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성추행이나 강간 등은 심각하게 생각하면서 언어성폭력은 다소 가볍게 여긴다. 하지만 2003년 9월 서울대학교 성희롱·성폭력 상담소가 서울대학교 학생과 대학원 학생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학생 성의식 및 성폭력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희롱, 성폭력 피해 경험 중에서 언어적 유형이 20.53%로 가장 크게 나타났다.
특히 강의실 내 언어 성폭력은 그 폭력성뿐만 아니라 이분법적인 성역할을 고착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광주성폭력상담소 채숙희 소장은 "예전부터 내려오던 권위적인 사고가 자기 몸에 체화되어 있기 때문에 (교수가) 무의식 중에 언어적 성희롱을 하는 것"이라며 "지속적, 습관적으로 여성에 대해 차별 발언을 하는 성인지적인 사고가 없는 교수들은 현대 사회에서 교수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언어성폭력은 성적 발언뿐만 아니라 옷차림이나 외모를 평가하는 등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학생 이하나(22)씨는 "교수님들이 남자들 옷 입는 것에 대해서는 별 말 안하시는데 여학생들이 옷 입은 것, 귀고리하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 기분 나쁜 식으로 많이 말씀하신다"며 "받아들이는 입장마다 다르겠지만 성 비하 발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러한 실태는 2005년 대학 내 반성폭력운동 자료집(주최: 교수성폭력 근절을 위한 연대회의)의 서울 소재 대학생 54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알 수 있다. 강의 중 언어성폭력 피해 실태를 보면 "여자는 시집가는 것이 최고"라는 말과 같은 가부장적인 발언이 32.4%로 가장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강의실 언어성폭력, 효과만점 강의법 중 하나인가
문제는 강의 중 벌어지는 언어 성폭력에 대해 남녀를 불문하고 많은 학생들이 재미로 받아들이거나 농담으로 여긴다는 것. 현재 강의실에서 이뤄지는 음담패설 문화는 오랜 관습처럼 굳어진 것이 사실이다.
대학생 김양(23)씨는 "딸만 낳는 여자를 습관성 여성이라고 하신 교수님이 있었죠. 근데 나이 드신 교수님이라 학생들이 그냥 웃고 넘어갔어요. 교수님이 그런 성적 발언을 유머랑 더해서 수업에 많이 사용하시는데 학생들이 웃으니깐 교수님은 '또 해야지' 생각하고 그래서 다시 같이 웃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녀는 교수와 학생이 언어성폭력을 암묵적으로 용인하는 분위기를 가장 큰 문제로 꼬집었다. "교수님이 그런 말을 하면 학생들이 같이 웃어넘기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것 같아요. '한두 번은 그런가 보다'하는 어떤 문화가 형성되어 있어요."
강의실 내 언어 성폭력을 학생들이 웃으며 맞장구를 쳐줌으로써 교수가 또 다시 그런 발언을 하는 악순환의 형식으로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
많은 전문가들은 "언어성폭력이 눈에 보이는 육체적인 폭력이 아니라고 해서 폭력이 아닌 것으로 봐서는 안된다"고 지적한다. 김이정민 대학성폭력 상담활동가 역시 "언어성폭력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정답은 없다"며 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학교당국의 예방교육 등 투명하고 적극적인 해결방안을 촉구했다.
교수 평가 시 언어성폭력을 하나의 기준으로 삼아야한다는 구체적인 견해도 있다. 김양씨는 "지금 나이 드신 분들 같은 경우는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이) 박혀 버렸지만 어느 정도 (세대를 통한) 교수 교체가 이루어진다면 우선 일차적으로 해결이 될 수 있는 부분"이라며 "교수 방법도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언어성폭력 역시 중요한 문제이므로 그런 부분을 교수 평가할 때 따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도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 [난상토론]언어성폭력,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 | | |
| | | ⓒ서영화 | 일시: 1월 25일(목) 오후 7시 30분
참여자: 조선대 영어회화 스터디 '잡지와 봉지' 소속 강효경(21), 배인아(22), 정은영(23), 이다연(22), 김안나(24), 남주헌(25), 송지석(28).
- 수업 중 발생하는 언어성폭력이 어느 정도인가요?
인아: 한 번은 남성우월적인 사고를 가진 교수님이 아예 자연스럽게 '엘리자베스 시대에는 '공교롭게도' 여성들이 나라를 이끌었습니다' 라고 하셨어. 그거 듣고 잠을 자다가 확 깼다니까...
안나: '공교롭게도'라니... 짜증난다. 나 같으면 바로 일어나서 F를 맞건 말건 소리쳐 버릴 거야.
다연: 근데 솔직히 그런 상황에서는 말 못하지.
은영: 유머러스한 교수님이 수업 시간에 장난 식으로 "아 이 미친 x이"하고 말했는데 꼭 남자애들한테도 년이라고 하시는 거야... '놈'인데 말야.
