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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부터 열린 장계보따리학교
지난 1월 23일. 전라북도 장수군 장계 우리 집에서 두 번째로 열리는 '보따리학교'가 시작됐다. 여섯 명의 학생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이는 날이다. 우리 집에는 여섯 명의 학생이 오지만 곡성의 빛살님 집에는 열두 명, 경남 산청의 강정님 집에는 열 명이 모인다. 전남 해남에서도 학교가 열린다.
@BRI@이렇게 네 곳의 농가에서 3박 4일씩 농가체험을 하고 나서 이들은 다시 한 곳으로 모이게 된다. 이때는 다른 공동체 아이들까지 모여드는데 무려 70여 명쯤 될 것으로 보인다. 아마 어른들도 여럿 모일 것이므로 근 100명에 육박하는 대부대가 2박 3일의 공동체 생활을 하게 된다.
전국 각지에서 초등학생에서 중학생까지, 대안학교 다니는 아이, 가정학교 하는 아이, 일반학교 다니는 아이 등등 그야말로 보따리학교는 보따리 움켜 싸듯이 온갖 처지에 있는 아이들을 가리지 않고 학생으로 받아들인다. 나이도 성별도 국적도 차별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사이버 공동체인 '길동무'에 장계보따리학교 개설 안내문에서 다음과 같은 사람들은 오지 말라고 하였다.
첫째, 보따리학교가 끝나고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농주님(나의 누리터 별칭)을 아버지로 모시고 눌러 우리 집에 눌러 살겠다는 사람.
둘째, 깜깜한 밤에 무시무시한 귀신 이야기를 듣다가 울어 버릴 사람.
셋째, 뒷간이 30미터나 되는데 야밤에 뒷간 가기 무섭다고 옷에 오줌 쌀 사람.
넷째, 인터넷도 티브이도 없는 곳이라고 투덜댈 사람.
이렇게 미리 공표를 해 두면 보따리학생들은 지레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기대할 것은 기대하고서 학교에 온다. 기대할 것에 대해서도 나는 '길동무' 보따리학교 게시판에 장황하게 써 올렸다.
눈이 내린 지가 열흘이 지났지만 해발 550미터나 되는 우리 동네에는 눈이 제법 쌓여 있으므로 눈싸움을 하자고 했고, 아궁이에 불을 때서 가마솥 물을 데워 아침에 세수를 하는 재미도 소개했다. 뒷간에 앉아 똥을 누면서 눈을 들면 전면이 유리로 된 문짝을 통해 덕유산 정상이 아스라이 보이는 사진도 올려 기대를 잔뜩 갖게 했다.
이런 것들이 과연 내 바람대로 보따리학생들의 기대를 모으게 될지 아니면 실망의 이유가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믿는 구석이 있다. 4년여에 걸쳐 열 번 남짓 보따리학교를 해 본 경험으로는 보따리학교 학생과 그 부모들은 이런 생활과 체험을 동경하고 있다는 믿음이 있는 것이다.
이 정도로 이야기를 하면 이른바 '보따리학교'의 정체성이 살짝 엿보일 것이다. 교육이념이니 건학정신이니 거창하게 얘기 안 해도 보따리학교에 믿고 애를 보낼 만한지 판단은 서리라 본다. 그래도 보따리학교의 정신과 역사적 배경을 좀 더 얘기해 보고자 한다.
일주일 인생을 제대로 사는 공부
내가 '길동무' 게시판에 올린 내용 중에는 일주일 동안의 보따리학교에 회비가 전혀 없다는 점, 먹을 것과 입을 것, 신을 것, 마실 것, 잘 것, 놀 것, 즐길 것 등 일체의 일주일 동안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을 다 챙겨 올 것을 요청했다. 곡성 보따리학교에서는 내일이 곡성 장날이라 장 구경하자고 용돈을 좀 가져오라고 안내를 했고, 산청보따리학교는 봤더니 그냥 알아서 하라고 했다. 이른바 '지맘대로 하세요'식이다.
