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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영경 - '섬' 이야기
ⓒ 바깥미술회

▲ 권민철 - '흙'은 '흙'이 아니요 '흙'이 아니다
ⓒ 바깥미술회

▲ 김광우 - 갈 수 있는 길
ⓒ 바깥미술회

2007 '바깥, 자라섬' 전

지난 27일 개막된 <2007 '바깥, 자라섬' 전>이 2월 4일까지 경기도 가평읍 자라섬 내 자연공간에서 '섬, 또 다른 섬들'을 주제로 열린다.

폐막 전날인 2월 3일에는 가평읍사무소 대회의실에서 '현장미술에 있어서의 장소성'이란 주제로 좌담회 및 작가토론회가 열린다.

<2007 '바깥, 자라섬' 전>에는 구영경, 권민철, 김광우, 김언경, 왕광현, 이호상, 전동화, 정하응, 최성렬, 최운영, 하정수 등 바깥미술회원과 김관수, 김용민, 김해심, 문병탁, 박봉기, 박이창식, 박형필, 손혜경, 오경헌, 임충재 등이 초대작가로 참여했다.
바깥미술회의 첫 전시회는 81년 1월 대성리 북한강변에서 열린 <겨울·대성리 31인전>이었다. 전두환 신군부의 80년 광주학살에 이은 정치적 억압과 미술계의 권위주의 풍토에 억눌린 젊은 작가들은 거칠고 외로운 '바깥'을 탈출구로 삼았다.

시대의 절망 앞에서 어찌할 수 없는 응어리를 안고 겨울 북한강변으로 탈출했던 바깥미술회원들. 그로부터 27년의 세월이 흘러 시대는 민주화를 이루었고, 20대였던 젊은 작가들은 머리카락 희끗한 40~50대의 중년에 접어들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아늑하고 쾌적한 '안'이 아닌 외롭고 쓸쓸한 '바깥'을 사수하고 있다.

왜 그들은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걸까? 아늑하고 쾌적한 공간에 대한 체질적 저항감 때문인가. 체제와의 관계정립을 통한 경제적 이익과 자리보존이 주어지는 '안'으로의 귀순 대신 관객의 호응은커녕 외로움과 추위만이 엄습하는 바깥을 고수하는 것은 순정 때문인가. 아니면 현장 미술을 표방해 온 바깥미술회의 성격 때문인가.

80년, 시대 상황은 암울했지만 억눌린 땅에는 순정과 열정의 씨가 뿌려졌다. 시대의 숨 막힘에 질식할 것 같던 작가와 관객들은 겨울 대성리에서 만나 스스럼없이 어우러졌기에 땅은 추웠을지언정 외롭지는 않았다. 그렇게 젊은 작가들은 대성리에서 새로운 작업과 일탈을 통해 문화예술이 꽃피는 땅을 꿈꿨다.

그러나 무식한 군사정권은 물러났지만 그 땅은 문화민주주의가 아닌 교활한 자본주의가 차지했다. 군사정권의 개발지상주의를 토대로 성장한 잡식성 공룡 자본은 포클레인 삽날로 자연과 문화를 초토화시킨 뒤에 아파트를 지었고 사람들은 투기로 미쳐 날뛰었다. 가난했지만 땅의 생명력을 믿었던 땅의 사람들은 물신(物神)의 광신도가 된 것이다.

'안'에서 벌어지는 물신의 춤판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그들은 안간힘을 쓰며 '바깥'을 고수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안'에서 살림하면서도 끝내 '바깥'을 떠돌아야 하는 그들의 이중생활은 그래서 외롭고 고통스러워 보인다. 그렇게 동조하던 관객들마저 떠나고 겨울 철새와 추위만이 엄습해올지라도 그들에게 겨울 바깥전은 생존의 이유일지도 모른다.

대성리에서 자라섬까지 '자연과 함께하기'

▲ 김언경 - 바람의 노래
ⓒ 바깥미술회

▲ 문병탁 - '4번째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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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봉기 - 호흡
ⓒ 바깥미술회

바깥미술회는 2002년 '공존하는 삶! 공명하는 예술'전을 끝으로 대성리를 떠났다. 그 이유로 작품의 보존 및 해체 등의 이유를 들었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대성리 정신의 왜곡'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상업성과 무차별 대중성이 결합해 침투한 난리법석의 대성리는 더 이상 그들이 머물 땅이 아니었다.

바깥미술회는 북한강으로 장소를 옮겨 '넘치는 생명력, 삶의 물길'(2003년), '적응과 저항 사이'(2004년)전을 연데 이어 경기도 가평군 자라섬으로 옮겨 '자연, 그 열림과 닫힘'(2005년), '섬, 감추기-드러내기-있게하기'(2006년)전을 열었다. 그리고 2007년 자라섬에서의 세 번째 바깥전을 열고 있다.

생태계 파괴와 상업성의 범람을 피해 옮겨 온 자라섬. 가평의 진산인 보납산(寶納山)을 끼고 있는 자라섬 또한, 욕망의 손길에 의해 생태계 변화와 훼손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섬으로 연결되는 도로는 물론이고 섬 안에 자연스러운 모습까지 인위의 손길에 의해 고유의 풍경이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바깥미술회는 이번 전시회에 대해 "자연과 교감하는 설치미술전을 '자라섬'이라는 덜 훼손된 공간 내에서 자연, 생태, 예술과 관객과의 어우러짐을 실현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개발이란 명목으로 훼손되는 자라섬과 또 다른 자라섬들의 자연 생태계 훼손에 대해 우려하는 그들은 머지않아 자라섬을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바깥예술이란 "자연과 더불어 던져지는 행의의 소산이자 우리의 가슴속에 편린 되어 있는 자연심성을 일구어내는 과정"이며 "모든 존재하는 것들이 비로소 더불어 존재하기 위한 '터'로서의 자연이라고 함이 옳을 것"이기 때문에 자본의 횡포와 그에 부화뇌동한 투기형 인간들의 침략에 견디지 못하고 피난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이루지 못할지라도 꿈을 꾼다. 이들은 "자연이 예술 속에 있고 예술이 자연 속에 있게 되며, 자연을 '안의 세계'가 되게 하고 나아가서 자연을 '더불은 세계'가 되게 하고자 한다"면서 "들의 넓이, 언덕의 기복, 강물의 흐름, 그리고 바람의 설레임조차도 또 다른 차원의 조형이 이룩되기"를 소망한다.

▲ 박형필 - 일엽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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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충재 -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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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응- 어떤 사물의 풍경에서 느껴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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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운영 - 미류나무 있었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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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청수 - 하이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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