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전 세계적으로 일본해라는 표현이 훨씬 더 많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에 관한 한 한국은 불리한 입장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반대로, 이 문제에 관한 한 유리한 입장에 있는 일본으로서는 이것이 국제쟁점으로 비화되는 것을 꺼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동해 표기 문제가 국제적으로 부각되고 또 '일본해' 표기의 정당성이 의심 받는 분위기가 국제적으로 조성되면, 이는 일본보다는 한국에 더 유리한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세계일보>의 전격 보도로 인해 국내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공격을 받고 있지만, 국제적 분위기를 보면 오히려 뜻밖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뜻밖의 효과'라는 것은 세계 여러 나라들이 동해 표기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또 한·일 양국 간의 분쟁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보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이 원치 않는 '일본해 표기 문제의 국제쟁점화'가 발생할 가능성이 전혀 없지 않음을 보여 주는 현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세계 각국이 이 문제에 대해 어떤 보도를 내보내고 있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중국 언론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비공식 제안을 '건의' 혹은 '제의'로 표현하면서 사건의 경과과정에 대해 비교적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중국 언론에서는 한국이 '화평의 바다'(和平之海)라는 명칭을 제안하였다고 보도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평화'라는 말이 잘 쓰이지 않는 대신 '화평'이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
1월 9일자 <인민일보>에서는 "한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 쟁의해역(爭議海域)을 서울 측에서는 동해라고 부르고 도쿄 측에서는 일본해라고 부르고 있다"면서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이 해역의 최초의 명칭은 동해였다고 꾸준히 주장하고 있다"고 소개하였다.(사진 세트 첫줄 왼쪽)
1월 8일자 <미국의 소리> 중문판에서는 "이 수역의 명칭을 둘러싼 쟁의는 일본과 한국의 관계를 긴장시키는 여러 원인 중 하나"라고 소개하였다.(사진 세트 첫줄 오른쪽)
<화상망>이나 <성도 환구망> 같은 다른 중국 인터넷 매체 등에서도 동해 표기 문제에 관해 관심 있게 보도하고 있다(사진 세트 둘째 줄).
그리고 현지 시각으로 8일자 < CNN 인터내셔날 > 홈페이지에서는 이번 사건을 간략히 소개한 뒤에 "노무현 대통령은 일본이 1910~1945년의 가혹한(harsh) 한반도 지배에 대해 적절한 회개(contrtion)를 하지 않는 것과 관련하여 종종 일본을 질책(chastise)했다"고 말하였다.(사진 세트 셋째줄 왼쪽) 이는 서양인들이 동해 표기 문제를 식민통치 문제와 관련시켜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호주의 <시드니 모닝 헤럴드> 8일자(현지 시각) 기사에서는 "남한에서는 이 해역의 적절한 명칭이 동해라고 주장하면서,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는 일본해라는 이름과 뜨거운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소개하였다(사진 세트 셋째줄 오른쪽). 일본해라는 명칭의 타당성에 관한 의문이 한국측으로부터 제기되고 있음을 소개한 것이다.
한편, 영국의 < BBC 뉴스 > 홈페이지에서는 '해역 분쟁'(sea dispute)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이 외에도 인도의 <데일리 인디아> 등 각국 언론도 이 문제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표출하였다(사진 세트 넷째줄).
위와 같이, '일본해'라는 표현을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던 세계 각국에서 동해 표기에 관한 한국의 입장을 비교적 상세하게 소개하고, 나아가 이 문제가 식민통치와 관련이 있다는 내용까지 보도하고 있다. 이러한 보도는 일본해라는 명칭의 정당성에 대해 국제적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일정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 당장 일본해에 대해 뚜렷한 이의가 제기되지는 않고 있지만, 지금 같은 분위기가 동해 표기 문제의 국제쟁점화에 유리한 여건을 제공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의외의 효과가 생기고 있는 것은 이번 사건에 대한 문제제기의 방식 때문일 것이다. 만약 한국 정부가 동해 표기 문제를 국제적으로 부각시키기 위해 의도적인 노력을 했다면, 일본 정부의 방해 때문에 쉽사리 성공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언론이 노무현 대통령을 비판하기 위한 의도에서 이 문제를 건드렸기 때문에 세계 언론이 관심을 갖고 보도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노무현 대통령의 제안이 절차상 하자가 있기는 하지만, 이 문제는 의외로 한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움직일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문제제기와 별도로, 동해 표기 문제를 국제쟁점화함으로써 국제적으로 일본해라는 표현에 물음표가 찍힐 수 있도록 이번 문제에 접근하는 것도 바람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