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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전 교육부총리와 이필상 고려대 총장의 논문 표절이 큰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경기대(사학과) A 교수가 부친의 논문을 표절, 91년 교수임용에 영향을 미쳤다는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18일 A교수와 A 교수 부친의 논문을 확인해본 결과, 1989년 12월 동국대 국사학회에서 펴낸〈경주사학8집〉에 실린 해당 교수의 논문 <파발제고-중국의 파포제와 척후포제를 기준으로>는 1981년 국사편찬위원회의 한 학술집에 발표한 부친의 논문 <조선시대 군사통신조직…>과 대부분 내용이 같았다.

목차에서 A교수 부친의 논문은 조선시대의 군사통신분야인 봉수제와 파발제의 성립과 파발 조직, 전개의 전반을 다룬 것이며, 아들 A교수는 파발제가 그 기원을 중국에 두고 조선에 도입, 전개되는 과정을 기술하였다.

본문에서는 A교수의 '파발제고'는 그의 부친 논문 중 108쪽 '제3장 조선후기 군사통신의 변천'에 해당하는 것으로, A교수의 논문 77쪽 제2장 2절 파발의 조직과 파발군의 신분 이후 부분은 부친 논문 111쪽 제3장 2절 파발의 조직과 파발군 이후 부분과 내용, 인용사료, 각주, 서술순서, 심지어 문장부호, 도표에 이르기까지 내용이 일치했다.

똑같이 표절하다가 정작 부친의 논문 120쪽의 '인조 20년 10월' 표기를 A교수는 논문 86쪽에서 '정조 20년 10월'로 잘못 표기하기도 했다.

진상조사특위 "교수임용 영향 미치려 연구실적 조작"

▲ 1981년 A교수의 부친이 국사편찬위원회의 한 학술집에 발표한 논문의 111쪽.
ⓒ 김삼석
▲ 1989년 12월 A 교수가 동국대 국사학회의 <경주사학 8집>에 실은 <파발제고-중국의 파포제와 척후포제를 기준으로> 논문 76쪽. 위의 아버지 논문과 아래의 아들 논문 내용이 대부분 같다.
ⓒ 김삼석
논문 표절 여부에 대해 한국학중앙연구원(옛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박성진 박사(한국사 전공)는 지난해 8월 14일 '진실·개혁·통합을 위한 경기대학교 진상조사특별위원회'(위원장 이태일 경기대 총장·아래 진조위)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A 교수의 논문은 100% 표절된 논문으로 논문성립요건의 전제 자체를 상실하였다"고 진술한 바 있다.

지난해 8월 발행된 진조위 조사백서(발행인 이태일 총장)에서는 "이 논문이 임용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고의로 연구실적을 조작하였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면서 "이러한 연구실적물을 전재하여 제출하고, 또 그것이 받아들여져 온당한 업적으로 평가되어 교원에 임용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학교에도 책임이 있겠지만, 고의로 논문을 조작한 당사자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강조했다.

또한 "A 교수의 부친은 당시 아들이 교수 임용시 심사위원이었던 교수의 박사과정 지도교수였다"고 지적했다.

1991년 임용 당시 사학과 동양사전공 교수임용에서 임용후보자 중 동점자(131점)는 A 교수를 포함해 3명이었다. 진조위 조사백서는 "당시 A 교수의 논문 <파발제고…>가 표절된 논문이었음이 드러났다면 '최근 4년 이내의 200% 연구 실적' 점수가 줄어들어 교수임용에서 탈락되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6~7월경 A교수의 논문 표절의혹이 진조위의 조사대상이 되면서 징계위기에 놓이자 A교수 아버지의 제자였던 교수를 포함, 동료 사학과 교수들이 선처를 연명해 총장에게 제출하기도 했다.

학내공식의결기구인 징계위원회(위원장 김칠준 변호사)는 A교수에게 "해명하라"며 1차 통보를 내린 상태로 오는 23일 1차 회의를 연다.

