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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그러지. 넌 왜 좋은 대학까지 나와서 굳이 공장에 들어 가냐고. 그런데 노조니 파업이니 무슨 대단한 목적이 있어서 들어온 게 아냐. 그냥 노동자가 되어 보고 그들을 이해하고 싶었어."지난 1월 13일 밤 8시, 충북 청주시 가경동의 낯선 밤거리에서 세 달 만에 '그'를 만났습니다. 저 멀리 러브호텔과 룸살롱의 화려한 네온사인 밑으로 고동색 점퍼를 걸친 한 노동자가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학생 티는 온데간데없고, 그는 완연한 노동자가 다 되어 있었습니다.서울에서 편하게만 살아오던 그가 '현장'을 결심한 건 작년 10월입니다. 대학 시절 오랫동안 학생운동을 해왔던 그는 졸업을 앞두고 고심 끝에 청주의 한 전자공장에 위장취업했습니다. 졸업이 운동을 정리하는 데 공식적인 면죄부가 되고 있는 요즘의 학생운동 풍토에서 그는 흔치 않은 선배였습니다.80년대 학생운동 활동가들의 활발한 공장 이전은 이제 '옛말'이 되었습니다. 신화가 된 과거일 뿐입니다. 졸업에 겁부터 나는 것은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입니다. 올해는 6월 항쟁 2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제 80년대처럼 정해진 길은 없습니다. 학생운동 활동가들은 '운동'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며, 다양한 길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80년대가 '현장으로'였다면, 오늘날 이들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걸까요? 낯선 곳에서 노동자로 살아가는 것이란 그가 혼자 살고 있는 열 평 남짓한 방은 사람이 적을 두고 생활하는 곳이라기보다는 어느 이름 모를 기차역 부근의 여인숙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작은 방에 비해 어색하게 큰 침대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냉장고에는 생수통만이 있었습니다. 그의 현장 생활의 고단함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습니다. 침대에 기대어, 글라스에 소주를 부었습니다."요즘은 운동을 직업적으로 고민하는 학생들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사회가 많이 바뀌었으니까. 꼭 공장에 들어가야 하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돈과 명예 때문에 운동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고 봐. 남들의 자기를 어떻게 볼까 신경 쓰이는 거지."가슴이 뜨끔했습니다. 남의 얘기처럼 들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배반한 유다의 심정이 이런 걸까요. TV에서는 '무한도전' 멤버들이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어서 "근데 우리가 진로를 고민할 수 있다는 거 자체가 특권이더라, 여기서 보니까 공고 졸업하고 바로 공장에 들어와 돈 버는 사람도 많거든"하고 덧붙였습니다.밤11시도 채 되지 않아 그는 "나 침대에 좀 누워도 되지?"하고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습니다. 졸음이 몰려 오는 모양입니다. 오랜만에 찾아온 후배와 한마디라도 더 나누고 싶었는지 늘어진 테이프처럼 힘겹게 말을 이어갑니다. "노동자는 정치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어. 10시간 일하고 나면 정치고 뭐고 피곤해서 다 귀찮거든. 일하고 자는 게 전부야. 피곤해서 다들 집에 가기 바쁘지."그가 생산직으로 일하고 있는 전자공장은 아침 8시에 출근해서 저녁 7시 30분에 퇴근이라고 합니다. 12시간에 가까운 노동입니다. 게다가 일요일도 없습니다. 그날은 토요일 밤이었지만 그는 벌써 다음날의 출근을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언론계 진출, 소신일까 환상일까@IMG2@고려대 앞 카페에서 만난 백시원(고려대· 사회학 3년)씨는 졸업을 앞두고 방송사 PD시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녀 역시 학생운동을 했습니다. 2004년 그녀는 당시 학교의 신축건물이었던 '타이거플라자'의 건설 비용에 학생복지기금이 유용됐다며 항의운동을 벌였습니다. 2005년에는 과 학생회장으로 교육투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그녀가 이제는 과실에 갈 시간도, 과실에 갈 계기도 찾기 힘들다고 합니다. 졸업을 앞두고 언론사 입사를 택한 이유를 물어보았습니다. "선두에서 급진적으로 투쟁하는 것보다 여러 사람이 한 발자국 나가는 게 더 중요한 거 같다고 생각해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진보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요. 물론 보수가 안정적이라는 이유도 빼놓을 수 없겠지만."그녀는 시험을 준비하면서 회의감이 들 때도 많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결정이 현실과의 '타협'은 아닌지 의문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원래 독립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게 꿈이라고 했습니다."물론, 메이저 방송사에 들어가면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할 수 없을 거란 고민도 들어요. 특히 노동현장을 담는 데는 제약이 많이 있겠죠. 시청률도 발목을 잡는 거고."복잡한 심정이 엿보였습니다. 한 활동가는 운동권이 언론계로 몰리는 현상을 두고 "기자란 직업을 통해 자신의 정치성을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큰 착각"이라며 씁쓸해 했습니다. 얼마 안 되는 활동비, 그래도 원하는 길을 걷는다남부터미널 부근에서 만난 김모(24)씨는 작년 12월부터 사회운동단체에서 기관지를 만들며 상근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동국대에서 학생운동을 하다가 작년에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사정을 묻는 질문에 "학생운동이 버거웠고, 집안 문제가 있었다"며 말을 흐렸습니다. 사회단체에서 활동하게 된 까닭을 물어보았습니다."운동권에게 선택권은 별로 넓지 않아요. 선배들 대학원 가는 게 대부분이에요. 할 거 없으니까 대학원 간다고 하는 게 결국 쉬운 길 찾아 가는 게 아닌가 싶죠. 운동판에서도 지식인이나 인권변호사는 우대 받고 노동자는 멸시 받는 세상이에요. 저는 여기서 노동자들 만나고 기관지 만드는 게 좋아요. 나중에는 교육과정을 이수해서 성폭력 상담사가 될 거에요." 그녀는 상근활동가 중에서 자신이 가장 어리다고 했습니다. 보통 사회단체들이 그렇듯이 '활동비' 명목으로 주어지는 돈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원하는 길을 떳떳이 걷고 있는 그녀입니다. 그녀는 감옥에서 출소한 노동자를 취재한다며 청주행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졸업을 앞둔 활동가 A(28)씨는 "요즘은 평생운동이란 개념이 많이 없어진 것 같다. 운동이 학생 때만 하는 것은 아닌데…"하고 씁쓸해 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활동가들의 사회진출이 다양해진 것도 사실입니다. 노동현장에 집중됐던 80년대와 달리 요즘은 미디어나 환경, 여성, 교육 분야로 폭넓게 진출하고 있습니다. 활동가들에게 직업은 단지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닙니다. 대학 시절 품었던 이상과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생이별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운동하며 먹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는 한 활동가들의 푸념이 귓전에 맴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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