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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5.6 나들이, 종이 위에 수채
2000.5.6 나들이, 종이 위에 수채 ⓒ 류해윤

@BRI@나의 아버지.
당신이 그렇게 할아버지 초상화를 그려보라는 주문에도
아랑곳 하지 않는 자식을 대신해 어느 날 손수 붓을 들었다.
말이 별로 없으신 당신은 그 때부터 은밀하게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그림 속으로.

칠순의 노부부가 빨간 스포츠카에 올라
시원한 강줄기를 따라 꽃길을 따라
봄날을 달린다.

어릴 적 시골집에서 늘 보았던 '워리'라고 불리던 그 강아지?
똥개였다. 마루에 퍼질러 놓은 사촌 아가의 그것을 깔끔히 처리하곤 했었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다양하게 붉은 색들이 시선을 붙든다.
선정적인 빠알간 스포츠카에 붉음이 물들기라도 하듯
빗살무늬 넥타이, 지팡이, 조끼 속 블라우스(이 옷은 실제로 보았던 기억이 있다),
길가엔 백일홍인가?
가부장적 가치관이 조수석에 앉은 당신의 차림과 표정에 베어 있다.

두 분 모두 운전할 줄 모르지만 세심하게 배려된 구석구석을 살펴볼 때
대단히 사실적인 그림이다.

아~ 칠순의 가슴이 이러할 줄이야!


화가 류장복은 자신의 블로그에 자신과 그의 아버지인 류해윤 옹의 그림들을 담아놓았는데 그 중 류 옹의 그림 <나들이> 밑에 위와 같이 써놓았습니다. 류 옹은 그 그림에 45년 서울살이에서 한번도 키워보지 못한 개(정겨운 누렁이)를 뒷자리에 앉혀놓고, 중절모에 턱수염까지 멋지게 기를 정도로 세밀한 희망을 담아놓은 것입니다.

사실 두 작가는 저의 시댁 어른들입니다. 시아주버님 류장복(51세)이 학생 때부터 그림쟁이로 살아왔으니 족히 30년의 전력은 갖고 있는 분입니다. 시아버님 류해윤(79세)은 어릴적 꿈이었던 그림을 71세에 시작하여 이제 10년이 되어 갑니다. 두 분은 부자지간이지만 그림의 선후배이기도 한 것이지요.

2004.1.17 철암천변, 종이에 칼라압축목탄 64.8×101.6(cm)
2004.1.17 철암천변, 종이에 칼라압축목탄 64.8×101.6(cm) ⓒ 류장복

두 분이 지난 1월 5일부터 갤러리 쿤스트독에서 2인전을 하고 있는데, 14일(일) 늦은 5시에 작가와의 대화 시간을 갖는다고 합니다. 초대장에서는 그 시간을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자유스러운 질의응답 시간을 가진 후, 조촐한 와인파티와 함께 이순의 춤과 이경훈의 판토마임을 감상할 예정입니다. 잃어버린 기억 속의 풍경 무릉도원과 철암 진경, 그리고 육중한 몸의 춤, 언어 이전의 언어 판토마임이 한데 어우러져 공감각적 한마당을 빚어내는 작은 총체극을 기대해 봅니다."

1999 금강산만물도, 종이에 혼합채색, 2절
1999 금강산만물도, 종이에 혼합채색, 2절 ⓒ 류해윤

아버님은 작년에 갤러리 쌈지의 새해 첫전시로 첫 개인전을 가진 뒤, 가을에 전라도 광주에서 두 번째로 전시회를 갖고 이번이 세 번째로 아들과 2인전을 하게 된 것입니다. 당신은 슬하에 아들 셋을 두었는데 화가 류장복이 그 둘째이고, 저의 남편이 막내입니다. 45년전 고향 경남 합천에서 막내를 강보에 싸안고 상경하여 길음동에 터 잡고 45년을 한결같이 조그만 세탁소를 운영하여 자식들을 키워왔고, 이제 틈만 나면 그 한 켠에서 그림을 그리십니다.