인아: 유머러스한 사람이 꼭 음담패설 잘한다니까. '년'이라고 하면 더 억양이 더 세니까.
- 지루한 수업 분위기를 반전 시키려고 그런 농담을 많이 하는 것 같던데...
다연: 왜 하필 그런 걸로... 분위기가 좋아지는 게 아니라 (학생들이) 겉으로는 웃으면서도 속으로는 씁쓸한 게 있는데 말야.
인아: 난 너무 짜증나서 겉으로도 웃을 수도 없었어.
다연: 다른 이야기를 하든지 하지. 꼭 그런 걸로 넘어갈 필요는 없잖아? 물론 학생들은 거기에 좀 민감하니까 아무래도 수업 중에 순간 집중은 될 수 있겠지. 근데 꼭 그런 쪽으로만 분위기를 몰아가는 것도 무리인 것 같아.
인아: 우리도 술 먹을 때를 비롯해서 평소에 아무렇지도 않게 음담패설하잖아. 물론 재미로 하는데 강의실에서도 수업을 들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잖아. 교수님도 우리에게 강의를 서비스하는 분인데 그 분조차도 어디 가서든 음담패설에 익숙하니까 (강의실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그 이야기를 하는 거야. 대학이 교육의 장이라고 하지만 그걸 벗어나버리고 음담패설이 너무 생활화되서 아무렇지도 않게 언급되는 게 원인인 것 같아.
다연: 나랑 교수랑 똑같은 동등한 입장이 아니잖아. 교수에게 지시를 받는 입장이라 그런지 성 발언... 한 마디로 짐이 떠넘겨진 것처럼 약간 부담스럽더라. 특히 '남자비하'는 웬만큼 잘 안하시잖아. '여자비하'를 하니까 여자들은 기분이 안 좋지.
안나: 만약에 교수님이 누구든지 그런 이야기를 했다면 난 바로 공격할 것 같아.
- 그럼 해결책은 뭘까요?
인아: 교수님들 스스로의 각성이 필요해. (교수님들) 교육을 받으세요!
지석: 교원 평가제 해야 해. 우리도 교육받는 것처럼 교수들도 똑같이 교육 받아야 해.
안나: 수업 평가가 있기는 하지만 제대로 실시되어야 하는데 솔직히 거기다 나쁜 말 썼다가 잘못될까 봐 무서워.
인아: 학교 홈페이지 인터넷 자유게시판에 그런 언어성폭력을 비롯한 불만사항을 써도 학교 측에서 순식간에 지워 버리는 게 보통인 것 같아. 그니까 말할 게 없지.
은영: 교수로서 당연히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 만연되어 있는 게 문제인 것 같아.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체계적인 법을 지정하던지 아니면 교권침해라 할 수도 있지만 (문제가 발생했을 때 교수님들도) 모의법정이나 청문회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
다연: 교수님도 단순히 똑같은 선생님인데 대개 교수님들은 자신들이 훨씬 권위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성인을 가르친다는 입장에서 그런 건지 아니면 자신들이 평교사보다 훨씬 지식이 많고 많이 배웠다는 우월의식 때문인지는 몰라도...
인아: 진짜 훌륭하다고 생각되는 분들도 있는데 꼭 그런 교수님들 때문에(한숨)
- 마지막으로 강의실 내 언어성폭력에 대해 한 마디씩 해주세요.
다연: 중요한 게 뭐냐면 학생들이 잠깐 기분 나빠하고 넘기고, 교수님들도 순간 말해 놓고도 잘못했는지 인식을 못해. 학생들도 자연스럽게 그런 말을 듣다 보니까 그때만 살짝 기분이 좀 그렇고 웃어넘기고 말아버리지. 뭐가 중요하고 잘못된 것인지 판단할 수 있는 분명한 선이 사람들의 머리에 박혀 있는 게 중요한 것 같아.
인아: 성과 관련된 것도 필수과목으로 해야 해. 난 솔직히 우리가 중·고등학교 때 성교육을 제대로 못 받았다고 생각해. 대학에서라도 온라인으로 하는 성희롱예방교육이 아니라 체계적인 교육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어. 이를 테면 여성 관련 수업이 많아졌으면 좋겠어. 근데 교과목이 '여성과 사회'가 아닌 '성과 사회'라는 식으로 여성만 감싸 도는 수업이 아니라 양성평등을 주제로 한 수업이 많아졌으면 좋겠어.
은영: 우리학교 내에서도 구체적인 법을 제정해 학생들이 따르게 한다면 좋은 성문화가 확립될 것 같아. 학내 언론사들도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고 고발할 수 있게끔 이런 일들을 당당하게 실을 수 있었으면 해. 그게 바로 언론이 할 일이잖아.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