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부터 공식 제안이 아니라는 전제로 '발상의 전환'을 위해 예를 든 것인가, 아니면 '즉석 제안'이 거부당하자, '공식 제안이 아니었던 것'으로 정리한 것인가.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한일 정상회담에서 동해의 명칭으로 '평화의 바다' 등을 언급한 문제와 관련, "(공식) 제안하지 않았다"는 정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진상을 둘러싼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노 대통령의 '평화의 바다' 발언을 '제안'으로 받아들이고 거부하는 과정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으나, 이에 대한 정부의 정확한 설명이 없기 때문이다.
청와대 안보수석실은 8일 '청와대 브리핑'을 통해 "노 대통령은 동해를 '평화의 바다'로 하자고 제안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일본이 과감한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맥락에서 하나의 사례로 언급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일본 언론이 전하는 일본 정부관계자들의 얘기는 다르다.
청와대 브리핑에서 아베 총리는 없었다
@BRI@<지지 통신>은 "일본해(동해)를 '평화의 바다'로 개명하자는 노 대통령의 제의를 아베 총리는 즉석에서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마이니치 신문>도 노 대통령이 "'동해'를 '평화의 바다'로 부르면 어떤가"라고 제안, (아베) 총리가 "검토하지 않겠다"라고 대답하자 노 대통령은 "정식 제안은 아니다"고 말한 것으로 당시 상황을 소개했다.
이같은 보도로 미뤄볼 때 일본 정부관계자들은 '노 대통령의 제안을 아베 총리가 거부하는 과정'이 있었음을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청와대 브리핑>은 노 대통령의 일방적 발언 내용만 공개하고, 아베 총리의 반응은 일절 소개하지 않았다.
<오마이뉴스>는 한 정통한 외교소식통을 통해 당시의 상황을 확인했다. 그는 "노 대통령이 '평화의 바다' 등 명칭 변경 문제를 언급하자 아베 총리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고, 그러자 노 대통령은 '공식 제안은 아니다'고 발을 뺐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해역 명칭변경과 같은 중대한 제안이 전혀 사전조율 없이 대통령의 입에서 튀어나와 일본 측은 놀래고 당황해 하는 분위기였다"면서 "노 대통령이 마지막에 '공식 제안은 아니다'라며 태연히 거둬들여 더욱 놀라웠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또 "현재 전 세계 지도 표기에서 압도적 우위에 있는 일본 측이 불쑥 내놓는 명칭변경 제안을 거부할 것은 뻔한 이치"라며 "결국 아무 의미도 없다고 판단, 양국 외교당국간 공식 문서에 올리지 않는 등 '없었던 일'로 하기로 정리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양국이 결국 '없었던 일'로 하기로 했다는 점에서 "동해를 '평화의 바다'로 하자고 제안하지 않았다"라는 청와대의 해명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제안을 아베 총리가 거부하는 과정이 있었는지 여부에 따라 정치적·외교적 의미는 전혀 달라진다. 정부의 정확한 설명이 필요한 대목이다.
일본 '노 대통령과는 회담 안 한다' 방침?
한편 이날 한일 정상회담은 북한이 핵실험을 한지 한 달이 조금 지난 시점에서 열렸다. 당연히 북한 핵실험에 대한 공동 대응방안 논의가 주 의제가 될 것으로 관측됐으나, 노 대통령은 이날 시종 역사 문제에만 집착했다고 한다.
외교가 일각에서는 일본 정부가 이같은 이유로 이날 회담 이후 '노 대통령과는 더 이상 회담을 하지 않는다'는 내부 방침을 세웠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필리핀 세부에서 열리려다가 태풍 등의 이유로 직전에 연기된 'ASEAN(동남아국가연합)+3' 정상회담 당시 한일간 양자 정상회담 계획은 없었다. 또한 오는 13일부터로 다시 날짜가 잡힌 'ASEAN+3'에서도 한중일 3자 정상회담만 예정돼 있을 뿐 한·일 양자 정상회담은 열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일이 다자회담 장에서 양자회담을 갖지 않는 것은 심각한 외교마찰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 등 극히 이례적 경우이다.
중국이 지난해 아베 총리의 방중에 대한 답방으로 올해 4월 원자바오 총리, 6월 후진타오 주석 방일 등의 일정을 구체적으로 좁혀가고 있으나, 한일간에는 노 대통령의 답방 문제에 대해 아무런 진전이 없는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