A교수 "부친 논문 후반부, 내가 대신 쓴 것"

한편 지난해 10월 중순경 <교수신문>(발행인 이영수 경기대 교육학과 명예퇴직교수)은 한 방송사와 함께 교육계의 논문표절 시리즈를 다루면서 A교수 표절의혹을 기사화하려 했으나, 조판까지 마친 상태에서 A교수와 부친의 방문으로 표절의혹 기사가 빠지고 다른 기사로 대체됐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당시 A교수는 <교수신문> 기자의 질문에 "81년 아버지가 논문을 쓸 때 병을 얻어 내가 대신 그 글을 썼다"며 "당시 중국측 사료를 추가, 논문을 대폭 보완하였으며, 불필요한 부분 삭제 및 내용상 오류 수정, 난해한 원문을 풀이하는 등 두 개의 논문은 차이가 크다"고 주장한 바 있다.

17일 오후 2시 40분경 기자와 전화통화에서는 "왜 지금 이 문제를 다루는지 모르겠다, 토론회 때문에 통화를 계속할 수 없다, 저녁에 다시 통화하자"고 한 뒤 전화를 끊었고 이후 18일 오전까지 7차례 전화통화를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학계에서는 81년 당시 A교수가 서울대 동양사학 4학년이었으며, 아버지는 한국사를 전공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아버지 논문을 썼다"는 A교수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보고 있다.

한편 A교수 부친은 "아들이 직접 쓴 거다, 논문의 전반부를 내가 쓰다가 병이 있어 후반부부터는 아들이 썼다, 국사편찬위에 공동명의로 해달라고 했지만 도중에 저자이름을 바꿀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면서 "'파발제고' 논문은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논문이다, 그 글은 전부 아들 글이다, A교수에 대한 음해다"라고 주장했다.

<교수신문> 한 기자는 "그 때 A교수가 아버지 논문을 써주었다면 공동저자로 표기했어야 했다"면서 "그렇지 않고 같은 글을 전혀 다른 제목의 새 논문인 것처럼 쓴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관련 분야 한 학자는 "저간의 사정을 인정하더라도 표절에 해당한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이미 자신의 이름이 아닌 타인의 이름으로 발표된 논문이 선행연구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1991년 교수임용 과정에도 표절 문제 불거져

1991년 당시 경기대 사학과 학생들은 A교수 임용과정 직전부터 표절문제를 제기하며 부정교수 임용철폐투쟁을 180여일 펼치기도 했지만, 심사위원들(A교수 아버지의 제자 교수 등)은 세 후보 중 A교수를 임용했다.

이기영 진조위 전 사무국장은 "교수 임용과정에서 표절논문을 연구성과로 제출했고, 당시 세 사람이 동점자인 상태에서 탈락한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했다"면서 "진조위 조사 때 A 교수한테서 소명자료를 받았는데 정상참작은 되겠지만 대부분 자기 주관적인 내용 뿐이다. 해임사유가 된다"고 말했다.

임종혁 경기대 민주동문회장은 "학자적인 양심에 호소하고 싶다"며 "국가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에 아버지가 겨우 대학교 4학년인 아들을 공동저자로 올려달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밝혔다.

이태일 경기대 총장은 "학자는 개별독립체다"라며 "A교수 부친의 말이 사실일 수는 있으나 중요한 것은 아들이 썼다면 각주를 달아 '필자가 몸이 불편해 아들이 도왔다'는 내용을 실었어야 했고, 아들이 아버지 글을 인용했다면 마찬가지로 각주를 달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 총장은 "결국 아들의 글이 늦게 나왔기 때문에 아들이 베낀 것으로 진조위는 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진조위에서 문제제기를 했으니까 최종적으로 징계위원회에서 정밀검증 끝에 결론을 낼 것"이라고 답했다.

A교수는 1992년 경기대 교수 생활을 시작한 뒤 지금은 사학과 부교수로 있으며, 한일관계사연구회 총무이사 등을 맡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수원시민신문(www.urisuwon.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경기대학교, #사학과 교수, #남상호, #이태일 총장, #진상조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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