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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동 266번지 주민 등 200여 명이 12일 오후 영하의 혹한 속에 서울 강남구청 앞에서 포이동 266번지 주민등록 등재 촉구 집회를 열고 있다.
포이동 266번지 주민 등 200여 명이 12일 오후 영하의 혹한 속에 서울 강남구청 앞에서 포이동 266번지 주민등록 등재 촉구 집회를 열고 있다. ⓒ 석희열
12일 오후 2시 서울 강남구청 앞 도로. 포이동 266번지 주민과 대학생 등 200여 명이 모였다.

30여 년째 포이동에 살고 있는 정원자(62)씨는 한기가 올라오는 길바닥에 겨우 신문지를 깔고 앉았다. 손에는 '강제이주 인정하고 주민등록 등재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었다.

@BRI@정씨에게 이 같은 일은 이미 일상이 된 듯 보였다. 2003년 이후 40여 차례 진행된 강남구청 앞 집회 시위에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정씨는 "족쇄처럼 따라다니는 토지변상금 때문에 이사를 못간다"면서 "그렇다고 자식들에게 빚을 물려줄 수도 없어 투쟁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씨는 1974년부터 포이동 1번지(당시엔 성동구)에 살았다. 그러다 1988년 개포4동사무소가 그 자리에 들어서면서 포이동 266번지로 강제 이주됐다. 서울시의 구획정리로 1989년 포이동 1번지가 없어졌지만(포이동 211번지로 바뀜) 그의 주민등록표에는 아직도 포이동 1번지로 되어 있다. 이른바 '유령 주소'에 살고 있는 셈이다.

이러다 보니 시민권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 자녀를 원하는 학교에 보낼 수 없고, 국민건강보험 등 사회보험 혜택을 받기도 힘들다. 우편물을 제때 받지 못해 불편을 겪기도 하고, 선거인명부에 이름이 올라 있지 않아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사회당, 빈민해방철거민연합(빈철연), 대학생 사람연대 등이 주최한 이날(12일) 집회는 살을 에는 혹한 속에 3시간 동안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사람잡는 토지변상금 즉각 철회하라"고 외쳤다. 또 주민등록 등재 거부 이유를 묻는 공개질의서를 민원실을 통해 맹정주 강남구청장에게 전달했다.

한국 사회의 모순이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난 서울 강남구 포이동 266번지를 좀 더 들여다 보자.

1980년대 초 서울 강남구 포이동 266번지 모습.
1980년대 초 서울 강남구 포이동 266번지 모습. ⓒ 포이동 266번지 사수대책위원회
도심 속의 '외딴섬' 포이동 266번지

1979년 7월 박정희 정권은 전쟁고아와 넝마주이들을 한 곳에 모아 정착시키기 위해 이른바 '자활근로대'를 발족한다. 군사정권은 이 자활근로대 소속 500~1000명을 환경 미화라는 이름으로 1981년 3월 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정보사 뒷산으로 집단 이주시켜 정착하게 했다. 사실상 '몰이'를 한 것이다.

정부는 공공 부지 재활용과 도시 재정비 정책에 따라 같은 해 12월 이들을 다시 10개 지역으로 분산시켰다. 이 가운데 50여 명을 포이동 200-1번지(현 266번지) 일대 3800여 평의 서울시 소유 하천 부지로 강제 이주시켰다. 강남자활근로대 제1-2지대 소속으로 강남경찰서가 관리했다. 그 뒤 두세 차례 강제이주가 더 이루어지고 대원들이 대부분 가정을 꾸리면서 현재 98가구 360여 명으로 불어났다.

한 채당 수십억원짜리 펜트하우스 타워팰리스가 있는 곳. 우리나라 고급 외제차의 절반이 굴러다닌다는 우리나라 최고의 부자동네 강남구. 그 속에 하루하루 끼니 걱정을 하며 살아가는 서울 강남구 포이동 266번지 사람들의 기막힌 인생유전이 있다.

핵심쟁점, 포이동 266번지 주민들과 서울시 강남구청의 갈등

포이동 266번지 관련 가장 큰 쟁점은 강제이주 사실 여부와 주민등록 등재, 토지변상금 부과 문제 등이다. 먼저 포이동 266번지 주민들과 서울시(또는 강남구청) 사이의 모든 입장 차이는 강제이주 사실 여부를 둘러싼 공방에서 출발한다.

서울시는 1981년 당시 택지개발사업지구인 포이동 200-1번지로 주민들 스스로 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공권력에 의한 강제이주가 아니라는 것이다. 자활근로대 관련한 서류도 남아 있지 않다는 입장이다.

김영배 서울시 도시관리과 팀장은 "행정관청에서 강제로 보낸 것이 아니라 그분들 스스로 당시 택지개발사업지구인 포이동 200-1번지로 들어갔다"며 "이는 서울시 체비지인 남의 땅에 불법으로 무단이주한 것"이라고 말했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서울시가 도서관 부지 지정을 풀지 않고는 포이동 266번지 문제 관련 해법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서울시가 도서관 부지 지정을 풀지 않고는 포이동 266번지 문제 관련 해법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 석희열
이에 대해 조철순 포이동 266번지 사수대책위원장은 '강남자활근로대 제1-2지대'라고 적힌 대원등록증을 제시하며 정면으로 반박했다. 1983년 2월 10일 강남경찰서장이 발급한 이 대원등록증에는 자세한 신상정보와 함께 유효기간까지 구체적으로 적혀 있다.

