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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미 대통령의 암살을 설정한 영화 '대통령의 죽음'.
부시 미 대통령의 암살을 설정한 영화 '대통령의 죽음'.
2006년의 막바지에 나는 두 대통령의 죽음을 목격했다.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물론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의 죽음은 <대통령의 죽음>이라는 영화 속에서 벌어진 가상현실이었다. 하지만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죽음은 21세기 지구촌 곳곳을 공포와 절망으로 물들이고 있는 폭력과 증오의 악순환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가상이긴 하지만 현직 대통령의 죽음을 소재로 삼았다고 해서 미국에서 개봉조차 못했다는 <대통령의 죽음>은 한 아랍계 이민 여성의 하소연으로 시작한다.

"그 사람은 무슨 생각으로 방아쇠를 당긴 걸까요, 자신이 방아쇠를 당김으로써 어떤 일이 벌어질지 한번이라도 생각해본 걸까요."

부시, '암살 당하다'

영화의 줄거리는 대충 이렇다. 가까운 미래의 어느 날 부시 대통령이 시카고를 방문해 한 호텔에서 열리는 경제인 행사에 참석한다. 부시 대통령은 경제인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특유의 유머로 연설을 진행하지만 호텔 밖에는 부시의 방문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대가 곳곳에서 경찰과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베트남 전 반대 시위 이후 미국 역사상 가장 격렬한 시위가 벌어진 이유는 부시가 지구촌 곳곳에서 벌인 전쟁 때문이다.

시위대는 부시를 전쟁의 화신, 악의 화신으로 여기고 부시에 대해 극단적인 분노와 증오를 표출한다. 이런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연설을 마치고 호텔을 나서던 부시 대통령이 괴한의 총격으로 목숨을 잃고 현장 근처에 있었던 시리아 출신의 한 남성이 용의자로 체포된다.

명백한 물증은 없지만 수사당국은 그를 암살범으로 확신한다. 그는 '시리아'라는 깡패국가 출신인데다 이슬람 근본주의자의 꾐에 빠져 아프가니스탄에서 군사훈련을 받은 경험까지 있다.

하지만 수사가 진행되면서 대통령의 암살범은 이라크 전에서 목숨을 잃은 한 흑인병사의 아버지로 밝혀진다. 그는 군대를 지망하는 다른 흑인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차별과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군대를 택했고 전쟁에도 참가했다. 그는 미국의 대의를 믿었고 유복한 가정을 꾸렸다. 하지만 아버지처럼 군대를 택한 두 아들은 명분 없는 전쟁에 정신이 황폐화됐고 급기야 큰 아들은 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자신이 평생을 바친 군대, 세계최강이자 정의로운 그 군대가 이라크라는 곳에서 명분 없는 학살을 자행하고 그 명분 없는 전쟁에서 소중한 아들까지 잃게 되자 이 노병은 자신과 아들의 삶을 망가뜨린 부시에게 책임을 물은 것이다. 하지만 진범이 밝혀진 뒤에도 암살 용의자로 체포된 시리아 출신 남성은 석방되지 않고 미국은 시리아에 대한 전쟁을 준비한다.

부시, 후세인, 그리고 피노체트

"그는 자신이 방아쇠를 당길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도 안 해 본 걸까요."

영화의 시작부분에 등장하는 아랍계 여인의 눈물 젖은 하소연은 부시를 응징한 흑인 노병에 대한 원망이다. 아들을 잃은 노병의 복수로 애꿎은 그녀의 남편이 암살범으로 체포됐고 아랍계 불법 체류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추방이 이뤄졌다. 뿐만 아니라 미국 정부는 진범이 밝혀진 뒤에도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시리아에 대한 전쟁을 추진한다.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진부하다.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런 명백한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곳이다. 영화를 본 다음 날 후세인 전 대통령이 교수형에 처해졌고 그 모습은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됐다. 영화 속 부시 대통령의 죽음만큼이나 비현실적인 느낌도 들었지만 그것은 현실이었다.

후세인의 처형. 시간이 흐른 뒤 미국의 어느 곳에선가 자식을 혹은 남편과 아내, 부모를 잃은 누군가가 후세인을 처형한 사람들을 원망하게 될지도 모른다. 미국이 라틴 아메리카 독재정권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인권유린을 연구한 한 미국인 인류학자는 1973년 9월 11일 칠레에서 발생한 사건과 2001년 9월 11일 미국에서 발생한 사건이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1973년 9월 11일 칠레에서는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은 피노체트가 군사쿠데타를 일으켰고 이 쿠데타는 이후 라틴 아메리카에서 벌어진 군사 쿠데타와 더러운 전쟁의 상징적인 사건이 되었다. 이 쿠데타 과정에서도 살바도르 아옌데라는 대통령의 죽음이 있었다. 그로부터 28년이 지난 2001년 9월 11일 뉴욕에선 수 천명의 목숨을 앗아간 '9·11 테러'가 발생했다.

역사는 되풀이되는 걸까.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란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지구촌 어딘가에는 무고한 죽음에 서러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이광조 피디는 CBS 라디오 피디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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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연대는 1999년 7월 2일 창립이후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에 따라 국내외 인권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인권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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