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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부터는 이제 걸어서 들어가야 한다. 폭 좁고 가파른 등산로가 이어졌다. 산 능선 하나를 넘어가자 멀리 집 한 채가 보였다.
'문명이 만든 것들과 단절된 생활은 어떤 것일까?' 이런저런 호기심이 그 집을 보자마자 호기심이 불꽃처럼 일어난다. '도대체 저기 사는 사람은 누구일까?'
인기척이 느껴지자 "누구시오"라는 말이 방안에서 들려왔다.
지인은 "네 접니다"라고 했고, 그는 반갑게 문을 열고 방안으로 우리를 초대했다. 방안으로 들어서자 방안 가득 포근한 붉은 기운이 느껴졌다. 태양이 눈구름에 가려 있어 촛불을 켰다고 했다. 방안에는 촛불 두 개가 익숙한 전등을 대신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방안에 사물이 모두 희미했으나 이내 익숙해졌다. 아마 산골 생활도 그러하리라.
그는 나와 비슷한 30대 중반의 나이였다. 산에 들어온 이유는 무술수련을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무술 수련과 함께 밤 0시부터는 새벽 3시까지 바위에서 명상을 한다고 했다.
전기가 들어오지는 않는다고 했는데 방안에 전등이 보였다. 태양열 전지판으로 하루에 2시간 정도 불을 켤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 촛불을 켜고 생활한다고 했다. 초 두 개로 일주일 정도를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휴대폰 통화는 가능하지만 휴대폰은 없다고 했다. 산으로 들어오면서 가져오지 않았단다.
그는 우리를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사람 볼 일이 거의 없으니 반갑기도 할 것이다. 그는 차를 대접했다. 향이 좋은 녹차였다. 아마 산중에 맑은 물로 끊인 차여서 더 맛이 좋은 것 같다.
그는 지금 민족무예를 연마한다고 했다. 20년 정도 무술 수련을 했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고 한다. 그는 민족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더불어 민족의 역사에 대해서도 아주 해박했다. 하지만 자기 주장만을 내세우지는 않았다. 산중에서 혼자 살지만 편협하지는 않았다.
나도 한때는 산중에서 혼자서 살고 싶어하던 때가 있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 처음 지리산 종주를 했을 때쯤부터 산 속에서 혼자 생활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가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을 보니 왠지 부럽기도 했다.
혼자 산 속에서 살기에 돈도 필요 없다고 했다. 가끔 아는 분들이 식량을 보내 주기도 하고 얼마간의 돈으로 구입하기도 한다고 한다. 난방은 산중에 아궁이를 사용한다. 산에는 나무가 많아 나무 걱정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온돌방은 아주 따뜻하지는 않았지만 견디기 어려울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물은 산에서 흘러오는 물을 마시면서 살고 있었다.
나는 차가 없는 그가 구례읍에 나가서 물건을 구매하는 모습을 상상해봤다. 집을 떠난 그는 산길을 걷고, 다시 흙길을 걷고, 자갈길을 걸어 콘크리트 포장 길을 걷다가 아스팔트를 만난다. 이렇게 집에서 버스를 타는 곳까지 걸어 내려와 버스를 기다려 산을 빠져나와 구례읍에 도착한다.
그리고 시장에 갔다가 다시 그 짐을 지고 버스에 내려서 가파른 아스팔트 콘크리트길 자갈길 흙길, 그리고 산길을 짐을 지고 다시 산 속으로 향할 것이다. 그가 들고 나는 길은 길의 역사와 문명의 흐름이 그대로 담겨 있는 듯했다.
차를 마시는 동안 문 밖으로는 눈이 내렸고 바람소리가 들렸다. 우리들은 이런저런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가 해주는, 수련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전혀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들렸으나 그가 말하는 세상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더 이상해 보이기도 했다.
나는 그가 거의 돈을 쓰지 않고 하고자 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있는 모습이 좋았다. 우리는 많은 시간을 돈을 벌기 위해 사용한다. 이런저런 시테크에 관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몇 년 전에는 '아침형 인간'이라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시간을 좀 더 많이 사용해서 돈을 챙기는 인간이 최고의 인간인 것처럼 이야기하기도 했다. 지금은 서점 한 모퉁이 그때 나온 책들이 주인을 찾지 못해 쌓여 있지만 말이다.
그는 산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있다. 쇼핑도 하지 않고 특별하게 매달 내야 할 돈도 없다. 그러니 돈도 들지 않는다. 그는 그냥 산중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하며 산다.
물론 그도 매일 행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많은 시간을 돈을 벌어 무엇인가를 해서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고개를 돌려 생각해 보면 돈을 벌지 않고도 시간만을 투자해서 행복해지는 일도 있다.
세상엔 많은 삶의 방식이 존재한다. 그가 살고 있는 방식대로 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마 그래서 세상엔 행복한 사람보다 불행한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를 만나고 산에서 내려오는데 눈 쌓인 길이 꽤 미끄러웠다. 차를 타고 내려오다가 더 이상 차를 움직일 수가 없어 산길에 차를 그대로 두고 걸어서 내려왔다.
산마을에는 눈이 소복하게 내려 있었다. 우리는 전기와 전화가 있고 차로 갈 수 있는 길로 걸어 나왔다. 그는 여전히 산중에 남았다. 나는 산중에 있는 그가 부러웠다. 하지만 그는 나를 부러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지리산 산중에서 그와 보낸 시간이 추억으로 남았다. 여전히 지리산에 눈이 내리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친환경 우리 농산물 직거래 참거래 농민장터(www.farmmate.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