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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 동안 마르지 않고 솟아 오르는 월명정. 샘의 깊이가 불과 2미터도 채 안된다.
600년 동안 마르지 않고 솟아 오르는 월명정. 샘의 깊이가 불과 2미터도 채 안된다. ⓒ 윤형권
600년 동안이나 마르지 않고 흐르는 우물이 있다. 화제의 우물이 있는 곳은 충남 논산시 성동면 병촌리. 동네의 지형이 물병을 닮았다고 해서 '병촌(甁村)'이라고 하는데, 지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닐 게다.

병촌 마을 한가운데 있는 이 우물은 동네의 주산(主山)인 월명산의 이름을 본떠서 '월명정(月明井)'이라고 부른다.

@BRI@29일 만난 이 마을 이장 어른이신 이병구(70세)씨에 의하면 "우리 마을이 약 600백여 년 전에 형성됐다고 전해 내려오는데, 마을이 생기면서부터 이 우물을 식수원으로 사용한 것"이라며 우물의 유래에 대해 말한다.

월명정은 여름에는 넘쳐흐를 정도로 수량이 풍부해서 아무리 가물어도 우물이 마르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1939년 전국적으로 극심한 가뭄이 닥쳐왔을 때 인근지역의 모든 우물이 말랐는데, 이 월명정은 마르지 않아 많은 사람들을 살렸다고 한다.

신통한 것은 이 우물의 깊이가 그리 깊지가 않다는 것. 지면으로부터 깊이가 사람의 키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지금도 동네사람들이 식수원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 샘물로 머리를 감으면 머릿결이 부드러워지고 웬만한 병치레는 거뜬하다고 알려져 인근지역에서 물을 얻으러 오기도 한다.

이 우물의 역사를 말해 주듯 우물가에는 아낙네들이 방아를 찧어 홈이 패진 바위 판이 세 개나 있다.

우물가에 있는 넓적한 바위. 홈이 패인 것은 보리나 쌀을 찧어서 생긴것이라고 한다.
우물가에 있는 넓적한 바위. 홈이 패인 것은 보리나 쌀을 찧어서 생긴것이라고 한다. ⓒ 윤형권
병촌 마을 주민들은 이렇듯 600년 동안이나 마르지 않고 솟아올라 사람들의 생명을 살려주고 있는 이 우물을 아끼고 있다. 그런데 호사다마라고 할까. 이 마을에는 우물과 간접적으로 얽힌 현대사의 비극적인 사연이 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의 일이다. 전국방방곡곡이 피로 물 들은 현대사의 비극이 이곳 병촌 마을에서도 발생했으니, 약 200여명의 사람들이 서로 죽이는 처참한 사건이 있었다. 이곳 병촌 마을은 논산평야 한가운데 있어서 벼농사가 성했다. 논을 많이 소유한 사람이 부자인 시절이었으니 소작농과 일꾼들도 많았을 터다.

전쟁이 끝난 후 동네는 고요한 적막에 휩싸였다. 서로 얼굴을 대하기도 어려웠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세월은 흘러 1977년. 이 마을사람들은 한국전쟁 이전처럼 의좋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마을 사람들이 중지를 모았다. 경로효친과 동네 사람들끼리 우애가 샘물처럼 마르지 않기를 바라면서 대책을 강구하던 차에 한국 풍수의 특징인 비보풍수(裨補風水)의 방법을 쓰게 된다. 마을의 입구. 즉 물병의 주둥아리에 해당하는 곳에 '분수정(盆水亭)'이라는 정자를 세웠다. 분수정의 '분수'라는 뜻은 물동이를 말한다.

물병에 물이 차서 넘치는 것을 방지한다는 의미를 지닌 물동이라는 의미의 분수정.
물병에 물이 차서 넘치는 것을 방지한다는 의미를 지닌 물동이라는 의미의 분수정. ⓒ 윤형권
여기서 월명정과 분수정을 개보수 하며 마을 사람들의 화합을 도모하고 있는 이병구 이장의 말을 한 번 더 들어 보자.

"병촌이라는 물병을 닮은 마을에 월명정이라는 샘물이 있는데, 병에 물이 차면 물동이에 담아야 자연의 순리 아니겠는가? 그런데 물동이가 없어서 물병의 물이 흘러넘쳤다. 이것이 한국전쟁 당시 마을의 비극이었다."

믿음은 '사람이 바라는 것의 실상'이라고 했다. 병촌리 마을사람들이 분수정을 세운 것은 물병을 닮은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화합하고 웃음꽃을 피우며 행복하게 살자는 소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전국각지에 병촌 마을의 분수정과 같은 비보풍수가 수없이 많다. 우리나라 자생풍수만의 특징이다.

여기서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있다. 혹자는 병촌 마을의 분수정과 같은 것을 일러 미신이라고 단정하며 무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병촌 마을 사람들이 분수정을 세운 염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신으로 돌리는 것이 얼마나 우매한가를 일깨워 준다.

병촌 마을의 분수정은 마을의 비극적인 사건을 둘러싸고 슬기롭게 대처하는 이 마을사람들의 의지가 담긴 지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들끼리 서로 죽여 버린 비극을 극복하고자 궁리한 처절한 노력이 분수정이다.

무엇이 지혜냐고? 비극의 원인을 사람 탓으로 돌리지 않았다. 서로 용서를 구한 것이다. 그러면 병촌 마을사람들은 마을의 비극적인 사건의 원인을 물병과 월명정이라는 자연의 탓으로 돌렸을까? 이것도 아니다.

우리 조상들의 지혜는 흉과 허물을 인간이나 자연의 탓으로 돌리지 않았다. 분수정이라는 이름을 잘 음미해 보자.

앞서도 말했지만 월명정이라는 샘물은 600년 동안이나 마르지 않고 솟아오른다. 물병에 물이 차면 비워야 한다. 그래야 또 물을 채울 수 있다. 우물을 자꾸 퍼내야 신진대사가 활발해진다. 이것이 자연의 순리이며 순환이다. 이 고리가 끊기거나 막혔을 때 흉과 화가 미친다고 여겨서 '모자라는 것은 채워주고 남는 것은 덜어준다'는 비보풍수가 생겨난 것이다.

분수정을 설명하는 글
분수정을 설명하는 글 ⓒ 윤형권
혹시 이런 것이 미신 아닐까? 병촌 마을사람들이 비극의 원인을 사람에게 돌려 서로 증오하거나 아니면 월명정이라는 우물 탓으로 돌려 우물을 메워버리는 일 말이다.

병촌 마을의 월명정은 600년 동안 마르지 않고 흐르며 이 마을 사람들의 삶을 지켜왔다. 앞으로도 계속 흐르기를 바란다. 모자라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기를 바라며….

월명정이 있는 뒷산에서 바라본 달. 논산평야가 한 눈에 보인다.
월명정이 있는 뒷산에서 바라본 달. 논산평야가 한 눈에 보인다. ⓒ 윤형권

덧붙이는 글 | 월명정은 지금도 마을사람들과 인근지역 사람들의 음용수로 사용되고 있다. 수질검사를 하지 않아 건강이 염려된다. 관계당국의 조치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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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깎는다는 것은 마음을 다듬는 것"이라는 화두에 천칙하여 새로운 일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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