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 보고 빨리 집어 넣어라."
미국 버지니아 주에 있는 해리슨버그 고등학교 미적분 시간.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책상 위에 놓인 신문을 치우라고 불호령을 내린다. 하지만 학생들의 시선은 여전히 책상 위 신문에 꽂혀있다. 무슨 재미있는 기사가 실린 신문이기에 학생들이 골몰해 있을까.
NFL 기사가 실린 스포츠신문? 아니면 섹시스타 비욘세가 가슴을 드러낸 화끈한 연예 신문? 오 노! 바로 학교 신문인 <뉴스스트릭(News Streak)>이다.
<뉴스스트릭>은 2주일에 한 번씩 발행되는 학교 신문이다. 학교 신문하면 대체로 1면에 고리타분한 교장(교감) 선생님 말씀이 실리고, 재미없는 학교 소식이나 홍보, 구색 맞추기 식의 교사나 학생 수필, 독후감 등이 실리는 기관지(?) 정도를 연상할 지 모르겠지만 <뉴스스트릭>은 다르다. 어떻게 다르냐고?
재미가 쏠쏠한 학교 신문
우선 재미가 있다. 그것도 재미가 조금 있는 게 아니라 무지하게 재미있다. 틴에이저들이 어떤 아이들인가. 좀 과장되게 말한다면 그들은 '재미에 살고 재미에 죽는' 다분히 말초적인 본능에 충실한 아이들이다. 하지만 그런 걸 비난하지는 마시라.
왜냐하면 우리도 이미 그 시절을 겪어봤지만 그 시절엔 지루하고 진부한 것은 악이다. 재미있고, 짜릿하고, 자극적인 게 선이고. 왜 그러냐고? 인생의 황금기인 그 시절엔 아마도 그런 호르몬이 10대들을 그렇게 만드는 모양이니까.
그러니 학교 신문이 재미있다는 것은 바로 이런 까다로운 10대들을 만족시키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즉, 그들의 무한한 호기심, 감각적인 기호, 눈높이, 변덕스러움을 잘 알아서 그들의 요구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자, 그럼 학교 신문이 얼마나 재미있고 읽을 만 한지 여러분이 직접 확인하시라.
<뉴스스트릭>은 매 호마다 흥미만점인 'Feature' 섹션이 있다. 그런데 올해 첫 주에 발행된 <뉴스스트릭>의 'Feature' 페이지는 고리타분할 것 같은 교장선생님(아이린 레놀즈)의 특집기사가 실렸다.
▶ 숫자로 본 레놀즈
17: 교장실을 꾸미고 있는 액자 수
32: 남편 '진'과의 결혼생활
8: 방의 갯수
18: 레놀즈가 소유한 구두 켤레수
70-80: 하루에 받는 이메일 총 수
1383: 책임지고 있는 학생 수
▶ 레놀즈와 함께 한 이것 또는 저것? (전자인 이것을 더 좋아한다.)
코크(o)/ 펩시(x)
버거킹/ 맥도날드
코미디/ 드라마
일찍 일어나기/ 늦게 자기
오프라 윈프리/ 닥터 필 (토크쇼)
손가락장갑/ 벙어리장갑
컨트리 음악 / 랩 (둘 다 싫어함)
교장선생님은 학창시절에 모범생이었을까. 예스! 늘 기대 이상의 업적을 이룬 학생이었다. 하지만 감추고 싶은 부끄러운 기억은 없을까.
아이린은 마지막 4교시 수업을 땡땡이(?) 쳤다. 학교가 지루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사람들 눈에 안 띄게 학교를 빠져 나왔다. 그리고 풋볼 경기장을 가로질러 큰 길로 나왔다. 멀리서 자동차 한 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왠지 낯이 익었다. 차가 속력을 내며 가까이 오고 있을 때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혹시?'
하지만 그럴 리는 없었다. 학교가 있는 시내에 엄마가 나오는 일은 없었으니까.
'어, 이상하다. 그런데 정말 우리 차랑 비슷하네. 설마.'
찬찬히 운전자의 모습을 살피기 시작했다. 차 안의 인물이 선명해졌다. 차가 그녀 앞에 멈춰 서고 곧 바로 창문이 내려졌다.
"타!"
세상에. 엄마였다. 아이린은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 땡땡이 사건으로 교장 선생님에게 '방과후 구류' 처분을 당했어요. 부모님으로부터는 '외출금지' 조처를 받았고요. 하지만 이후로는 절대로 땡땡이를 안 쳤죠. 왜냐하면 그런 일을 할 만한 행운이 제게는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그 때 깨달았기 때문이죠."
