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대통령의 '평화의 바다' 제안과 관련하여 최근 동해 표기 문제가 다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일부 한국인들은 "어떻게 동해 명칭을 포기할 수 있는가?"라며 분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냉정하고 현실적인 시각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사안과 관련하여 일부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인식상의 문제점들은 다음과 같다.
@BRI@첫째, 동해 표기 문제와 독도 영유권을 혼동하는 일부의 경향이 있다. 하지만, 동해에 어떤 명칭이 부여되든 간에 독도에 대한 한국의 영유권에는 변동이 있을 수 없다. 대한민국 국군이 독도를 외국에 빼앗기지 않는 한, 동해 명칭이 어떻게 변경되든 간에 독도는 '영원한 대한민국 영토'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이 점과 관련하여, 독도 영유권은 주권과 관련된 사안이지만 동해 표기 문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각 나라가 동해를 어떻게 부르든지 간에 원칙상 그것은 각국의 자유에 속하는 문제다. 독도 영유권은 주권적 사안이고 동해 표기 문제는 비(非)주권적 사안이라는 점에서 양자는 전혀 별개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국제사회가 동해를 어떻게 부르든 간에, 대한민국의 군대가 건재하는 한 독도가 외국에 넘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는 마치 아시아 남부와 아프리카 동부 사이에 있는 큰 바다의 명칭이 인도양(Indian Ocean)이라고 해서, 그 바다 전체가 인도(India) 영해가 아닌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둘째, 동해 표기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이 불리한 입장에 있다는 사실이 인식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동해 표기 문제에 관한 한 일본이 '챔피온'이고 한국은 '도전자'라는 점이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동해'보다도 '일본해'라는 표현이 압도적으로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는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독도는 어차피 한국이 실효적으로 점유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이 무슨 말을 하든 간에 한국이 일단 지키고 있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동해 표기의 경우에는 한국이 도전자의 입장에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대하는 한국의 태도도 달라지지 않으면 안 된다. '챔피온'보다 더 많이 연구하고 '챔피온'보다 더 좋은 명칭을 개발하기 위하여 보다 더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도전자 한국의 처지인 것이다.
셋째, 동해 명칭의 최종적 판정자는 제3자인 국제사회라는 점이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한국이 동해를 고집하건 일본이 일본해를 고집하건 간에, 이 사안의 최종적 판정자는 결국 제3자들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제3자인 국제사회가 한국·일본의 의사를 무시하고 전혀 다른 명칭을 사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양국의 의사와 관계없이 전 세계가 전혀 다른 명칭을 사용한다면, 글로벌화 추세를 고려해 볼 때에 결국에는 한·일 두 나라도 그 명칭을 따르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물론 당사자인 한국이나 일본의 의견을 존중하겠지만, 어떤 명칭을 사용하느냐 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국제사회와 각국의 판단에 달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이전부터 동해라는 명칭이 국제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었다면, 이제 와서 새삼스레 국제사회에 호소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국제사회가 해양 명칭의 표준화를 추구하고 있고 또 국제사회가 이미 일본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일본해라는 명칭에 제동을 걸려면 국제사회를 납득시킬 만한 카드를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위와 같이, 동해 표기 문제와 관련하여 일부 한국인들은 ▲동해 표기 문제를 독도 영유권과 혼동하고 있고 ▲이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이 불리한 입장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이 문제가 결국에는 국제적 문제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한다면, 도전자 입장에 있는 한국으로서는 일본보다 더 참신한 명칭을 국제사회에 내놓고 그들을 납득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국제사회를 납득시키지 못하면, 한국이 아무리 동해를 고집한다 해도 세계 각국의 지도책에서는 여전히 '일본해'가 대세를 이루게 될 것이다.
그럼, 일부 한국인들이 고집하고 있는 '동해'라는 명칭은 과연 국제사회에서 보편적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것일까? 이 대목에서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영국과 유럽 대륙 사이에 북해(North Sea)라는 바다가 있다."
"중국 동남쪽의 두 바다를 각각 동중국해(East China Sea), 남중국해(South China Sea)로 부르고 있다."
아마도 이러한 실례를 근거로, "바다 명칭에 동·서·남·북을 넣어도 국제적 지지를 얻을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동해(East Sea) 역시 무리한 명칭이 아니다"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북해나 동중국해·남중국해 등은 이미 국제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동해는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 북해라는 명칭이 개념적으로 정확하지 않고 또 동중국해·남중국해 같은 명칭이 공정하지 않더라도, 그러한 명칭들은 이미 국제사회에서 보편성을 얻고 있다.
하지만, 동해라는 명칭은 국제적 보편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이 일본해라는 명칭을 극복하려면 국제적 보편성을 획득할 만한 새로운 명칭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리고 동해라는 명칭은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계속 국제적 보편성을 얻기가 힘들 것이다. 한반도가 세계의 중심이라는 점에 대해 아무런 국제적 공감대가 확립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한반도와 일본열도 사이의 바다를 동해라고 불러줄 나라는 별로 없을 것이다. 그리고 한반도의 역량이 일본의 국력보다 더 강하다는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일본을 무시하고 한국측 명칭을 편들 나라도 별로 없을 것이다.
또 실용적 편의라는 관점에서도 동해가 일본해에 비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지구 반대편에 사는 서양인들의 입장에서는 한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 바다를 한국해나 일본해라고 부를 수는 있어도 동해라고 부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제반 사항을 고려한다면, '동해'가 '일본해'를 꺾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음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이 계속해서 동해 명칭만을 고집한다면, 그것은 도리어 일본해라는 명칭을 국제적으로 보다 더 확립시키는 결과만을 초래할 것이다.
한국이 일본해라는 명칭에 제동을 걸려면 다음과 같은 2가지 자세를 견지해야 할 것이다.
한 가지는, 일본해라는 명칭에 대해 꾸준히 이의를 제기함으로써 이 문제를 국제적 쟁점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국제사회에 '재심'의 필요성을 인식시키지 않으며 안 될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일본해보다 더 국제적 공감대를 일으킬 수 있는 새로운 명칭을 제시함으로써 국제사회를 설득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국제사회에 '일본해'라는 명칭의 부적합성을 인식시키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