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음악이 아니면 개그가 진행될 수 없다.
지상파 3사에서 개그 삼국지의 본격화가 이루어진 바탕엔 음악 개그의 힘이 작용하고 있다. 80년대 장두석이 본격화 시킨 음악 개그는 세월의 변화에 따라 다양해 졌다. 음악 개그는 전적으로 개그맨의 음악적 재능에 달려있다. 따라서 음악 개그의 다양화는 개그맨들의 음악적 재능이 크게 뒷받침되고 있음을 뜻한다.
개그맨의 가창력은 이제 특별한 장기도 아니며, 오히려 웃기는 능력 외에 개그맨이 갖추어야 할 하나의 필수 요건이 되고 있다. 가수 뺨치는 노래와 춤 실력으로 음반을 발매하는 사례도 늘어가고 있는데, 수익성 여부에 관계없이 당분간 증가세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음악 개그는 개그맨들의 실력을 발휘하는 무대이자, 새로운 활동 영역을 뻗어나가기 위한 도약대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악 개그의 활성화는 개그맨들의 노동 강도만 증가시켰을 뿐,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동반하진 않았다.
우선, 음악 개그를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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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반전 개그
반전 개그는 전반부의 흐름을 노래를 통해 반전시켜 웃음을 유도한다. KBS <개그콘서트>(개콘)의 '뮤직 드라마'는 슬픈 연기 중에 갑자가 우스운 랩을 한다. '야야야 브라더스'는 멕시칸 풍의 노래로 상황을 반전시켜 웃음을 자아내려 한다.
즉, "아야야야야~ 야야야야오~"라는 단순한 멜로디로 흥을 일으킨다. MBC <개그야>의 '크레이지'는 순간순간 변하는 톤이 포인트다. SBS <웃찾사> '보이스 포 맨2'도 진지한 노래 뒤에 반전을 노리는데 다만, 관객을 지목해 익살스러운 노래 말로 웃음을 자아낸다.
②립싱크와 모방 유형
노래를 직접 부르지 않고 입 모양만 모방하는 유형과 다른 가수들의 창법과 몸짓을 흉내 내는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개콘> '봉숭아학당'에서 루치아노 파바로티를 패러디한 '빠박로티'가 대표적 예다. <개그야> '뮤직스토커'는 스토킹 혐의 진술 가운데 대중가요의 한 부분을 립싱크로 대사하는 것이 포인트다.
80년대부터 이러한 개그는 많이 시도되어 왔다. 이는 90년대에도 이어졌는데 명확한 간인을 주었던 것은 '허리케인 블루'였다. 1996년 김진수와 이윤석은 '허리케인 블루'라는 듀오를 만들고 '퀸', '스틸하트' 같은 록 그룹의 격한 몸짓이나 표정을 노래에 맞추어 과장하여 흉내 냈다.
<웃으면 복이와요>의 '하나 되어'는 모창 종합선물세트였다. '아마데우스'는 출연 개그맨이 직접 노래를 부르지 않고 클래식 음악에 맞춰 얼굴표정으로 웃기는데 이러한 개그에서는 과장된 액션과 표정 연출이 핵심이다.
'허리케인블루'부터 '뮤지컬', '보이즈 포맨'까지
③노래 변형 개그
93년 MBC <웃으면 복이와요> '블랙커피'는 진지하게 노래를 부르지만, 전혀 화음이 맞지 않아 웃음을 터트리게 했다. <웃찾사> '4가지 합창단'은 동요의 '예의 없는' 가사를 개사해 합창단이 다시 불러보는 형식이었다. <개콘> '고음불가'는 인기가요의 노래 중 이수근이 저음이 끼어들어 웃음을 유발한다.
④노래, 음악 화법 개그
음악 개그의 원조라고 일컬어지는 80년대 KBS <쇼 비디오자키>의 '시커먼스'에서 이봉원과 장두석이 일정한 상황을 노래로 전개시키고, 마지막에 "망했다 망했다"라는 후렴구를 넣는다.