이 대목에서 재미있는 현상들이 나타난다. 뒷 담화를 통해 알게 된 얘긴데, 부모들은 대부분 어디서 3박 4일 캠프를 한다면, 1일 3식에 2인 침대 방, 시간대별 일정표에 참가비 10만원, 용돈 5만원, 몇 시에 어디 어디서 무슨 관광버스를 타라고, 이렇게 안내장이 와야 편하고 마음이 놓이는데 보따리학교처럼 해 놓으면 대략 난감해진다고 한다.
며칠 살자면 무엇 무엇이 필요한지 갑자기 어리둥절해진다. 솥단지를 가져가야 하나? 물은? 쌀도 반되 정도 가져가고 반찬도 가지가지 챙겨?
침낭도 가져 오래니 한데서 잠을 자나? 그래도 며칠 애를 돌보자면 가스니 음료니 과일이니 솔 치 않게 들 텐데 봉투에 몇만원 넣어 보내? 회비는 절대 안 받는다고 하고 성금을 내려면 '길동무' 공동체에 내라고 했으니 얼마 정도 내면 적당할까? 5만원? 아냐 먹을 것 잘 것 다 가져가는데 뭐 3만 원 정도 내? 등….
삶이 이렇게 복잡다단하고 눈치 보이고, 자신이 생겼다가 없어졌다가 오락가락할 수가 없다. 3∼4일 사는 문제가 간단하지가 않아진다. 한편으로는 신바람도 난다. 신바람이 나다 못해 인생이 신묘해진다. 3박 4일의 보따리학교를 놓고 부모나 아이는 이미 커다란 인생공부, 관계공부를 시작하는 것이다.
전에 속초에서 온 아이는 배낭에 오징어만 가득 담아 와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보성에서 농협에 다니시는 분은 아이를 통해 20키로 쌀을 한 포대 보냈었다. 다 삶을 제대로 아시는 분들이시다. 내 경험으로 제일 인생을 모르는 부모는 따로 있다.
배낭에다가 피난민 보따리처럼 반찬 통만 십수 개에, 쌀에다가 보리니 콩이니 현미니 바리바리 싸서 넣고, 그것도 모자라 박카스 병에다가 들기름 하나 보내고, 사과 네 개, 귤 열 개 등을 싸 보내는 분이다. 이런 사람도 한두 번 보따리학교에 다니다 보면 점점 통이 커진다. 김치만 한 통 담아서 보내기도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풍부해지는 삶을 체험한다. 남을 통해 자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배우는 과정이 된다.
'길동무'에서 보따리학교 신청을 할 때는 절대 부모가 대신 할 수 없다. 아이가 직접 해야 접수를 한다. 초등학생도 아닌 여섯 살 아이가 신청을 한 적이 있다. '본이'라는 아이다. 올해 벌써 아홉 살이 되어 가정학교를 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우리 집으로 오는 아이다. 이 아이도 여섯 살 때부터 직접 신청서를 썼다. 맞춤법도 다 틀리고 띄어쓰기도 엉망이지만 두세 번 읽어보면 소리 말이 살아나면서 뜻을 알 수 있다.
아이가 직접 신청을 하게 하는 데는 큰 뜻이 있다. 스스로 자기 동기를 가지게 하기 위함이다. 좋다고 하여 부모가 등 떠밀어 보내는 것하고 아이가 스스로 신청을 하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자기가 결정한 것이라야 자기가 책임지게 되고 스스로 흥미를 갖고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가 직접 신청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스스로 찾아가는 학교
보따리학교의 또 하나의 관문이 있다. 어떠한 경우에도 아이를 부모가 데려다 줘서는 안 된다. 아이가 직접 가야 한다. 어제(22일)도 두 군데서 전화가 왔다. 아이가 직접 가야하는 원칙을 알기 때문에 부모가 전화를 하여 가는 차편과 동네 이름을 확인하기도 하지만 아이가 직접 전화를 하여 자세히 알아보기도 한다.