정말 재미있다. 어느 소녀가 학창시절에 겪은 한 편의 '재수없는 드라마'를 현장에서 직접 보고 있는 것 같다.
이 밖에도 교장 선생님의 대학 2학년 때 첫 사랑과 첫 실연, 남편의 감동적인 프로포즈와 32년 동안의 결혼생활, 그리고 집안 곳곳을 찍은 많은 사진들이 학생들의 흥미를 자아내고 있다.
학교에서 만나는 교장선생님은 근엄하고 카리스마가 넘치는 분이다. 그래서 가까이 하기에 어려운 분이지만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이런 시시콜콜한(?) 기사는 학생들로 하여금 다정하고 친근한 교장선생님으로 다가가게 할 것이다.
학교에 불만 있어? 학교신문에 쏟아내
<뉴스스트릭>은 살아있다. 독자의 가려운 데를 긁어주고 해결해 주는 커뮤니케이션의 장(場)이다. '편집자에게 보내는 편지' 역시 학교와 교사에 대한 학생들의 건의사항이나 불만을 가차없이 쏟아내는 공간이다.
• 지난 번 OO과목을 시험 볼 때 학생들이 컨닝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학생들 컨닝보다 더 화나는 게 있어요. 바로 선생님이에요. 선생님은 도대체 뭐 하세요? 이런 부정행위를 단속하지 않고 수수방관만 하고…. 정말 속상해요. (사라 디나폴리)
실명으로 거론되는 이런 대담한 교사 고발 기사가 이채롭다. 그리고 감동적인 것은 이런 내부 고발자에 대해 어떤 후환(?)도 없다는 것이다. 건강한 학교라는 방증?
• 저는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현재 사용하고 있는 영어 교재에 대해 별 흥미가 없습니다. 선생님이 고전 작품을 읽도록 한 것에 대해서도 이해는 합니다. 하지만, 구닥다리 고전에 관심이 없는 학생들이 많은 만큼 재고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영어 교재가 십대들에게 초점을 맞춘 내용이라면 원래 의도하고 있는 학습 효과보다 더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앨로라 게이츠)
• 애인이 있는 분들. 여러분이 파트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학교에서 그것을 입증해 보이기를 원치 않습니다. 특히 계단 아래에서 말입니다. 우리 학교는 50% 이상의 학생들이 1교시 수업에 계단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키스하고 있는 커플 여러분, 정말 당신들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행위에 대해 학교에서 뭔가 조처를 취해 주십시오. (제시카 메이한)
학생들의 영원한 호기심, 선생님이 궁금하다고?
<뉴스스트릭>에는 선생님과 관련된 기사가 빠지는 법이 없다. 왜냐하면 선생님은 학생들의 영원한 호기심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새해 첫 호에 실린 명절과 관련된 선생님 에피소드다.
대학 시절이었던 그 해 New Year's Eve. 오랫동안 사귀었던 여자 친구와 헤어지기로 결심을 했다. 자정을 넘긴 1시경이었다. 그 해 새해 첫날은 내 생애 최악의 명절이었다. (커크 모이어스, 세계사 선생님)
선생님도 소싯적에는 유명 가수의 콘서트에 미친 적이 있었을까. 오, 예스!
▣ 그들도 흥분했다. 선생님이 되기 전에는 (선생님과 스태프들이 회상하는 생애 첫 콘서트 <피터 폴 앤 메리>에서 <나인 인치 네일>까지)
► 60년대
- 14살이었던 1965년, 네브레스카 오마하에서 '비치보이스' 공연을 봤다. 슬프게도 나 혼자였다. 그 공연은 수천 명의 소녀들이 비명을 지르는 '집단 광란극'이었다. 잊을 수 없었던 그 공연 이후 나는 수 백 군데의 콘서트를 찾아 다녔다. (게리 메이슨)
► 70년대
- 15살 때 친구들과 함께 뉴욕으로 '존 레논과 엘리펀트 메모리 밴드' 공연을 보러 갔다. 존 레논은 단 두 곡만 불렀는데, 엘리펀트 메모리 밴드의 연주는 끔찍했다. 그 공연 이후 내 귀가 얼마나 아팠던지 닷새 동안이나 고생했다. (토니 앤토니콜라)
► 80년대
- 1986년 17살 때, 이탈리아 로마에서 'U2' 공연을 봤다. 여자친구와 함께 갔는데 멤버 중의 하나였던 보노가 무대 위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그만 팔이 부러지고 말았다. 보노가 다시 무대에 나왔을 때는 어깨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마크 힐리)
정치는 어른들만의 관심사? 오 노! 우리도 당당한 정치 주체
<뉴스스트릭>의 '인터내셔널' 페이지에는 학생 기자들이 쓴 정치 기사가 많다. 기사 뿐만 아니라 기사와 관련된 일반 학생들의 의견도 많이 실려 있다.
