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타이페이 대사관, 워싱턴 대사관, 홍콩 총영사관 등에서 근무한 뒤에 1969년부터 외무성 아주국 중국과에서 차석사무관으로 일했다. 외무성에서 은퇴한 후에는 정치인으로 나섰으며, 현재는 12선 의원이다. 그리고 자민당 간사장도 지낸 적이 있다.
가토 고이치 의원의 경력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그가 근무한 혹은 담당한 지역이 모두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해 부정적인 국가들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외교관 경력 때문인지, 그는 새로 당선된 고이즈미 총리가 2001년에 8·15 야스쿠니 참배를 강행하려 하자 이에 대해 반대 입장을 개진하고 나섰다. 그는 당시 "8월 15일에 참배하면 일중관계에 말썽이 생긴다"면서 "8월 15일에만 하지 않으면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고이즈미 총리는 8월 15일에 참배하려던 당초 계획을 바꿔서, 이틀 전인 8월 13일에 참배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였다.
그런데 이런 사실이 2006년 8월호 <문예춘추>라는 일본 잡지에 보도되었다. 그리고 호리고메 씨도 이 기사를 읽게 되었다. 기사를 읽고 난 뒤에 호리고메씨가 느낀 '감상'은 이런 것이었다. '2001년 8·15 참배가 무산된 게 바로 가토씨의 공작 때문이구나.'(11일 공판에서 변호인의 주장)
호리고메씨는 2001년 8·15 참배가 8·13 참배로 변경된 주된 원인이 가토 의원에게 있다고 판단했지만, 그보다는 중국측의 압박이 보다 더 강력한 요인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당시 우다웨이 중국 대사가 일본측에 "8월 15일만 피하면 문제 삼지 않겠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야스쿠니 참배의 최대 걸림돌은 중국'이라는 당연한 상식에도 불구하고, 호리고메씨는 가토 의원을 핵심 '원흉'으로 오해한 것이다. 그리고 고이즈미 총리의 참배가 강행된 작년 8월 15일에 그는 가토 의원의 자택에 불을 질러 버린 것이다.
뒤바뀐(?) 검찰과 변호인
그리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제1회 공판이 열린 11일에 재판정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 벌어졌다. 피고인이 기소사실을 대부분 시인했기 때문에 재판의 쟁점은 '범행 동기가 무엇이냐?'로 압축되었다. 피고인이 유죄를 인정하면서 "가토씨에게 사죄할 마음은 일절 없다"고까지 말했기 때문에, 더 이상 유무죄 여부를 가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흔히 재판에서는 변호인측이 선처를 부탁하기 위해 "생활고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주장하고 검찰측이 그러한 주장을 배척하기 위해 "의도적인 범행"이라고 주장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의 양상이 벌어졌다.
호리고메씨의 소속단체에서 소개해 준 변호인은 범행 동기를 '테러'라고 주장하는 반면, 검찰측에서는 범행 동기를 '생활고'라고 주장한 것이다. 변호인 측에서는 "가토 의원 때문에 2001년 8·15 참배가 무산된 사실을 알고 호리고메씨가 공분에 이끌려 범행을 저지른 것"이라고 주장한 데 반해, 검찰측에서는 "피고가 도박 빚에다 질병 때문에 돈이 궁한 상태에서 저지른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검찰의 고민은, 우익세력이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를 정당화하는 상황 하에서 이번 사건이 야스쿠니 문제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판가름나면 피고인을 처벌하기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검찰의 고민을 잘 알기에, 변호인측은 어떻게든지 이번 사건이 '사상범죄'임을 부각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변호인 측에서 "피고인은 다른 사람들도 살해하려고 계획한 적이 있다"는 주장까지 했다는 점이다. 변호인은 "야스쿠니 참배를 반대하는 재계 요인을 살해하기 위해 피고인이 재계 요인의 자택 근처를 둘러보기도 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살인죄의 경우에는 다른 범죄와 달리 범행 착수 이전의 예비·음모까지 처벌된다. 살인예비까지 인정되면 처벌이 더 무거워짐에도 불구하고, 재판부가 묻지도 않은 일을 피고인측에서 스스로 '자백'하고 있는 것이다.
야스쿠니 참배에 대한 우익세력의 지지에 편승하여 야스쿠니 반대자에 대한 테러로 국민적 스타가 되고자 하는 우익 인물과, 사회지도층에 대한 테러를 어떻게든 응징하지 않을 수 없는 검찰측 사이의 갈등 구조를 보여 주는 흥미로운 재판이다.
이러한 '광경'이 던지는 시사점은 일본 사회에서 우익의 논리가 점차적으로 사회적 정당성을 획득해 가고 있다는 점이다. 타이틀만 우익단체 간부일 뿐 사실상은 무직자나 다름없는 도박꾼이 현직 국회의원의 자택에 테러를 가해 놓고도 사과를 하기는커녕 도리어 '의도적 테러'라며 국민적 공감대를 얻으려 하는 데 비해, 검찰은 피고인을 처벌하기 위해 도리어 범행을 축소하지 않을 수 없는 일본 사회의 분위기를 보여 주는 한 단면일 것이다.
1945년 이후로 일본의 군국주의화를 막는 족쇄가 되었던 평화헌법, 군대 보유 금지, 야스쿠니 참배 억제 등이 하나 하나 사라져 가는 것을 보면서, 군국주의 일본이 자유롭게 비상할 수 있게 될 날이 멀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감출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