어제 목포에서 오는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차편을 물어 오기에 광주로 해서 전주로 오라고 했다. 전주에 오면 장계 가는 버스가 있고 장계 정류장에서 우리 마을 오는 버스가 하루 다섯 번 있으니 골라 타라고 일러 줬다.
재작년인가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서 우리 집에 오는 초등학교 2학년 여자아이가 있었다. 전주역에 도착하는 시간에 내가 트럭을 몰고 나갔었다. 이때는 완주군 소양에 내가 살 때였다. 아뿔싸. 근 천리 길을 혼자서 오는 아홉 살 여자애를 만나 모시게 되는 책임감과 대견함 등으로 설레면서 전주역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어떤 아주머니가 저만치서 여자애를 약속된 장소에 세워두고 역사 안으로 내빼는 것이었다.
차마 아이를 혼자 태워 보낼 수 없는 아이 엄마가 함께 기차를 타고 왔다가 보따리학교의 원칙을 어길 수는 없기에 내 눈에 들킬까 봐 내가 오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확인하고는 아이를 남겨두고 부랴부랴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그 모습 또한 어찌 아름답지 않을 수 있으랴.
지난해 가을 보따리학교 때의 기억이 난다. 전주에서 초등학교 3학년에 다니는 아이가 학교에는 1주일간 가정학습 계획서를 제출하고 보따리학교에 참가했었다. 장계 우리 집에 와서 3일을 지내고 바로 강화도에 있는 대안 중학교에서 열리는 생명축제로 집결하는 날이었다.
전주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가서 강화도로 들어가야 하는 날이었다. 장계에서 혼자 전주로 온 이 아이가 우아동 어딘가에서 터미널에 있는 내게 손전화를 걸어왔다. 터미널에서 함께 갈 중학생 하나가 있어 만나게 해 주려고 내가 터미널에 와 있었다. 이 아이에게 택시를 타고 고속버스터미널 대합실로 오라고 했다.
예매해 둔 차 시간이 다 되어서 다시 전화가 왔다. 이 아이는 엉엉 울면서 전화를 했다. 택시를 잡아도 아무도 안 태워 줘서 못 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큰 배낭에 침낭까지 둘러메고 꾀죄죄한 이 아이가 아무리 택시를 잡아도 택시는 차비를 못 받지 않을까 걱정이 돼서 인지 다들 그냥 휙 가버린다는 것이었다.
예매한 표를 30분 뒤차로 바꿀 수밖에 없었다. 조난당한 사람을 구출하는 심정으로 나는 손전화를 두 손으로 감싸 쥐고 기지를 발휘해서 아이에게 또박또박 요령을 전했다. 근처에 세탁소가 있다고 하기에 세탁소 주인에게 택시를 잡아 태워 달라고 부탁하라고 했다. 아이는 그러마 하고 하면서 울음을 그쳤다. 그리고는 금새 생글거리며 터미널에 나타났다. 우리는 에베레스트 정상에라도 오른 듯이 다 함께 쾌재를 불렀다.
혼자서 가는 아이는 결코 세상에 혼자가 아님을 배우게 된다. 울산에서 열네 시간에 걸쳐 기차를 두 번 갈아타고, 또 버스를 타고 온 아이가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여자애였다. 기차에 같이 앉게 된 아주머니가 그 아이를 대신해 손전화로 내게 소식을 알려왔었고 그 아이가 대견하다며 용돈까지 주었었다.
몇천 원인 그 용돈은 단돈 몇천 원에 그치지 않는다. 그 아이에게 세상에 대한 두터운 믿음을 키워주는 자양분이 된다. 세상의 모든 타인은 잠재적 경쟁자이고 가해자일 수 있다는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아이보다 이런 아이의 미래는 몇 배가 더 밝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2003년 여름에는 경남 고성에서 60여 명이 모여 1주일간 보따리학교가 열렸다. 산골 마을에 모이는데 오는 과정이 다들 기구하여 사연이 구구절절 많았다. 그런데 으뜸은 다짜고짜 파출소에 들어가 행선지를 말하고 도움을 청했던 아이가 경찰 순찰차를 타고 행사장까지 왱왱거리며 온 일이다.
