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웃기는 놈이네?"
명인병원 부원장(김창완)이 장준혁(김명민)에게 매몰차게 쏘아붙였다. 지방 병원으로 보내지 말아 달라 무릎 꿇고 애원하는 장준혁을 앞에 둔 부원장은 대뜸 전화기를 잡더니, 장준혁을 내치려는 외과 이주완(이정길) 과장에게 전화를 돌렸다. 부원장이 180도 바뀐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병원 입장에선 보내면 안 되는데, 본인이 꼭 가겠다고 하니까."
시청자들은 이구동성 말했다. "소름이 쫘악 끼쳤다." 김창완 때문에.
돌아온 그, 김창완 맞아?
김창완이 돌아왔다. 그것도 생전 처음 보는 악역으로. 연기 잘하는 배우들의 각축장 같은 MBC 주말드라마 <하얀거탑>에서도 김창완은 유독 빛났다. <타짜>의 악귀 김윤석에 이은 배우의 발견이라 할만 했다.
@BRI@<하얀거탑>에서 김창완이 연기하는 명인병원 부원장 우용길은 보통 인물이 아니다. 명인병원 실세 중의 실세다. 하지만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비열한 일도 서슴지 않는다. 겉으론 자상하고, 속으론 음흉하고 야비하기 이를 데 없다. 권모술수의 대가다.
오경환 교수(변희봉)는 극중에서 그를 가리켜 이렇게 말했다. "아주 노회한 친구야." 그걸 김창완이 연기했다.
발단은 지난해 발간된 <드라마틱>이란 잡지 인터뷰였다. 거기에서 김창완이 말했다.
"장기밀매업자 같은 어둡고 강한 배역도 맡아보고 싶다."
그때 찍은 잡지 표지사진은 지금껏 알려진 김창완 얼굴과 달랐다. 그걸 본 안판석 PD는 무릎을 쳤다. 김창완을 부원장에 캐스팅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다들 반대했다." 제작을 담당하는 배익현 PD가 말했다.
하지만 안 PD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믿었다. 워낙 배역 해석력이 좋은 배우니까." 안 PD가 말했다. 그리고 김창완은 해냈다.
지난 9일, 경기도 이천 <하얀거탑> 세트장에서 김창완을 만났다. 그는 "너무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성격 급하고 냉정한 게 내 본모습"
- 이번 연기 보고 깜짝 놀랐다.
"왜 놀랐을까? (씨익 웃으며) 어느 날 아침 일어나니까 악당이 돼 있더라."
- (산울림) 가수 활동까지, 데뷔한 지 30년이 됐다. 그동안 맡은 역이 대개 맑고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아저씨였잖나?
"그거 자체가 오해였다. 하하하."
- 이번에 진실이 드러나는 건가?
"어. 그런 거 같나? 난 평소에 성격도 급하고, 굉장히… 뭐랄까. 맺고 끊는 게 냉정하달까. 그런 편이다. 그런데 그동안 우유부단한 역을 주로 했다. 사실 그동안 한 역이, 내 본모습에서 일탈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모습을 내가 즐겼는지도 모르고. 그러니까 우유부단하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캐릭터를 내가 즐겼는지도 모른다."
- 지금껏 그런 캐릭터만 들어왔나?
"그런 것만 시키더라."
- 악역 그런 건 전혀 들어온 적 없나?
"없다."
- 그런 연기를 하고 싶다고 잡지에서 말한 걸 안판석 PD가 보고, 또 그때 찍은 표지사진 속 얼굴을 보고 이번 캐스팅을 했단 이야길 들었다.
"어느 정돈 맞는 얘긴데, 아휴. 소원한다고 그렇게 배역이 주어지고 그러나? 내가 오래전부터 '아, 나 왕 좀 시켜주라' 그랬는데 그건 아직도 소원을 못 이뤘다. 어쨌든 악역이다 아니다 뭐다를 떠나서, 이 작품이 워낙 대단한 작품이다. 이런 작품을 훌륭한 감독님, 훌륭한 스태프들하고 같이 일한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다. 너무너무 행복하다. 여기 같이 공연하는 이정길 선생님이나 같은 배우들을 너무너무 좋아한다."
- 연기력 때문인가? 인간적으로인가?
"사람 오래 사귀어봐야 아는 건데, 인간적으로 연기자로 그렇게 매력들이 있다. 그런데 그분들은 뭐…, 난 가만있어도 그 사람들이 다 연기를 하니까. 난 가만있어도 그냥 악당이 되더라. 하하하하."
