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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는 노화가 아니라 치료를 받아야 할 질병이다.
치매는 노화가 아니라 치료를 받아야 할 질병이다. ⓒ 김혜원
#1. "나는 시어머니 내다버린 나쁜 며느리?"

"치매 시어머니 수발 10년에 얻은 것을 병이요, 늘어난 것은 빚입니다. 점차로 증세가 심해지는 시어머니를 더 이상은 어쩔 수 없어 실비 전문 요양 센터에 모셔두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도 저도 모두 울었습니다. 불효라고 손가락질 받아도 할 수 없지요."

성남시에 살고 있는 김아무개(58세)씨는 치매를 앓는 시어머니를 10년 넘게 집에서 수발하다가 최근에야 실비노인전문 요양원에 모셨다. 두드러기와 붉은 반점으로 얼룩져 있는 그녀의 팔이 눈에 들어온다. 배변이 어려운 시어머니의 강제배변을 위해 본인의 손으로 직접 관장을 하다보니 피부질환이 생긴 것이란다.

"고무장갑을 끼면 아파하셔서 맨손에 윤활제를 바르고 했어요. 이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목욕이며 옷 입히기며 이불빨래며. 거의 혼자서 하다보니 허리가 망가진 건 오래전이구요. 얻어맞고 발로 채이고. 밤에 한번도 깨지 않고 자보는 것이 소원이에요. 부끄럽네요. 시어머니 내다버린 며느리 주제에 핑계만 늘어놓는 것 같아서요."

어머니를 원주에 있는 실비노인전문 요양원에 모신 후 5남매는 매달 번갈아 가며 면회를 다니고 있다. 처음에는 죄스러움에 울기도 많이 했지만 지금은 많이 안정되었다고 한다.

"미우니 고우니 때로는 욕하고 때리고 싸우면서도 돌아가실 때까지 함께 산다고 생각했거든요. 결정하기까지 고민도 많이 했구요. 모셔다 놓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남편이나 저나 한동안은 잠도 못 잤지요. 하지만 요즘은 많이 편해졌어요. 어머니가 제가 모실 때 보다 훨씬 밝아 지셨어요. 밥도 잘 드시고 손뼉도 치시고, 말씀도 몇마디씩 하십니다.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한 대학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치매노인의 주부양자 60%가 부양 이후 심질환, 소화기질환, 요통 등의 질병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이 논문은 치매노인을 부양하는 주부양자가 받는 스트레스는 부양자 자신은 물론 가족전체의 안녕에 영향을 미치고 치매노인보호의 질을 저하시킬 수 있으며 심하면 노인학대, 유기,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원인이 된다고 경고했다.

강동 노인단기보호센터. 월 이용료 45만원. 연간 90일 한도내에서 이용가능하다.
강동 노인단기보호센터. 월 이용료 45만원. 연간 90일 한도내에서 이용가능하다. ⓒ 김혜원
#2. 치매노인은 무조건 집에서 모셔야한다?

"할머니, 할아버지. 크리스마스와 연말 연시가 가까웠지요? 오늘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낼 카드를 만드실 거에요. 카드에 예쁜 꽃도 붙이고 글도 써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해드리자 구요. 누구한테 보내시겠어요?"
"손주."
"우리 영감. 호호호"
"난, 아들한테 보낼 거야."

지난해 12월 중순. 강동구 명일동에 위치한 강동 치매 단기보호센터를 찾았다. 일주일에 한번씩 진행되는 원예치료 시간. 사랑하는 사람들 떠올리며 어둔한 손놀림이지만 카드에 꽃을 붙이고 그림을 그리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노인들이 행복한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한경혜 팀장은 좀 더 많은 노인들이 시설의 혜택을 받기를 바라지만 한국인들이 정서 속에 시설에 대한 커다란 거부감이 있어 시설에 모시는 것을 꺼리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고 한다.

"마땅한 시설이 없었던 시절에는 무조건 집에서만 모시는 것이 효도고 바람직한 보호방식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가정에서 가족들의 따뜻한 사랑과 전문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없겠지요. 하지만 가족들이 치매노인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한정 적이거든요. 그저 보호만 하는 정도지요. 가족들의 무관심속에 방치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 곁에 앉아 카드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으니 말을 먼저 걸어온다.

"애기엄마는 누구셔?"
"예, 할머니. 여기가 얼마나 좋은가 구경 왔어요. 할머니 여기 좋으세요?"
"응, 좋지. 때 맞춰 밥 주지 간식주지, 친구들 있어서 심심치않지, 이렇게 선생님들이 와서 같이 놀아주니 좋지."

부족한 치매노인 보호시설

누구나 저렴하게 노인전문 병원이나 요양원을 이용할 수 있도록 노인복지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누구나 저렴하게 노인전문 병원이나 요양원을 이용할 수 있도록 노인복지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 김혜원
노인전문 시설은 노인복지법 31조에 따라 노인주거복지시설, 의료복지시설, 여가복지시설, 재가복지시설, 노인보호전문기관으로 나누어진다. 치매노인의 경우 노인의료복지 시설 중 노인전문요양시설(치매·중풍 등 중증의 질환노인을 입소시켜 무료 또는 저렴한 요금으로 급식·요양 기타 일상생활에 필요한 편의를 제공)과 재가복지시설 중 주간보호시설(부득이한 사유로 가족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심신이 허약한 노인과 장애노인을 낮동안 시설에 입소시켜 필요한 각종 편의를 제공)과 단기보호시설(부득이한 사유로 가족의 보호를 받을 수 없어 일시적으로 보호가 필요한 심신이 허약한 노인과 장애노인을 시설에 단기간 입소시켜 보호)을 이용할 수 있다.

