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까지 동북공정 중단하라고 중국 정부에 목소리 높혀 외쳐왔는데 동북공정이 끝났다. 그러면 이제는 무엇을 요구할것인가?
단순한 질문이지만 대답하기가 영 어색하다. 지난 2002년 2월에 시작된 동북공정이 2007년 1월 공식적으로 끝났다. 일반인들이 오해했던 것 가운데 하나가 동북공정이 마치 엄청난 프로젝트로 천년만년 갈 것처럼 생각했던 점이다. 동북공정은 겨우 5년간의 한시적인 프로젝트였고 들어간 비용도 한국 돈 3억7200만원에 불과했다. 몇천억 심지어 몇조원까지 언급되었던 것은 잘못된 소문이었다.
동북공정은 끝났다는데 아직까지 후속 프로젝트가 드러난 것은 없다. 그러면 중국의 역사 왜곡은 끝난 것인가? 동북공정이 끝났으니 더 이상 한국은 시비걸지 말라고 중국이 말하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주몽>·<연개소문>·<대조영> 등의 TV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는데 만족해야 할까?
@BRI@이런 생각을 불러일으킨 토론회가 29일 열렸다. 고구려연구회는 이날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중국 동북공정 5년의 성과와 전망-역사 침탈은 계속된다'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발표자로 나선 서길수 서경대 교수는 "중국의 역사침탈=동북공정이라는 등식이 국내에 일반화되면서 (맨 앞에 소개한) 오해가 발생했다"며 "동북공정은 지난 1980년대부터 시작된 수많은 중국의 역사 침탈 프로젝트의 하나였다"고 지적했다. 그는 "따라서 동북공정이 끝난다고 해서 중국의 역사침탈이 끝난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서 교수에 따르면 동북공정이 실행한 과제 가운데 분석 가능한 47개 과제를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다. 고조선 연구 1개, 고구려 연구 6개, 발해 연구 6개, 간도 및 한중 국경문제 10개, 원·명·청·민국시대 연구 11개, 러시아 관련 연구 7개 등이다.
동북공정은 고구려사 뿐 아니라 고조선에서 간도문제까지 한국사 전반을 다뤘던 것이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은 동북공정을 단지 고구려사 왜곡 정도로 파악했다. 동북공정의 진의를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이다.
또 동북공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국경 문제였다. 서 교수는 "동북공정은 원·명·청·민국 시대를 집중적으로 연구했고, 간도 및 한중 국경문제, 국경이론 및 민족문제들이 고구려 보다 2배 이상의 비중을 가지고 다뤄졌다"며 "러시아 관련 연구가 많은 것도 결국 국경문제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의 다민족통일국가론은 중국의 범위를 현재의 국경이 아닌 청나라 때의 국경으로 파악한다. 이에 따르면 현재의 몽골과 러시아의 극동 지방 역시 중국의 땅이다.
2004년부터 역사침탈의 주체는 동북3성
동북공정은 지난 2002년 시작되었으나 국내에 알려진 것은 지난 2003년 10월이었고 2004년부터 한중 사이에 외교문제가 되었다. 그런데 동북공정은 2004년 선정 과제건수가 줄어드는 등 대외적으로 활동이 지지부진한 것처럼 보였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서 교수는 "한국의 반발 등으로 중국 학자들은 2004년부터 대외적으로 연구성과 공개를 최대한 자제한 채 조용하게 연구를 한 것으로 보인다"며 "대신 지린성사회과학원이 <동북사지>라는 학술지를 만들어 300편이 넘는 논문을 생산해 내는 등 이중 플레이를 했다"고 비판했다.
현재 헤이룽장성 문화청이 발행하는 <북방문물>, 지린성 문화청이 발행하는 <박물관 연구>, 지난 2004년 창간한 <동북사지> 등의 학술지가 그것이다. 특히 <동북사지>는 지린성 선전부 부부장인 장푸여우가 사장으로 있는 잡지로 2004~2006년 동안 고구려사 관련 논문만 106편을 실었다.
