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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이 함께 만든 보따리학교 포스터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애들이 함께 만든 보따리학교 포스터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 전희식
'길동무' 공동체에서 주관한 보따리학교가 지난 23일 우리 집에서 열리는 날 아이들 다섯이 우리 집으로 왔다. 이들이 다 우리 집에 잘 오기까지 재미있는 사연이 있다.

먼저 온 애들이 수빈이와 강덕이 남매다. 이날 오전 10시가 조금 넘어서 현직 고등학교 교사인 강덕이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남매가 곧 집에서 출발한다는 전화였다. 집이 전주인데 장계에는 언제쯤 도착할지는 알 수 없었다.

오전 11시쯤 되었을까? 강덕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빠 손 전화를 가지고 출발한 초등학교 2학년인 강덕이가 동생 수빈이를 데리고 처음 먼 길을 떠난 탓인지 사뭇 감격에 겨운 목소리였다.

"농주아저씨('농주'는 길동무 공동체에서 사용하는 내 별칭이다). 저 가요. 곧 가요. 기다려요."

이렇게 말하더니 뭐라 할 틈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장계정류장에서 우리 마을로 가는 버스가 낮 12시 50분인데 내가 그 말을 할 틈을 주지 않았다. 내가 전화를 할까 하다가 기다리기로 했다.

@BRI@낮 12시가 다 된 시각이었다. 강덕이 전화가 왔다.

"장계 내렸어요. 어떻게 가요?"

나는 '친절한 농주씨'가 되어 또박또박 안내를 시작했다.

"12시 50분에 차가 있는데 강덕아 수빈이 손 꼭 잡고 말이야, 너 그걸 타고 종점에 내려라. 그 버스가 농주아저씨 마을인 지보마을 가는 버스야. 12시 50분 지보마을. 알았지?"

한마디, 한마디를 또박또박 설명을 다 하자 강덕이가 내 기운을 쫙 빼버렸다. 강덕이가 "네? 뭐라고요?"라고 한 것이다.

전남 곡성에서 출발한 9살짜리 본이가 남원에 도착했다는 전화가 있었는데, 오후 2시쯤이나 장계에 도착할 거라는 연락을 받은 터라 강덕이 남매를 먼저 맞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손전화 음질도 안 좋고 하여 강덕이가 좀체 잘 알아듣지를 못하는 것이었다.

"강더가. 지.보.마.을. 따라해 봐."
"디보말?"
"아냐. 지구 할 때 지. 알지?"
"네. 지!"
"보호하다 할 때 보! 보리밭 할 때 보!∼ 알지?"
"보?"


마을 이름이 생소해서일까? 보리밭을 구경한 적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보호라는 말이 뭔지 몰라서일까? 강덕이는 좀체 '지보마을'을 외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종점'에 내리라고 하면서 '지보마을'로 가라고 한 것이 종점이 뭔지 모르는 아이가 헷갈릴 수밖에 없었을 듯하다.

우리 집에서 마을 종점까지는 1킬로미터쯤 된다. 버스를 타고 우리 마을까지 오게 하는 것이 이번 보따리학교의 첫 번째 과제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강덕이와 안타까운 통화를 시작했다.

"종소리 할때 종. 있지? 해봐 종!"
"춍!"
"아니. 아니. 종!"
"종."
"그래 그래…, 점. 얼굴에 점 있는 사람들 있지? 따라 해 봐 점!"
"점."
"그래 됐다. 따라 해봐. 종.점."
"춍천."
"아냐…, 종.쩜!"
"춍천."


지금껏 부모가 운전하는 자가용만 타고 다닌 아이가 '종점'이 뭔지 모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2학년까지 학교에서도 '종점'을 배울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겨우겨우 낮 12시 50분 지보리행 버스를 타야 한다는 말이 전해졌다. 나는 이제야 마음을 놓았다. 그런데 낮 12시 20분쯤 되었을 때다. 강덕이 전화가 왔다.

"농주 아저씨. 여기요. 무진장여객이라는 차 하고요. 그리고요 대한여객이라는 차 하고요. 있는데요. 어떤 차 타요? 근데요. 무진장여객은 문이 닫혀 있고요. 대한여객은 문이 열렸어요. 문 열린 차 타도 돼요?"

"강덕아. 아닌데. 12시 50분 차니까 12시 40분은 돼야 버스가 승강장에 들어올 거야. 좀 더 기다려."