조 위원장은 "대원등록증과 자활근로대 신상카드는 그럼 누가 만든 것이냐"며 "우리 보고 무단점유를 했다고 하는데 물도 없고 길도 없고 전기도 없는 허허벌판에 강제이주가 아니라면 누가 들어가고 싶었겠냐"고 따졌다.

금민 한국사회당 대표는 "포이동 266번지 문제는 개발독재와 관련하여 과거사 청산 문제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며 "정부는 공권력이 부당하게 행사된 데 대해 사과하고 잘못 부과된 토지변상금을 철회해야 한다"고 말했다.

포이동 주민들은 번지도 없다

서울시는 1988년 12월 31일 강남구 개포동 일대 구획정리사업을 마침으로써 이듬해 1월부터 포이동 200-1번지를 266번지로 바꿨다. 하지만 포이동 주민들의 266번지 주민등록 등재는 허락되지 않았다. 266번지(옛 200-1번지)가 서울시 지정 도서관 부지라는 이유에서다.

강남구청 자치행정과 관계자는 "국가 하천부지 택지개발사업이 진행되면서 포이동 266번지는 이미 1987년 4월에 서울시에 의해 도시계획상 도서관 부지로 고시됐다"며 "따라서 도서관을 짓기로 지정된 이곳에 주민등록을 등재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사람이 살고 있는 땅을 도서관 부지로 지정해도 되는지와 20년째 용도 지정만 해놓고 도서관을 짓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주민등록 등재를 위해서는 서울시가 도서관 부지 지정을 풀어 용도 변경하든지 강남구청에 그 땅을 팔아야 한다"며 "그렇지 않다면 현행법 테두리 안에서 주민등록 등재는 사실상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주민등록 등재를 꼭 해야겠다면 소송을 통해 법원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1983년 강남경찰서가 발급한 강남자활근로대 대원증.
1983년 강남경찰서가 발급한 강남자활근로대 대원증. ⓒ 포이동 266번지 사수대책위원회
반면 조철순 위원장은 "89년 이전에는 주민등록 등재를 해줬는데 강남이 개발되니까 우리를 죽이기 위해서 도서관 부지를 지정한 것"이라며 "하천부지일 때는 주민등록 등재를 해주고 자기들 마음대로 도서관 부지로 지정, 주민등록 등재를 해줄 수 없다 하는 것은 어느 법에 있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도서관 지정만 해놓고 20년째 도서관을 짓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주민들을 몰아내기 위한 행정폭력"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창수 새사회연대 대표는 "사람이 분명히 살고 있는데 그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면서 "국가든 자치단체든 국민의 실체를 먼저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민들의 토지 점유가 불법이냐 아니냐는 다른 문제라는 것.

포이동에 부과된 토지변상금 70억원

서울시가 1990년부터 포이동 266번지 116세대(사업자 포함)에 대해 해마다 물린 토지변상금은 연체이자를 포함하여 모두 7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세대당 평균 6034만원 꼴이다.

하지만 강남구청 도시계획과는 12일 포이동 266번지 모든 세대에 부과된 토지변상금은 2006년 말 현재 연체이자 포함 36억원이라고 밝혔다. 이는 실제 부과된 변상금의 절반 수준으로 여론 등을 의식하여 축소한 의혹을 짙게 하는 대목이다.

실제 강남구청이 지난 2004년 주민들에게 열람케 한 포이동 266번지 토지변상금 부과 현황에 보면 2003년 말 현재 이미 60억원(원금 30억7000만원, 연체이자 30억원)을 훌쩍 넘었다. 한 해 평균 4억2800만원씩 부과된 셈이다. 이를 2006년까지 환산하면 72억원을 넘는 것으로 나온다.

서울시 도시관리과 김영배 팀장은 "불법 무단 점유자이기 때문에 포이동 주민들에 대한 토지변상금 부과는 법령에 따라 적법한 것"이라고 말했다.

포이동 266번지 주민들은 서울시가 강제이주 사실을 인정하고 토지변상금을 철회하면 정당한 토지사용료를 내겠다는 입장이다. 자신들을 불법 점유자로 몰아 부과하는 토지변상금은 낼 수 없지만 정당한 고시 가격에 따른 토지세는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04년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는 '빈곤층 집단거주지역 주민등록 전입 관련 지침'을 통해 빈곤층 집단거주지역 실제 거주민이 전입을 원할 경우 적극 전입조치하도록 권고했다. 하지만 강남구청은 예외 단서조항을 들어 이 같은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편 포이동 266번지 주민들은 조만간 실제 거주지 주소인 포이동 266번지로 전입을 해달라는 진정을 국가인권위원회에 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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