► 이민법 개정에 항의한 우리 학교 학생들, 워싱턴 대규모 집회에 참가하다.
► 민주당이 장악한 의회, 변화를 가져올 듯 - 학생과 교사, 모두 희망을 말하지만 새로 선출된 의원에 대해선 우려의 목소리도.
"지난 8년 동안 다수 의석을 차지했던 공화당을 밀어내고 민주당이 다수당이 된 만큼, 정치 환경에 변화가 있을 거예요. 하지만 큰 변화는 기대하지 않아요.' (10학년, 아만다 레이)
► 이라크 전쟁 논쟁 가열되다.
"해군인 오빠가 지금 캘리포니아에 있는데 어쩌면 이라크에 가게 될 지 몰라요. 저는 오빠가 해군에 지원했을 때부터 걱정이 되었어요. 이라크에 안 가면 좋겠어요." (12학년, 크리스탈 존슨)
"저는 이라크 전쟁을 지지해요. 저의 할머니와 숙모, 사촌들이 이라크 북쪽 쿠르디스탄에 살고 있어요. 저는 부시가 선한 이유로 전쟁을 시작했다고 봐요. 그는 이라크를 좋은 나라로 만들려고 애쓰고 있어요." (10학년, 인 고벤드 아민-쿠르드족)
"저는 다소 비판적인데요. 미국 군대는 결코 이라크를 재건하기 위해 파견된 게 아니에요." (JROTC 교사, 리차드 그레니어)
인터내셔널 기사는 영어 뿐만 아니라 스페인어로도 번역되어 실리고 있다. 물론 번역은 학생기자들이 맡고 있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정보
<뉴스스트릭>은 학생들에게 유익하고 다양한 정보를 많이 제공하고 있다.
► 멋있고 알뜰하게- "이거, 여기에서 샀어요" (알뜰가게를 이용하는 학생들의 경험담)
► 선배들이 조언하는 수시입학 준비
► 장래 직업을 위해 '멘토십'을 준비하라.
<뉴스스트릭>에는 큰 온도계가 뜬다. 바로 학생들의 '핫이슈'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온도계다. 온도계의 위쪽인 뜨거운 부분은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인물이나 학생들이 좋아하는 이슈들이다. 예를 들면, 새로 부임한 멋진 총각 교감 선생님 '미스터 냅(Knapp)'이나 이 학교 최고 풋볼스타인 '알렉스 오와', 그리고 '기름값 하락' 등과 같은 뉴스가 바로 핫이슈다.
반면에, 반갑지 않은 소식, 이를 테면 '북한의 핵실험'이나 '화이트 선생님 뇌졸증' '폴리 스캔들' 등과 같은 뉴스는 온도계 아래 차가운 쪽에 자리하고 있는 이슈들이다.
<뉴스스트릭>이 사랑받는 이유
<뉴스스트릭>은 이렇게 재미있고 다양한 아이템으로 한 달에 두 번씩 발행되고 있다. 20페이지(전면광고 5페이지 포함)나 되는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각 페이지마다 학생들이 관심을 갖고 읽을 만한 기사들로 가득 차 있다. 단순한 학교 소식만 전하는 기관지나 홍보지가 결코 아니다.
<뉴스스트릭>이 나오는 금요일이 되면 학보사 기자들은 꼭두새벽부터 학교 현관에서 신문을 배포한다. 등교하는 학생들 역시 2주일 만에 나오는 <뉴스스트릭>을 궁금해 하면서 기꺼이 신문을 챙겨든다. 헤드라인을 읽으면서 교실로 향하는 학생들. 이들은 <뉴스스트릭>이 마치 인기 있는 잡지라도 되는 양 꼼꼼히 기사를 읽어 내려간다.
<뉴스스트릭>의 캐치 슬로건인 '모든 사람은 저마다 독특한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있다 (Every Person has a Story)'는 모토를 실천하기 위해 <뉴스스트릭>은 오늘도 '스토리'를 찾아 부지런히 뛰어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