제가 한 점 달라고 아무리 졸라도 아주버님이 절대로 아무도 안주고 보관하고 있는 아버님 작품이 벌써 500여점 가까이 되어가니 실로 엄청난 열정으로 다작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아버님은 당신 가슴 속 우물에서 추억과 희망을 길어내는대로 모두 표현해내고 싶어하시는 것만 같습니다. 아버님 그림을 보면 마음이 순수해지고 밝고 따뜻해진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평입니다.

2001.4 눔, chacoal & acrylic on canvas 130x130(cm)
2001.4 눔, chacoal & acrylic on canvas 130x130(cm) ⓒ 류장복

그다지 많은 작품들을 섭렵해보지 않은 저로서는 아주버님만큼 데생에 힘이 넘치는 작가를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초기부터 인체 그림을 많이 그리셨는데, 저는 그가 사람의 몸에 시대의 고뇌를 담아내고자 혼신을 다 하며, 고통과 번민 속에 강하게 단련되고 있는 사람을 희구하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2001년부터 아주버님은 성장을 멈춘 탄광촌인 철암과 태백에서 문하생들을 이끌고 그림을 그리셨습니다. 98년부터 '철암공동체 운동'이 시작되었으니 아주버님이 철암 지역의 문화운동, 교육운동의 한 부분을 담당해왔다 할 것입니다. 단아하고 소박한 철암역에서 전시회도 열고, 철암 아이들과 미술 작업도 하였습니다. 철암 그림들에서도 역시 석탄 같이 새까만 고뇌와 그 고난을 극복하려는 강한 힘이 꿈틀꿈틀대는 것만 같습니다.

2006년 1월 초, 갤러리 쌈지에서의 첫 개인전 때 관객에게 작품 설명하는 류해윤 옹.(늘 세탁소에서 허름한 남방 입고 계시던 아버님께 전날 제가 코트에 베레모와 안경까지 새로 맞춰드린건데 좀 예술가다워 보이나요? 하하하...)  가운데가 그의 아들이자 '선배' 화가인 류장복씨.
2006년 1월 초, 갤러리 쌈지에서의 첫 개인전 때 관객에게 작품 설명하는 류해윤 옹.(늘 세탁소에서 허름한 남방 입고 계시던 아버님께 전날 제가 코트에 베레모와 안경까지 새로 맞춰드린건데 좀 예술가다워 보이나요? 하하하...) 가운데가 그의 아들이자 '선배' 화가인 류장복씨. ⓒ 박수호

아래는 작가 류해윤, 류장복에 대한, 평론가 심상용씨의 평을 발췌한 내용들입니다.

"시각적으로 류장복의 드로잉들은 소박하고 겸허하다. 일체의 장식효과, 인위적이거나 억지스런 변주, 특히나 도회적 세련미와는 거리가 멀다. 차라리 가난해 보일 지경이다. 색채라 해야 목탄의 독주를 겨우 조금 완화시키는 정도다. 채색의 화려함은 절제된다. 영웅적인 구성은 제일먼저 포기된다. 그러나 류장복의 필력은 세련미가 물씬 풍긴다. 곰삭은 목탄의 색은 집과 산과 언덕과 나무를 한 번에 끌어안고도 남는다. 필은 날렵하고 더디고의 리듬을 잘도 탄다. 이 모든 것들엔 지나침이 없다."

고향
고향 ⓒ 류해윤

"류해윤 옹의 회화도 매한가지로 소박하다. 기교라곤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여기에 원근법, 비례, 해부학적 엄격성 따윌 들이대는 건 넌센스다. 류해윤 옹의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모든 제한을 넘어서는 더 너른 자유가 요구된다."

2006.5.1 철암역 앞 ‘역전슈-’ 아저씨를 위한 기념비적 초상, 재생 한지에 목탄과 콘테 78.5×109(cm)
2006.5.1 철암역 앞 ‘역전슈-’ 아저씨를 위한 기념비적 초상, 재생 한지에 목탄과 콘테 78.5×109(cm) ⓒ 류장복

"류장복의 목탄은 겹치고, 문질러지고, 눌리고, 짓이겨지는 신체적인 과정들을 통해, 역설적이게도 정신과 마음을 드러낸다. 그가 강원도 철암을 사랑하는 모습이 한 예가 되고도 남는다. 그가 어떻게 철암을 만나고, 쓰다듬고, 애무해 왔던가를 보라! 그러면 금방 알 수 있듯, 류장복에게 대상은 없다. 관심을 갖고 다가서고, 애정을 쏟아야하는 상대가 있을 뿐이다."

