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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잤어? 어디 몸 아픈 덴 없고? 아프면 꼭 얘기해야 혀~."
"더 먹어야지. 그것 먹고 공부 열심히 할 수 있겠어?"
@BRI@대학 기숙사의 아침 풍경. 졸린 눈을 비비며 아침식사를 하러가는 학생들에게 경비 아저씨가 '아버지'처럼 따스한 한 마디 말을 건넨다. 학생들은 아침이라 입맛이 없는지 밥도, 반찬도 조금씩 먹는다. 그러자 식당 아주머니가 "그것 먹고 공부 잘 하겠냐"며 더 먹으라 한다. 꼭 '어머니' 같다.
몸이 아플 때, 어머니가 차려주시는 맛있는 밥을 먹고 싶을 때, 객지 생활하는 대학생들은 더욱 고향과 부모님을 그리워한다. 이렇게 집 떠나 객지 생활하는 대학생들의 어머니, 아버지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기숙사의 '경비 아버지'와 '식당 어머니'들이다.
당신이 잠든 사이, 기숙사의 아침은 시작된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더 자고 싶은 욕구와 사투를 벌이고 있을 시간인 오전 7시. 성균관대학교 자연과학캠퍼스 기숙사(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아래 성대 기숙사)의 경비아저씨와 식당아주머니의 일과는 이때 시작한다.
기숙사 경비로 4년째 근무하고 있는 최혁주(61)씨는 오전 7시까지 출근한다. 근무 교대를 하며 지난밤 있었던 일을 전달받는다. 그리고 아침 일찍 공부하러 나가는 학생들과 기분 좋은 아침인사를 나누며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그러는 동안 기숙사 식당은 아침준비로 분주하다. 식당에서 근무하는 이금순(53)씨도 오전 7시까지 식당에 도착해 아침에 낼 반찬을 준비한다.
보통 직장의 출근 시간은 오전 9시. 기숙사는 이것보다 2시간 정도 빠르다. 학생들이 잠에서 깨기 전에 모든 것을 준비해놔야 하기 때문이다. 자식들보다 한두 시간 먼저 잠에서 깨어 자식의 등굣길을 준비하는 우리네 부모님과 꼭 같은 모습이다.
24시간 맞교대 근무 힘들지만, 학생들 보면 힘이 불끈!
"24시간 근무? 말이야 쉽지, 정말 힘들어. 몸도 참 힘들지만, 지루한 것도 참 참기 힘들지. 하지만 학생들이 '피곤하시겠어요', '감사합니다' 같은 말 한마디만 해주면 힘이 솟는다니깐."
경비 업무는 계속돼야 한다. 일 분 일 초라도 공석이 생기면 안 되는 게 경비 업무다. 그래서 2인 1조로 맞교대 근무를 하고 있다. 오전 7시에 출근해 그 다음날 오전 7시에 퇴근하는 강행군이다. 물론 휴일이나 연휴도 없다. 근무가 없는 날이 바로 쉬는 날이다.
명절 때는 어떻게 하는지 물었다. 최씨는 "일을 시작한 4년 전부터 명절 때 쉬어본 적이 없다"며 "학생이 한 명이라도 기숙사에 남아 있으면 우리도 남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답했다.
명절 때는 학생들이 몇 명이나 남아 있을까? 최씨는 "보통 50명 정도 남아 있는데 대부분 표를 구하지 못하거나, 공부하느라 남는 학생들"이라며 "이런 학생들을 보면 안쓰러워 집에서 김밥이나 과일을 싸와 같이 먹곤 한다"고 전했다.
최씨가 근무하는 성대 기숙사 '인'관의 사생은 1000여명. 상당히 많은 인원이다. 최씨는 이 모든 학생들을 알고 있을까? "한 달이면 충분하다. 한 달만 계속 보고 있으면, 이름은 잘 모르더라도 저 학생이 우리 학생인지 멀리서 봐도 딱 알 수 있다." 그래도 어떻게 1000명을 다 외우느냐고 반문하자, 최씨는 "내 자식이라 생각하면 못 외울 게 뭐 있느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두 손 꼭 잡으며 "고맙습니다" 했던 학부형, 가장 기억에 남아
24시간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기에 잊지 못할 에피소드도 많다.
"어느 날 한밤중에 한 학생이 배가 너무 아프다고 경비실로 찾아왔어. 심각하다 싶어, 근처 병원의 구급차를 불러 병원에 데리고 갔더니 급성맹장염이라는 거야. 그래서 수술할 때까지 밤새 병실을 지키고 있었지. 뒤늦게 알고 온 그 학생의 부모가 나를 보더니 두 손을 꼭 잡고 '정말 고맙다'며 눈물을 글썽이는데, 이땐 나도 정말 마음이 '짠'해지더라고."
그렇다면 최씨가 생각하는 가장 예뻐 보이는 학생과 꼴불견인 학생은 누굴까? 최씨는 예쁜 학생으로 '인사 잘하는 학생'을 꼽았다.
