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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지미디어
누구나 한번쯤은 제인 에어가 숨어 하루종일 책을 읽던 커튼 뒤, 종일 뒤져도 심심찮은 다락방 등 비밀의 장소나 비밀한 즐거움을 즐겼던 적이 있을 것이다.

인간에겐 누구나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는 반면, 관음증의 기질이 있어 남의 삶을 비밀스럽게 엿보는 것 또한 즐긴다. 현재가 아닌, 과거의 삶의 흔적, 그것도 일반인이 아닌 왕가의 삶을 엿본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인간의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본인이 직접 발로 뛰며 역사의 비밀을 야금야금 캐는 재미야 더할 나위 없겠지만, 남이 애써 캐낸 비밀을 야금야금 뜯어 먹는 재미 또한 만만찮다.

역사에 대한 관심은 지대한데 지루함에 거부반응이 심한 독자들이라면 <조선왕릉의 비밀>을 집어드는 것이 적격이 아닐까 싶다. <조선왕릉의 비밀>은 정확한 고증에 근거한 사적 사실과 더불어 정사가 아닌 야사적인 이야기들과 기자의 상상력이 더해져 읽는 재미를 더해주니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20개월이란 짧지 않은 세월을 산 사람도 아닌, 500년 전 조선 왕과 비들의 무덤인 왕릉만을 찾아다니며 왕릉 글을 연재했던 한성희 기자가 처음부터 왕릉에 대해 뿌리를 뽑으리라는 단단한 각오나 투철한 역사의식을 가지고 연재를 시작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자신의 말로는 등 떠밀려 시작을 했다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고 문화관광해설사로 왕릉을 드나들며 보고 느꼈던 시간들, 지역 저널지 기자로 발로 뛰며 글을 쓰던 삶과 무관치 않아 왕릉에 대한 소중한 글들이 책으로 남겨지게 된 것이 아닐까?

장점이라면 치열한 기자정신으로 무장되고 역사 의식에도 철저하지만 역사학자가 아닌 민간인의 손으로 쓰여진 이야기라는 점일 것이다. 게다가 여성이기에 역사의 이면에 숨겨진 여성들을 꿰뚫어 본 시각 또한 만만찮다.

세상이 조명하지 않은 역사의 이면, 산자가 아닌 죽은자들의 넋과 혼, 음성을 통해 듣는 비밀한 음성이 글의 행간에 스며있어 중간 중간 숨을 고르게 만들기도 한다.

ⓒ 솔지미디어
<조선왕릉의 비밀> 속에는 왕을 능가하는 기개와 결단력으로 당당한 삶을 살아낸 멋진 여성들의 삶이 여러 곳에서 조명된다. 그중에는 죽어서까지 왕의 자리를 차지하고 누운 여걸도 있다.

조선 역사상 유일한 여성상위로 왕의 자리인 오른쪽을 차지하고 누웠다는 경릉의 주인공 인수대비 한씨는 피바람을 일으킬 단초를 제공한 폐비 윤씨의 시모이며, 성종의 어머니이다. 스무살의 나이에 요절한 남편은 사후에 추존왕의 지위를 얻었기에 실제 지위가 더 높았던 인수대비가 세자로 죽은 남편 대신 왕의 자리인 오른쪽을 차지하게 되었다고 한다.

빈 무덤은 짝퉁일까? 아닐까? 왕의 무덤에도 짝퉁이 존재할까? 빈 무덤을 짝퉁으로 본다면 왕릉에 짝퉁은 분명하게 존재한다. 폐비 윤씨의 남편으로 피바람을 일으킬 단초를 제공한 성종이 그 주인공이다.

성종의 묘는 임진왜란 당시 무덤을 도굴당하고 관마저 불에 타버려 시신의 행방을 찾을 길이 없자, 선조는 부장품으로 넣었던 옷을 태운 재를 관에 담아 안장했다고 한다. 시신도 없는데다 능마저 도심의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으니 성종은 살아서만이 아니라 죽어서도 편안한 쉼을 얻을 처지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는 수많은 비밀 중 내게 신선하게 다가왔던 단 두 가지의 비밀을 독자들에게 소개했다. 500년의 세월을 훌쩍 건너뛰어 왕궁의 화려했던 비밀을 알고 싶은 호기심이 넘치는 독자들이라면 <조선왕릉의 비밀>을 펼쳐 비밀을 야금야금 맛볼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조선왕릉의 비밀 1. 2/한성희 지음/솔지미디어/각권 15,000


여기자가 파헤친 조선왕릉의 비밀 1

한성희 지음, 솔지미디어(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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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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