옆 사람에게 쉽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아이가 아무런 조건 없이 남을 도울 수도 있다. 기차에서 초등학교 2학년인 여자애가 혼자서 가는 목적지를 얘기하면서 내려야 할 기차역을 물어 올 때 100이면 100, 모든 어른들은 따뜻하게 안내해 주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학사일정은 학생들이 정하고 먹는 문제부터 해결한다
보따리학교의 참 학교다운 모습은 앞으로 소개하는 학사 일정에 있다. 학사 일정이라고 하니 습관적으로 교과목은 무엇이고 이들이 어떻게 배치되는지 관심이 갈 것이다. 보따리학교는 학사일정이 없다는데 묘미가 있다. 이번에 하는 길동무겨울보따리학교 네 곳 어디에도 3박 4일 동안 뭘 하겠다는 계획표가 없다. 생활할 수 있는 대략적인 환경조건이 소개되어 있을 뿐 전적으로 학사일정은 학교에 참가하는 학생들이 첫날 스스로 짠다.
학사일정 중 제일 중요한 필수과목이 하나 있다. 먹는 문제다. 첫날 모든 참가자들이 가져 온 것을 다 펼쳐놓고 주절주절 소개를 한다. 그 다음에 필수과목 이수 계획이 세워진다. 내일 아침밥은 누가 하고 설거지는 누가 하고 하나하나 짜는 것으로 학교운영 일정표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밥은 생명이고 하늘이므로 밥에 대한 소중함을 첫날부터 익히는 것이 보따리학교의 정신이다. 보따리학교의 정신은 2002년에 남한 전역을 달구었던 '우리쌀 지키기 100인 100일 걷기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다. 115일 동안 걸어서 전국을 누비며 우리쌀을 지키고 생명을 지키고 평화를 나누자고 다짐했던 사람들이 '길동무'로 모인 것이고, 보따리학교는 '보따리선생'이라 불리었던 해월 최시형선생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다.
'길동무'에서는 모두가 대등하다. 어린 아이들을 우리는 '동몽접장'이라 부른다. 어른들이 회의를 할 때도 코흘리개 아이가 칭얼대면 회의를 멈추고 아이에게 집중한다. 말을 할 줄 아는 아이면 누구나 투표권을 행사한다.
1894년 갑오년 고부항쟁이 벌어질 때 사발통문을 돌려 동학군의 기포를 촉구할 때 서명을 했던 스무 명의 동학 접장 중 두 명이 십대 젊은이였다. 송국섭이라는 접장은 당시 열네 살이었다. 이들을 동몽접장이라 불렀고 백발이 성성한 해월선생은 꼭 이들에게 맞절을 했다고 한다.
미국이 민주주의가 앞서 있네, 어쩌네 하지만 여성들에게 투표권이 주어진 때가 1920년대였고 흑인들은 1965년에 가서야 인간으로 취급되었던 점을 생각하면 여성들도 접장이 되어 '부인접장'으로 불리었던 당시 우리 동학운동의 인내천 사상은 '보따리학교'가 그대로 이어받고자 하는 정신이다.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를 외던 당시 농민들은 물론 세상 만물이 보따리학교의 스승이고 온 세상이 다 학교다.
이번 겨울 보따리학교도 사실은 '길동무' 회원인 땅콩평화(14세)양이 작년 말에 제안했었고 한 사람 두 사람 뜻을 같이하면서 70명, 100명의 큰 학교가 열리게 된 것이다. 학생이면서 선생이고 부모이면서 아이가 되는 것이 참된 학교이고 교육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읽는 <오마이뉴스> 독자분들은 '길동무'의 겨울 보따리학교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궁금할 것이다. www.gildongmu.org 에 들어가면 알 수 있다.
<열린전북> 2월호 '전희식의 생명이야기 두번째마당'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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