최씨는 "아침저녁으로 꼭 인사 잘하는 학생과 안 하는 학생이 있다"며 "내가 무슨 일을 도와줄 때 '감사합니다' 하고 공손히 인사하면 정말 내 자식보다 더 예뻐보일 때도 있다, 이런 학생들은 꼭 취업도 잘 되더라"고 말했다.
꼴불견 학생으로는 예의 없는 학생을 꼽았다. "경비라는 선입견으로 무시하는 학생들이 종종 있다"며 "이런 학생들은 나뿐 아니라 식당 아주머니에게도 인사도 잘 안 하고, 뭘 부탁할 때도 명령식으로 하는데 이건 정말 예의 문제"라며 서운함을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최씨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전했다.
"요즘 대학생들은 공부를 많이 안 하는 것 같아. 술도 많이 먹고, 학생신분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모습을 보면 내 마음이 아플 정도야.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공부 열심히 해서, 기숙사를 거쳐 가는 모든 학생들이 훌륭하게 성공했으면 좋겠어. 이게 내가 학생들에게 바라는 거여."
'안티'마저 감동시키는 식당 아주머니
기숙사 식당과 다른 교내 식당의 차이점은? 정답은 기숙사 식당은 연중무휴라는 것이다. 교내 식당은 주말에 쉬는 경우가 많은데, 기숙사 식당은 쉼 없이 양질의 식사를 항상 학생들에게 제공한다.
이렇게 무한공급이 가능한 이유는 주말도, 휴일도 개의치 않고 출근해 밥을 차려주시는 '어머니' 같은 식당 아주머니들이 있기 때문이다. 식당의 최고참이라는 이금순(53)씨는 "휴일도 나와서 일하는 게 힘들기도 하지만, 항상 젊은 학생들을 보니 힘도 나고 젊게 사는 것 같아 좋다"고 말했다.
이어 "매일 보는 학생들이기 때문에 최대한 친절하게 잘해주려고 하는데, 친해진 학생들은 벌써 '어머니', '이모'하면서 자식같이 잘 따른다"며 "나와 편지를 주고받는 학생들도 있고, 졸업 후 취업해서 과일 사들고 찾아오는 학생도 많다"고 전했다.
이씨가 배식을 해주며 학생들에게 자주 해주는 말은 뭘까. "잘 먹어라, 맛있게 먹어라, 어제는 왜 안 먹으러 왔니, 먹고 싶으면 더 달라고 해라지 뭐." 필자는 마지막 말을 들으며 궁금해졌다. 정해진 반찬량이 있는데, 어떻게 더 줄 수 있단 말인가.
이에 대해 이씨는 "더 주는 게 문제가 있을 순 있지만, 자식 같은 학생들이 더 먹겠다는 데 어떻게 안 줄 수 있겠느냐"며 포근한 미소를 지었다. 이씨는 "1인당 한 장씩인 돈가스의 경우 한 장 더 달라는 학생이 꼭 있지만, 이땐 더 주면 마지막에는 반찬이 분명 모자라기 때문에 다른 반찬으로 얼른 대체한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이씨는 충격적인 사실을 하나 전했다. 식당 아주머니들에게도 '안티'가 있다는 것.
"안티까지는 아니고 이상하게 식당에만 오면 반찬이 맛이 없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식판도 한손으로 들고, 인사도 안 하는 학생이 몇 명 있더라고요. 처음에는 우리도 불쾌했지만, 이런 학생일수록 더 잘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더 살갑게 대했죠. 그러자 금방 고쳐지더라고요. 이젠 항상 웃는 얼굴로 서로 인사하고 그래요."
이 에피소드를 들으면서 '안티도 감동시켜 팬으로 만들겠다'던 한 연예인의 말이 떠올랐다. '안티'를 감동시킨 친절함의 주인공인 식당아주머니들은 이구동성으로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식당에 오는 모든 학생들에게 잘해주고 싶은데, 많은 학생들이 이용하다 보니 다 잘해주지 못하는 게 참 아쉬워요. 집에서 엄마가 차려주는 밥만큼은 아니어도 엄마의 마음으로 열심히 맛있는 밥 해줄 테니, 꼭 이것만은 부탁드려요. 절대 식사는 거르지 말아요!"
'기숙사 부모님'에 대한 학생들의 사랑도 각별하다. 기숙사생 장인성(화학공학과 3학년)씨는 "대학생들은 쉬는 날이 많지만, 이 분들은 쉬는 날도 없이 일하신다"고 안타까워한 뒤 "이 분들이 고생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편한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다"며 고마워했다.
민동국(유전공학과 3학년)씨는 "우리가 신경 쓰지 못하는 부분까지 경비 아저씨와 식당 아주머니께서 다 챙겨주신다"면서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써주시는 모습이 마치 부모님 같다"고 전했다.
어머니의 따스한 밥이 그리운, 아버지의 넓은 마음이 그리운 학생들에게 이들은 어머니가 되어주고 아버지가 되어준다. 자식이 잘 되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으로 기숙사생 1000명의 부모가 되어주는 이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빛나는 조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