2006년 보건복지부 통계 자료에 따르면 전국의 노인의료복지시설은 583개소, 재가노인복지 시설은 851개소가 있다. 그 중 중풍 치매 등 중증질환을 가진 노인이 이용할 수 있는 노인전문요양시설은 227개소(무료139개소, 실비5, 유료43, 병원40)이며 주간보호시설은 346개소(실비66개소) 단기보호시설은 103개가 있다. 36만명 가량 되는 치매노인인구를 생각하면 턱없이 모자란 수치다.

더구나 의료복지와 재가복지 시설 등 1434개소의 노인전문시설 무료, 혹은 실비로 이용할 수 있는 865개 시설의 입소기준이 저소득층(도시근로자 평균소득이하)나 기초생활수급자로 제한 되어있어 어중간한 계층 즉, 대다수 서민에게는 그림의 떡이 되고 있다.

장향숙 열린우리당 의원의 자료에 따르면, 2006년 치매 환자 중 대다수가 중·저소득층인 것으로 나타났다. 환자들의 소득등급별 현황(10분위)를 보면 1등급부터 6등급 사이가 전체의 93.8%로 대부분의 치매환자가 서민이라는 얘기이다(의료보험공단자료).

노인복지의 혜택에서 제외된 대부분의 서민 치매가정은 유료 전문양로시설을 이용하거나 도우미를 쓸 수밖에 없다. 유료양로시설의 경우 보통 월 이용료 150만원에서 250만원 가량이 들어간다.

한 노인문제 전문가는 "치매노인에 대한 학대나 노인유기, 무관심 등의 이유가 대부분 수발비용과 약값 부담 등 과중한 경제적 부담 때문"이라며 "수발로 인한 과중한 부담을 국가나 사회가 나누어진다면 수발자나 노인 모두에게 양질을 삶을 보장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민에겐 문턱 높은 실비요양센터

노인전문 양로센터에서는 노인들을 위한 전문적인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노인전문 양로센터에서는 노인들을 위한 전문적인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 김혜원
2005년 문을 연 서울시립동부노인전문요양센터(www.dbsc.or.kr)는 보증금 423만6000원에 월 이용료 70만6000원을 받고 있는 대표적인 실비 노인전문요양센터이다.

그러나 이 시설은 도시근로자 평균소득 이하 가정의 노인을 입소 대상자로 하고 있다. 1인당 월평균 소득액 90만원 이하로 4인 가족의 경우 가구 월소득이 360만원 이하인 경우로 한정했다(2006년 기준). 월 45만원을 내는 단기보호나 월20만원의 주간보호센터 역시 같은 조건이다.

치매 노인 부양가정을 위한 정보

실비노인전문센터는 월 70여만원의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으며 전국에 5개소가 있다.

서울지역
서울도봉실버센터 : 02-955-6060
서울시립동부노인전문요양센터 : 02-3407-2700
동작실버센터 : 02-821-8800

강원지역
반야실비노인전문요양센터 : 033-635-5649

전남지역
하얀연꽃실비노인전문요양센터 : 061-644-8877

치매에 관련된 궁금증이 있다면 정신보건센터(seoulmind.net)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된다. 실비 요양시설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입소 자격요건 등을 알기 어려운 경우 동사무소나 시, 군, 구청, 보건복지부 콜센터 또는 국번없이 129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처럼 실비형 노인전문 병원이나 단기보호센터가 입소대상자를 저소득층에 국한시키고 있어 서민들은 불만이 엇ㅂ을 수 없다. 치매노인의 부양자가 생활보호대상자이거나 저소득층일 경우가 아니라면 노인복지의 혜택 조차 받기 어려운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가정의 경우 부양의 의무만을 강요 될 뿐 그 어떤 수혜나 도움도 받지 못하는 형편이다.

중소기업에 다니며 연봉 3000만원 정도를 받고 있다는 박아무개(48)씨는 자신을 이 시대의 불쌍한 서민이라고 칭한다.

"우리는 고소득층도 아니고 그렇다고 중산층도 못되는 월급쟁이인데 가구 월소득이 360만원 이하가 아니라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어요. 딸아이가 받는 월급을 빼면 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이하가 분명한데도 안 된 다네요. 세금 꼬박꼬박 내고 의료보험료도 꼬박꼬박 내는데도 우리 같은 사람은 복지 혜택하고는 거리가 멀어요."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모시고 있는 박씨는 가사일과 시아버지 수발로 24시간이 부족한 아내를 볼 때 마다 더 할 수 없이 미안하다고 한다. 월 200만원을 주고 사람을 써보기도 하고 유료양로원에 모셔보기도 했지만 약값과 수발비용의 부담이 적지 않아 모두 포기하고 오직 아내에게만 모든 것을 맡겨 놓을 수밖에 없는 답답한 상황. 이는 비단 박씨의 경우만이 아니라 치매부모를 모시는 대부분의 치매가정의 현실이다.

치매는 노화가 아니라 질병이다. 더 이상 국가와 사회가 치매 가정의 문제를 개인이 떠안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친구들, 선생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는 어르신들
친구들, 선생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는 어르신들 ⓒ 김혜원

덧붙이는 글 | '시민기자 기획취재단' 기자가 작성한 기사입니다.


#치매#노인#요양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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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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