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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어느날 저희 가족입니다 ⓒ 전진한
요즘 제 아들이 33개월입니다. 한참 말을 배우고 있는 터라 온갖 애교를 다 부립니다. 아들 덕분에 온 가족에 웃음꽃이 떠나지 않습니다. 그에 걸맞게 사고도 많이 치고 있어 항상 우리 가족들을 긴장시키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이었습니다.
@BRI@친구네 가족이 오랜만에 저희 집을 방문했습니다. 아들과 비슷한 여자아이가 있는 터라 아들은 더욱 더 좋아합니다. 둘이서 가끔은 티격태격하면서 싸우기도 하고 때로는 뽀뽀도 하면서 재밌게 놀고 있습니다.
친구네 부부와 우리부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연신 웃으면서 즐거운 주말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한창을 떠들고 놀다가 시간이 늦어 친구네 부부는 집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그 사이 아들은 같은 또래 친구가 가는 것이 아쉬웠는지 대성통곡을 하면서 울고 있습니다.
달래고 달래도 멈추지를 않습니다. 하는 수 없이 우는 아들을 두고 친구네 가족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 모습을 보고 더욱 더 크게 웁니다. 한참 달래는 도중, 아들은 울다 지쳤는지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저는 집에 있던 땅콩을 몇 알 먹고 아무 생각 없이 그 자리에 두고서는 잠자리에 누웠습니다. 저도 피곤했는지 금방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이때까지는 평온한 주말을 마치고 있는 터였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아내가 저의 잠을 깨웁니다.
"여보 좀 일어나봐 큰일 났어."
"(귀찮은 듯이)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빨리 나와 봐. 지민이 콧구멍에 땅콩이 들어갔단 말이야."
"땅콩이 왜 콧구멍에 들어가."
아내는 얼굴이 노랗게 되어서 저를 깨웁니다. 밖에 나가보니 아들은 누워서 울상을 짓고 있습니다. 아들 콧구멍을 보니 정말 땅콩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때까지는 별일이 아닌 줄 알았습니다.
"그냥 빼면 되겠네?"
"근데 잘 안돼. 여보가 한번 빼봐."
▲우리 부부의 아들 개구장이 지민입니다 ⓒ 전진한
옆에 있는 핀셋을 찾아 아들 콧구멍에 넣으니 아들은 소리를 지르며 못하게 합니다. 완전히 겁에 질린 것입니다. 저는 아내에게 한마디 합니다.
"왜 땅콩이 콧구멍에 들어가 있어?"
"몰라 자다가 일어나서 심심했는지 땅콩을 자기 콧구멍에 넣었대."
난감한 상황이었습니다. 시간을 보니 새벽 1시가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병원도 문 닫은 시간입니다. 하는 수 없이 귀를 청소하는 도구로 2차 시도를 해봅니다. 아들을 꽉 붙잡고 콧구멍을 훔쳐봅니다. 아들은 악을 쓰며 울고 있고 땅콩은 그 자리에 계속 버티고 있습니다. 온 몸에 식은땀이 흐릅니다.
혹시 땅콩이 더 올라갈까 걱정입니다. 다행히 콧구멍이 2개라 숨쉬는 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그렇게 몇 번 더 시도했지만 땅콩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하도 화가 나 아들에게 괜히 화를 냅니다.
"(소리지르며) 이놈의 자식 왜 땅콩을 콧구멍에 넣어."
"(더 크게 울며) 우......왕"
"(아내) 여보 종합병원 응급실 가야겠다."
참 난감합니다. 땅콩 하나가 콧구멍에 들어갔다고 응급실 가는 게 영 어색합니다. 그러나 방법이 없습니다. 급히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갑니다. 택시를 타고 기사 분에게 응급실에 가자고 얘기합니다. 차타는 것을 좋아하는 아들은 언제 울었냐는 듯 창가를 보고 웃고 있습니다. 택시기사가 우리부부 눈치를 보면서 물어봅니다.
"누가 아프세요?"
"(머뭇거리며)저기... 음... 그게... 아들 콧구멍에 땅콩이 들어가서 나오질 않네요."
택시기사는 웃는 것을 억지로 참는 거 같습니다. 결국 응급실에 도착하니 응급환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습니다. 접수하는 것도 난감합니다.
"어떻게 오셨어요?"
"예... 저기... 아기 콧구멍에 땅콩이 들어가서 안나오네요?"
"네?"
그렇게 접수를 마치고 소아 응급실로 갑니다. 의사는 이리저리 물어봅니다. 콧구멍을 쳐다보면서 기구가 없어서 빼기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의사는 이리저리 전화를 돌립니다. 다행히 이비인후과에 당직 의사가 있습니다. 이비인후과 의사가 저희 부부에게 한마디 합니다.
"콧구멍에 절대로 다른 물질 못 넣게 교육하셔야 해요. 건전지를 코에 넣어서 코가 녹는 경우도 있거든요. 땅콩이라 다행이네요."
무서운 얘기였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유아들이 이물질을 콧구멍에 많이 넣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정말 의사 말대로 땅콩이라 다행입니다. 의사는 금방 콧구멍에 있는 땅콩을 기구로 꺼냅니다. 약간의 피가 묻어 있고 땅콩은 콧바람에 익어서 더 커져 있습니다. 이제야 시원한 듯 아들은 연신 웃고 있습니다. 호기심에 했던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을 겁니다.
새벽 3시가 되어서야 모든 사건이 마무리 됩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병원 자판기 커피를 한잔 마십니다. 부모가 되니 참으로 별일이 다 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괜히 아들에게 화낸 게 미안합니다.
"지민아 아빠가 화 낸 거 미안해."
"(웃으면서) 네..."
그렇게 새벽 소동은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 날 따라 새벽공기가 더욱 상쾌하게 느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