, 페미니즘에 좀 더 깊게 다가서고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메리 스튜어트라는 전설적인 여인이 종래의 선입견에서 빠져나와 스스로의 초상을 바꾸는 광경을 목도할 수 있을 것이다.

한가지, 다분히 '친 메리스튜어트' 적인 책이라 가끔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억지스러운 논설이 펼쳐질 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책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할 뿐, 대부분 이 책이 토로하는 내용은 합리적이고 개연성이 충분하다. 한두 번 꾹 참고 넘어가줄 가치가 있을 정도로.

덧붙이는 글 | *현재의 영국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를 포함한 영국 왕실의 인물들이 모두 메리 스튜어트의 직계 후손이라는 점,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다이애너 황태자비 또한 그녀의 후손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읽는다면 더욱 흥미진진할 것입니다. 작가는 메리 스튜어트의 매력을 상상해보기 어렵다면 다이애너 황태자비를 생각해보라고 말합니다. 지나가버린 역사 속 인물들의 체취를 느껴보고 싶을 때 가장 손쉽게 해 볼 수 있는 방법이 그 후손들의 모습을 보는 일이겠지요. 

*참고서적:

슈테판 츠바이크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
이원복의 먼나라 이웃나라 4권 <영국>
니키 로버츠 <역사 속의 매춘부들>
Jean Plaidy, Royal road to Fotheringhay


비운의 여인,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

캐럴 섀퍼 지음, 전일휘 옮김, 가람기획(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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