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시작전] 여학생 할머니들의 수다
대회가 시작되기 30분 전인데도 대회장에는 많은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자리에 앉아 있었다.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한 그룹의 할머니가 눈치를 보며 다른 그룹 할머니에게 말을 건냈다.
할머니 A "할머니는 2학년인가요?"
할머니 B "네, 그런데 왜요?"
할머니 A "아니 낯선 얼굴이어서... 내가 3학년은 얼굴을 다 아는데 모르겠어서 말야. 미안."
할머니 B "네, 선배님이시군요. 안녕하세요."
할머니 A "에이, 선배님은 무슨... 반가워요."
선배님이란 소리에 손사레를 치지만 자못 선배라는 호칭이 싫지는 않은 눈초리였다. 학교생활에 흠뻑 빠져 있는 듯 보였다.
시간이 흐르자 더 많은 할머니들이 대회장으로 모여들었다. 앉아 있던 할머니들은 손을 흔들며 친구들을 불러댔다. 다른 반 친구들끼리 앉은 자리에서는 "우리반에서는 2명 나갔는데, 니네반에서는 몇 명 나갔니"라고 물어보며 은근히 자기반 자랑을 한다. 한참을 자랑하다 자기반 친구들이 들어오면 이내 친구들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긴다.
[대회 시작] 입이 '바짝바짝' 다리는 '후들후들'
이번 대회는 550여명의 학생들이 참여해 최종 20명의 할머니를 선발했다. 발표 주제는 다양했다. '공중도덕을 지킵시다'에서부터 '우리 농산물을 지키자', '배워야 삽니다', '물을 아껴 씁시다' 등 할머니들이 평소 친구들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
참가자들 대부분은 여러 사람들 앞에서 처음 발표를 하는 까닭에 많이 긴장한 모습이었다. 그래서일까 대회 시작 전, 교장 선생의 개회사 시간에도 자신들이 발표할 글을 읽느라 여념이 없었다. 발표 첫 순서여서 매우 떨린다는 두금순(68)할머니는 "글을 아무리 읽어도 돌아서면 까먹고 돌아서면 또 까먹고 그런다"며 "그래서 그런지 많이 떨린다"고 말했다. 2번 윤재혜(68)할머니는 "다리가 후들후들 거린다"며 "담임선생님이 내 발표 순서를 왜 2번으로 정했는지 모르겠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긴장이 심했던 탓일까. 다수의 할머니들이 실수를 연발했다. 어떤 할머니는 말을 하다가 그만 내용을 잊어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기도 했고, 어떤 참가자는 아예 내용을 건너뛰기도 했다. 또 연설 내내 말을 더듬는 할머니도 있었고 자신이 내용을 빠뜨린 것을 알고 "아유 나 빼먹었네"하며 혀를 쏙 내민 발표자도 있었다. 하지만 연설을 듣는 할머니들은 시종 격려의 박수와 웃음을 잃지 않고 연신 "잘한다"를 외쳤다.
"알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부끄럽지 않다"
'공부를 열심히 합시다'를 주제로 발표를 한 이옥자(62)할머니는 4남매를 낳고 어려운 생활을 하다 사는 게 너무 힘들어 자살을 하려다가도 유서를 쓰지 못해 포기 한 적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현재는 양화초등학교를 다니면서 배움의 한을 풀고 있는데 요즘은 컴퓨터도 배워 e메일도 보낼 수 있다고 한다.
이번 대회에서 '배워야 삽니다'를 주제로 대상을 받은 허영례(70) 할머니는 양화초등학교에서 가장 연장자다. 허영례 할머니는 "어릴 때 학교 가는 친구들이 부러워 친구들이 하는 놀이며 행동을 따라해 보기도 했다"며 가난해서 배우지 못한 설움을 토로했다. 허 할머니는 대상을 수상한 비결에 대해 "담력을 기르기 위해 전철에서 큰 소리로 연설문을 읽었다"며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비록 본선에는 올라가지 못했지만 열심히 한글 공부를 하고 있는 허유(67) 할아버지는 양화초등학교에서 몇 안되는 남학생이다. 허 할아버지는 "할머니들이 많은 학교에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상당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며 "하지만 공부라는 것은 자존심을 세워서는 안된다"고 했다. 허 할아버지는 이어 "학교를 다니기 전에는 술먹고 놀러만 다녔는데 여기서는 글을 배우고 깨우치는 것이 재미있고 즐겁다"면서 "이젠 길거리 간판도 읽을 줄 알고 편지도 쓸 줄 안다"며 자랑스럽게 자신의 배움을 뽑냈다.
평균 50~70세의 늦깎이 초등학생들이 모여 있는 양원초등학교. 나이는 비록 황혼을 향하고 있지만 마음만은 이팔 청춘이다. 자신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그리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장 잘 아는 청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