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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18일 오전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개막된 북핵 6자회담 본회의에서 하고 김계관 북한 측 수석대표를 비롯한 대표단들이 중국 우다웨이 수석대표의 연설을 굳은 표정으로 듣고 있다.
지난해 12월 18일 오전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개막된 북핵 6자회담 본회의에서 하고 김계관 북한 측 수석대표를 비롯한 대표단들이 중국 우다웨이 수석대표의 연설을 굳은 표정으로 듣고 있다. ⓒ 연합뉴스 황광모

북핵 폐기, 초기 이행단계 시작되나

지난주 독일 베를린에서 있었던 북-미 접촉에 이어 베이징과 모스크바로 이어진 6자회담 수석대표간 연쇄 접촉을 거치면서 회담에 대한 낙관적 전망이 급속히 확산됐다.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은 24일 주례 브리핑에서 "참가국 모두가 '9.19 공동성명'의 초기단계 이행조치에 합의할 필요가 있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고 말해 6자회담이 재개되면 구체적 진전이 있을 것임을 강력히 시사했다.

즉 북한이 핵 폐기를 위한 초기 단계의 조치를 취하고, 다른 참가국들은 이에 상응한 '보상'을 제공하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이행한다는 데 북-미를 비롯한 참가국들의 의견이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송 장관은 이 같은 상황을 공연에 비유, '2막1장의 시작'이라고 표현했다. '제1막'이 핵 폐기 방안에 대한 합의까지로 2005년 '9·19 성명' 채택으로 막을 내렸다면, 1년 반 만에 비로소 그 방안을 구체적으로 이행하는 '제2막'에 돌입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 동안 다소의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6자회담이 결국은 본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한-미가 제시한 적극적 방안에 대해 북한도 탄력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이날 송 장관의 언급에서 이런 낙관론의 근거를 엿볼 수 있다.

실제로 북한측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23일 베이징에서 한국측 천영우 수석대표와 만난 뒤 기자들에게 "모든 것은 변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해 이례적으로 북한측의 입장변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김 부상과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차관보는 베를린 접촉이 끝난 이후 서로 상대방의 자세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6자회담이 재개되면 진전이 있을 것이란 점을 되풀이해 강조하고 있다

힐 차관보는 "김 부상과 여러 이슈에 대해 확실히 의견을 같이했다. 좋은 회담을 가질 수 있는 기초를 만들었으며 다음 회담에서 진전을 거두는 일이 가능할 것으로 느낀다"고 말했으며, 김 부상도 "미국측 자세가 긍정적이었다. 만족한다"고 평가했다.

BDA 문제와의 상관관계

북-미 양측의 설명대로 베를린 접촉에서 진전이 있었다면 그 동안 걸림돌이었던 미국의 대북 금융제제 문제에서 해결 전망이 섰다고 봐야 한다. 지난해 12월 6자회담에서 '선 금융제제 해제'를 요구하며 실제 협상에는 임하지 않는 자세를 보인 북한이 이 문제를 우회한 '진전'에 동의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 문제의 해법과 관련해서는 미국 정부가 동결된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 계좌 50여 개 가운데 합법으로 확인된 일부 계좌를 풀어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미국 언론 등을 통해 꾸준히 흘러나왔다. 이른바 '합법-불법 계좌 분리안'이다.

미국 정부는 보도가 나올 때마다 공식 부인했으나 그 가능성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최근 한국 정보기관이 BDA의 북한계좌들을 조사해서 그 중 합법으로 판명된 5~7개의 계좌목록을 미국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해결방안이 부상하고 있는 것은 북-미간 'BDA 회담' 장소가 사실상 베이징으로 결정된 점과도 무관치 않다. 미국은 지난해 12월 베이징에서 북한과 첫 'BDA 회담'을 마치면서 다음 회담 장소로 뉴욕을 제안했었다.

금융제재는 어디까지나 법 집행 문제로 북핵 협상과는 직접 관련이 없다는 기존 입장에 따라 회담장소부터 6자회담과 분리시키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북한은 '6자회담과 연계'를 고집했다. 결국 베이징에서 2차 'BDA 회담'이 개최된다면 미국이 이 문제에 대해 유연한 자세로 바뀌었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김계관 부상도 베를린 접촉 이후 미국의 자세에 '긍정적 변화'가 있었음을 여러 차례 시사했다.

그러나 이 문제를 직접 담당하는 미 재무부가 베를린 접촉 결과를 최종 추인했는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베를린 접촉에 국무부뿐 아니라 국가안보회의(NSC)의 빅터 차 아시아국장이 동석했기 때문에 재무부가 뒤집고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지만, 회담 개최가 당초 예정보다 늦어지고 있어 그 가능성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다.

김영재 러시아 주재 북한대사가 23일 이타르 타스 통신과의 회견에서 "미국은 금융제재를 해제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을 아직 내리지 않았다"며 "6자회담을 성공시키려면 적대적인 대북 금융제재를 먼저 해제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정황을 뒷받침한다.

사진은 2002년 8월 13일 촬영한 북한 영변 핵시설 위성사진.
사진은 2002년 8월 13일 촬영한 북한 영변 핵시설 위성사진. ⓒ 2005 연합뉴스

초기단계 이행조치는 북핵 동결?

6자회담 참가국 대표들이 최근 쏟아낸 말들을 종합해보면 2월 초순 회담이 재개되고 초기단계의 이행조치에 대해 일정한 합의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여기서 '초기 이행조치'가 과연 어떤 수준이 될 것이냐가 관심이다.

북한은 그 동안 ▲영변 5MW 원자로를 포함한 핵시설 동결 ▲투명한 신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의한 감시 허용 등에는 응할 수 있다는 입장을 시사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 상황에서 이 정도의 조치들은 큰 의미가 없다는 지적도 많다.

이미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플루토늄을 따로 확보하고, 실제 제조도 하고 있는 상황에서 핵 시설의 동결만으로는 당장의 위협을 해소시켜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동결 조치는 과거에도 그랬듯이 언제든지 해제해버리면 그만이다.

북한으로서도 '초기 이행조치'를 취한다면 상응한 대가로 식량이나 에너지 지원 등을 얻어내려 할 것이다. 그러나 유엔안보리가 대북 제재조치에 들어가 있는 상황에서 단지 '동결'의 대가로 다른 6자회담 참가국들이 '보상'을 제공하기는 쉽지 않은 현실이다.

북한이나 미국이 지금까지 보인 자세와 논리대로만 한다면 이번에도 의미 있는 진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김계관 부상은 "모든 것은 변하는 것 아닌가"라고 했고, 송민순 장관도 "모든 참가국의 입장이 바뀔 수 있을 때 협상은 타결되고 이행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협상 관계자들이 쏟아내고 있는 이런 이례적 낙관론과 긍정적 신호들이 단지 언어의 유희에 불과한지, 아니면 한반도 정세의 근본적 변화를 알리는 신호탄일지, 2월 6자회담의 뚜껑이 열리면 모든 것이 확인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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