- 김창완씨야말로 가만있어도 '포스'가 딱 느껴지시던데?
"'포스'라는 게 그렇다. 제가 (방송 나간) 그날 이후 문자를 많이 받았다. 친구, 동료 연기자나, 작가들……. 격려차. 거기서 많이 나온 단어 중 하나가 '포스'다. 포스가 느껴졌다. 카리스마를 느꼈다. 스테레오가 아닌 악당, 뭐. 이런 표현들을 하더라. 지금까지 있었던 악당에 대한 선입견이나 이런 걸 벗겨내는 악당이었지 않나. 그게 또 재밌지 않나."
"착한 역과 악한 역, 바라보는 게 다르다"
- 악당 하려고 준비하시거나 그런 게 있나?
"제가 어디서 깜짝 놀란 질문을 받았다. '선한 역을 할 때하고, 악한 역을 할 때하고 연기할 때 같아요? 달라요?' 그런 질문을 받았다. 내가 같게 했나? 다르게 했나? 모르겠는 거더라.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까, 그런데 이 악한 역이라는 거 자체가 그런지, 아니면 악의 습성인지 속성인지 모르겠는데, (악당이) 눈을 안 마주치게 되더라.
착한 역일 때는 눈을 보고 얘길 하다가, 자기가 피하고 싶으면 눈을 외면하는데, 악당은 항상 외면하고 얘길 하다가, 자기가 피하고 싶을 때 보는 게 아닌가. 자기가 숨고 싶을 때 보는 게 아닌가. 그 생각을 얼핏 했다. 악당은 내내 외면하고 얘길 한다. 그러다 자기가 숨을 일 있잖아. 그럴 때 이렇게 (뚫어지게 바라보며) 본다."
- 소름 끼친다.
"그죠? 선한 사람은 이렇게 얘길 하다가 창피해지면 눈을 피하잖아. 자기가 숨길 일 있으면, 눈을 외면하잖아. 자기 속내를 숨기고 싶거나 숨고 싶으면 외면을 하잖아. 악당은 거꾸로인 거 같다. 내내 딴소리하다가, 자기가 숨어야 할 때고 위기에 처하면 이렇게 본다. 그게 끔찍하더라. 생각해보니까."
- 그러고 보니까 <하얀거탑>에서 그랬다. 김명민(장준혁)과 전화기 잡고 말할 때….
"그치. 아무리 악당이래도 사람 눈이 그렇게 무서운 건가 보다. 아무리 악당도 차마 이렇게 딱 보고는 못 하는 거 같다."
- 이번 연기를 하려고 다른 악당이 어떻게 연기하는지는 안 봤나?
"난 모른다. 그게 연구해서 될까? 이런 건 있다. 살면서 그동안 자기가 공포스럽게 생각했던 거나, 수치스러웠던 것, 이런 경험들이 연기로 나오는 거 같다. 관객들은 그런 모습에서 같이 공감할 수도 있고, 또는 그런 공포를, 공포로 표현되는 것들을 느낄 수도 있을 거고. 아주 막 새로 만들어내는 것 같진 않다."
"안경만 벗어도 금방 딴 사람"
- TV로 보면서 자신도 좀 낯설 것 같은데.
"아, 약간 낯선 것도 없진 않다. 없진 않은데, 뭐랄까. 처음에 녹음기에 목소릴 녹음해서 내가 들으면, '저게 나인가' 싶을 때가 있다. 나도 지금 저게 나인가 싶은데, 곧 익숙해질 것 같다."
- (부원장 역에) 벌써 익숙해진 거 같다. 예전과 다른 느낌이다. 가운 때문인가?
"아, 그게 굉장히 강렬했을 거다. 안경을 벗었다. 그것도 처음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그것에서 변신의 느낌이 많을 거다. 심지어 안경만 써도 전혀 다르다. 진짜. (기자가 쓴 안경을 가리키며) 잠깐만 빌려줘 봐 달라. (안경을 쓰고서) 이것 봐라. 금방 딴 사람이 되지. 외모에서 일단 극심한 변화를 겪게 되니까. 거기서 생겨나는 뭐랄까. 아우라랄까. 그런 게 있다."
- 앞으로 악역이 들어온다면 또 하겠나?
"모르겠다. 하하하. 다만 이번 <하얀거탑>에 했던 연기나 이런 것들이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고 내가 원하는 아주 정말 아름다운 연기세계가 있거든? 그런 것들로 다가가는 좋은 경험이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