서 교수는 "2004년을 기준으로 역사침탈의 주체가 동북공정에서 동북 3성으로 넘어갔다"며 "한국이 동북공정이라는 껍데기만 가지고 온 국민이 난리를 치는 동안 중국은 한국을 외교적으로 무마하고 대신 자리를 옮겨 몇배 덩 강도있는 연구를 진행하여 왔다"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지난 1996년 7월20일 본시(本溪)시 문물관리위원회 판공실이 각 관청의 고위간부, 선전부, 공안국 및 국가안전국에 보낸 비밀문서를 공개했다. 본시시 환런현에는 고구려 첫 수도인 홀본성이 있다.
'고구려 귀속문제 논쟁에 대한 몇가지 초점'이라는 제목의 비밀문서에는 "한국과 조선(북한) 두 나라 학자들은 고구려가 고대 조선의 국가라며 우리 나라 동북지구를 조선 역사에 써넣고 있는데 이것은 역사적 사실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이에 대해 우리 나라 학자가 유력한 반론을 내놓았으니 참고하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중국 정부가 고구려 역사침탈에 동북공정을 공식적으로 시작하기 이미 6년 전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이다.
1980년대 중국의 유명 역사지리학자인 탄치양이 중국 역사의 지리적 범위를 1940년대 아편전쟁 이전의 청나라 판도로 규정했고 이는 사실상 중국의 공식적인 입장이 되었다.
이후 본격적인 국경전문 연구기관으로 1983년에 변강사지연구중심이 만들어졌다. 이어 1986년 티베트 지역 전문 연구기관인 '중국장학(藏學)연구중심'이 만들어졌고 몽골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킨 <몽골족통사>가 1990년 10월에 나왔다. 1990년대 후반에는 통화사범대학에 고구려연구소, 지린성사회과학원에 고구려연구중심, 조선·한국연구소, 동북사범대학에 동북민족강역연구중심 등이 앞다퉈 세워졌다.
또 1996년부터 2000년 에는 제9차 경제·사회5개년 계획의 하나로 하·상·주 단대공정이 이뤄졌다. 이 작업은 하나라, 상나라, 주나라의 정확한 연표를 확정하는 것이 목적이다. 현재 중국 역사는 서주 후기 공화 원년 즉 기원전 841년까지만 정확히 확인되어 있어 이집트의 기원전 2500년 등에 비하면 한참 떨어진다. 하상주단대공정의 결과 하나라는 기원전 2070~1600년 등으로 역사가 확정되었다.
동북공정을 고구려사 빼앗기로 생각한 것은 잘못
또 지난 2000~2005년에는 중국 고대문명 탐원공정을 벌였는데 이는 기원전 3000~2000년 시기의 문명의 발전 과정 등에 대한 방대한 작업을 통해 이른바 전설로 전해지는 삼황오제 시기를 역사적 사실로 만드는 작업이다. 중화문화 5000년이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해 중국 문명의 우수성을 세계에 과시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지난 2005년부터는 '신쟝(新疆)항목'이라는 작업에 들어가 신쟝위구르 지역 역사에 대한 연구에 돌입했다.
한국 사람들이 한중 수교 뒤 백두산에 올라가 '만주땅을 찾자'는 구호를 외쳐 동북공정이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만주땅 찾자'는 구호를 외치고 다닌 것 자체가 올바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부 한국인들의 행동 때문에 동북공정이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이미 중국의 방대한 각종 영토·민족문제 관련 프로젝트는 계획적으로 진행되어왔던 것이다.
한편 반병률 동북아역사재단 제2연구실장은 '동북공정에 대한 우리나라의 대응과 반성'이라는 발제문에서 "동북공정의 목적을 중국의 고구려사 빼앗기 작전' 정도로 파악해, 동북공정의 내용·목적·파급효과 등에 대한 정확한 파악 및 대응책 마련에 차질을 빚었다"고 지적했다.
반 실장은 "중국에서 관련 연구물 발표나 유적 조사 보도가 나오면 언론에서 집중보도→시민궐기대회→학술회의나 토론해 개최 등으로 즉흥적·즉물적 대응을 했다"며 "편향적이고 과도한 민족주의적 성향에 입각한 단기폭발성, 일회성 반응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결국 동북공정에 대응하기 위한 기관으로 만들었던 조직의 이름이 '고구려연구재단'이었던 것에서부터 한국의 한계가 드러났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 동북아역사재단을 만들었는데 이 조직이 어떻게 활동할 것인가가 우리의 과제가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