<웃찾사>에서 정만호, 윤성한의 '싸쓰' 듀오는 "파∼파파∼파파" 리듬조의 말을 통해 개그를 진행시켰다. 정만호, 윤성한은 이 개그가 '시커먼스'의 현대적 버전이라고 밝혔다. '바디밴드'는 요즘 유행하는 '음악개그'과 '슬랩스틱 개그'의 합성판이다. 대사는 전혀 없다. 단지 코와 배를 이용해 음악을 연주, 웃음과 더불어 감탄을 절로 자아내게 한다. '보이즈 포 맨2'는 일정한 상황을 설명하는 노래들이 극전개를 이끌어간다.
⑤브레이크 또는 인터벌 형
이 개그는 중간 중간에 음악을 섞어 넣는 방식을 말한다. 장두석의 '아르바이트', '부채도사'가 원조로 꼽히며 <웃찾사>의 '나몰라 패밀리'가 대표적이다. 중간 중간에 쉴 새 없이 랩을 쏟아내지만, 비단 랩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장르는 물론 모사도 불사한다. KBS <폭소클럽>의 '화니 지니'도 여기에 속하는데 사실 많은 음악 개그 장르가 이렇게 개그와 음악을 중간에 버무리는 형태다.
'크레이지'도 여기에 속하며 '맨발의 코봉이'에서의 '콩팥댄스'와 함께하는 '콩팥송', '누나누나'에서 현영의 '누나누나' 송, '이건 아니잖아'에서 이건 아니잖아는 반복적 리듬감의 노래며 이 자체가 유행어가 되었다. '나몰라 패밀리'는 랩, 댄스, 그리고 성대모사를 통해 그야말로 혼성음악 개그를 보여준다.
⑥뮤지컬 개그
<개콘>의 '뮤지컬'은 영화 속 한 장면을 그리듯이 하나의 완결된 작품을 지향한다. 아무래도 뮤지컬 열풍에 힘입은 듯하다. 노래가 우선이며 상황은 노래에 맞추어 극적으로 구성된다. 하나의 극적 완결성, 감수성 짙은 대사, 여기에 의외의 상황으로 웃음을 유발시킨다. 하나의 발라드에 맞추어 완결된 설정을 보이는 것이 흥미롭다.
코믹 뮤지컬 배우라는 색다른 캐릭터를 통한 '뮤지컬'은 하나하나가 작품이므로 한주에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과 다름없다. 음악 개그도 1회성 소모품이 아니라 감동을 남기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다른 작품들은 진지하게 흐르다가도 실없는 소모하게 만들지만, '뮤지컬'은 상황 자체의 웃음을 통해 진지한 여운을 유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음악 개그의 전성시대, 그러나...
개그에서 음악은 단순히 흥을 돋우는 수단이었지만, 이제 음악은 개그의 전개 도구일 뿐만 아니라 음악극 형태를 취하고 있다.
개그맨인지 가수인지 구분이 되지 않고, 여기에 자유자재로 노래와 춤 솜씨를 선보인다. 예전에는 음악이 개그에서 양념이었다면, 이제는 주재료가 된 것이다. 여기에 작곡까지 하며 독자적인 뮤지컬을 만드는 경지에 이르게 될 날도 멀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지금 너무나 많은 음악 개그가 중구난방, 우후죽순이다. 대중문화는 희소성이 강하다. 장르를 존속하기 위해 어떻게 차별화 시킬 것인지가 여전한 과제다. 과제는 또 있다. 개그맨들의 재능 수준과 창작 수준은 음악 개그에서 한층 높아졌지만, 한층 높아진 수준에 비해서 개그맨들에 대한 대우는 여전히 참담하다.
아무리 공을 들여도 개그는 1회로 소모되고, 주목을 받지 못하면 개그맨은 버려진다. 가장 강렬한 즐거움을 제공하고도, 더욱 무참히 소외된다. 더구나 근래 방송 3사의 무한 공연 경쟁 시스템에서 적자생존의 시스템은 개그맨들의 노동 강도를 강화하고 있다. 무한 경쟁 시스템이 한계와 있음을 비공개 코미디, 비공연 코미디 형식의 재도입에 대한 검토를 통해 인지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