1999.10.5 한우목장마을
1999.10.5 한우목장마을 ⓒ 류해윤

"류해윤 옹의 그림들은 마치 흡연을 경험하지 않은 폐처럼 맑다. 섬세하고 조밀한 붓 터치는 그 각각의 허파꽈리처럼 투명하다. 류장복이 수십 년 간 몸에 밴 악습으로부터 멀어지려 안간힘을 쓰면서 나름 인고의 시간을 지나왔다는 점을 환기하자. 류해윤 옹은 이런 류장복의 각고의 노력을 단번에 훌쩍 뛰어 넘는다.

작가로서 류 옹은 훨씬 더 세상에 발붙이고 살면서도 훨씬 더 자유롭다. 세상으로부터 도망치거나 자신을 포기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류 옹의 그림들을 보노라면, 대상을 억압하지 않기 위해 주체를 포기해야 한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나가는, 요즘의 철학적 풍조와 예술론들이 실로 어처구니없는 자조와 편견에 기대어져 있다는 사실을 대번에 알게 된다.

해서 더욱 '그림을 배운다는 게 대체 무엇인가'를 물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보다 더 앞서 그림은 '배울 수 있는 것’이기는 한가? 화가와 조각가들은 미술대학에서 결코 배우지 말아야 할 거짓을 몸에 익히는 반면, 자신에 대해서는 더욱 무지하고 무미해진다.

인생의 후반부 내내 털어내야 할 먼지를 전반부 내내 뽀얗게 뒤집어쓰는 이런 식의 미술교육이야말로 역설적이고 소모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류 해윤 옹은, 그러니까 류장복의 부친이기도 한 칠순을 넘긴 그는 작가로서 이 같은 전철을 밟지 않아도 되었다."

30년만에 상봉한 부녀의 이산가족
30년만에 상봉한 부녀의 이산가족 ⓒ 류해윤

"류해윤 옹과 류장복 두 사람 사이의 가장 의미 있는 공통점은 바로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에 전적으로 소속되어 있다는 점이다. 기억해내는 것 뿐 아니라, 꿈꾸는 것조차도 애정을 가지고 자신의 현세적 삶을 느끼는 것과 결부되어 있다.

또한 이들의 그림들이 동일하게 기대고 있는 미덕은 구분되어 있지 않은 원초성, 조작되어있지 않음, 그리고 세계와 자신을 향한 진솔한 다가섬이다.(모두 미술수업을 통해 습득되긴 어려운 가치들이다) 이 출중한 두 화가의 그림이 우리의 마음으로 걸어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 이 예술가들은 가느다란 숯필과 붓이라는 가난한 도구로 우리에게 서계와 시대 전체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류해윤, 류장복 회화전은 오는 1월 18일까지 열립니다. 1월 14일 오후 5시에는 두 작가와의 대화 시간을 갖습니다. 갤러리 쿤스트독(02-722-8897)은 경복궁 지하철역 4번 출구로 나와, 경복궁 돌담을 끼고 청와대 쪽으로 500미터 가서, 검문소 앞에서 왼쪽으로 들어가면 30미터 앞 '골프shop' 옆 골목 안에 있습니다. 두 작가의 그림들은 화가 류장복의 블로그  kr.blog.yahoo.com/ryujangbok에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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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생명들과 더불어 평화로운 숨을… 사람과 동물의 관계를 모르고, 인권,생명,생태란 시대적 화두를 풀어갈 수 있는가? ♥ 좋아하는 문구 : 세상을 본다 = 다른 이들의 아픔을 느낀다/ 단순한 거짓말, 복잡한 진실/ 특이성을 생산해 배치와 관계망을 바꿔나가기/ 소수자되기는 성공주의와 승리주의의 해독제/ 더불어 숨쉬고 더불어 자라기/ 분자혁명. 나비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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