걱정이 된 나는 버스가 출발하기 직전인 낮 12시 47분쯤 되어서 전화를 걸었다. 내가 '여보세요'라고 하기도 전이었다. 수빈이가 뭐라고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강덕이가 소리쳤다.

"농주 아저씨. 탔어요. 지보리 버스요. 종점에 내릴 거예요! 운전아저씨가 말했어요. 내려 준대요!"

이렇게 강덕이 남매는 잘 처리(!) 했는데 나이가 제일 어린 본이가 걱정이 되었다. 보따리학교에서 제일 신경 쓰는 것이 안전사고이다. 연락이 올 시간이 되었는데 아무 연락이 없으니 걱정이 슬금슬금 되는 것이었다. 낮 12시 50분 차 다음은 오후 3시 차인데 오후 2시에 도착한다는 이 녀석이 오후 2시 20분이 되어도 전화가 없다. 어찌된 일일까?

이때였다. 중학교 1년생인 본이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본이가 장계터미널에 내려 아무리 전화를 해도 내게 연락이 안 된다고 집으로 전화가 왔다는 것이었다. 본이 언니에게 잘 일렀다. 내가 데리러 못 나가니 오후 3시에 지보마을 가는 버스를 타고 종점에 내리면 종점으로 데리러 나갈 거라고 그렇게 본이에게 전하라고 했다.

본이가 내게 직접 전화를 하게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라고도 했다. 기다리는 본이 전화는 안 오고 오후 2시 30분경 강덕이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본이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농주아저씨 전화가 연결이 안 되고 자꾸 이상한 사람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걱정스런 목소리였다. 잘 설명을 하고 나도 본이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기다리기만 할 수 없는 나는 본이네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본이 언니가 받았다. 본이에게선 아직 아무 연락이 없다는 것이었다. 다시 나는 본이가 오후 3시 버스를 타고 들어와야 한다는 점을 자세히 설명했다. 걱정이 자꾸 커지는데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오후 2시 50분이 되었다.

나는 장계버스정류장 매표소로 전화를 했다. 자그마한 시골 버스 정류장이라 표 파는 아주머니 얼굴이 떠올랐다. 사정을 설명하고 꼬마 아이를 찾아 보라고 했는데 없다는 것이다. 그럴 리가 없다며 나는 대합실 주변을 좀 살펴 달라고 했더니 금세 본이를 발견했는데 저기 웬 꼬마가 있다고 여자애냐고 물었다. 나는 반색을 하며 그렇다고 했다.

본이 생김새나 옷차림을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9살 먹은 꼬마애가 혼자 있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본이가 맞았다.

아주머니가 바꿔주는 전화기로 본이 목소리가 들린다. 시계는 오후 2시 55분. 본이에게 설명을 하고 다시 표를 파는 아주머니에게 버스를 잘 태워 달라고 부탁했다. 운전기사에게 본이를 잘 내려 주라는 부탁도 해 달라고 아주머니께 말씀드렸다.

내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본이는 태평스런 목소리였다. 보따리학교를 5살 때부터 한 본이는 역시 달랐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공중전화를 하면서 옆에 아저씨에게 부탁했더니 번호도 눌러주고 전화카드도 빌려 줘서 공짜로 전화를 했다고 했다.

이렇게 두 번째 손님을 처리(?)했다. 이때까지 목포에서 오는 녀석이 아무 연락이 없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이라는데 전날 전화로 자세한 교통편을 문의하더니, 그래서 잘 오고 있으려니 하고 그냥 기다리기로 했다.

아무래도 오후 3시 버스는 못 탈 운명이다. 그러면 오후 6시 10분 막차를 타야 했다. 많이 안 기다리고 탈 수 있으려면 차라리 늦게 도착했으면 싶기도 했다. 오후 5시 20분쯤이었을까?

"저요. 석훈인데요. 장계 왔어요."

제법 듬직해 보이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등장했다. 초등학교 4학년 목소리를 듬직하다 여기니 말 다했다. 해남에 사는 원규랑 만나서 같이 왔다고 했다.

이렇게 혼자서 찾아오기 수업(?)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절대 경쟁의 대상도, 경계나 기피의 대상도 아닌, 서로 도우면 사는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주제의 수업인 것이다.

이 수업을 시작으로 나흘 동안의 장계보따리학교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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