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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인슈타인의 베일>
ⓒ 승산
아인슈타인이 물리학계에 남긴 업적은 어떤 것일까? 이런 질문 자체가 어쩌면 별 의미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현대 물리학의 두 축은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다.

이 두개의 이론은 모두 아인슈타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현대 물리학의 출발점을 아인슈타인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아인슈타인하면 떠오르는 것은 상대성이론이다. 아인슈타인은 1915년에 발표한 일반상대성이론을 통해서 중력에 대한 획기적인 관점을 제시했다.

중력은 단지 고정된 시공의 배경에서 작용하는 힘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중력이란 물질과 에너지에 의해서 발생된 시공의 왜곡 자체라고 보았다.

여기에서부터 시공이 뒤틀려 있다는 혁명적인 발상이 나왔다. 아인슈타인은 모든 물질을 둘러싼 시공은 조금씩 뒤틀려 있다는 주장을 했다. 단지 일상생활에서는 그 뒤틀림이 미미하기 때문에 일반인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덧붙여서 아인슈타인은 태양과 같이 큰 물질의 주변에서는 그 시공의 왜곡을 입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이 이론을 발표할 당시에 관찰이나 실험을 통해서 입증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아인슈타인의 직관에 의하면 시공은 조금씩 왜곡되어 있어야 정상인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이 이론은 1919년에 관찰을 통해서 입증된다. 영국의 천문학자가 이를 밝혀낸 것이다. 태양의 뒤쪽에 있는 별에서 오는 빛이, 태양의 중력 때문에 휘어져서 지구에 도착한다는 사실이다. 즉 태양에 가려서 보이지 않아야 할 별이, 태양 주위 시공의 휘어짐 때문에 우리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이 관찰을 통해서 시공은 물질과 에너지에 의해서 휘어져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빛은 직진하지 않고 구부러진다. 아인슈타인의 직관이 이루어낸 위대한 승리였다.

▲ 태양의 중력 때문에 주위 시공이 휘어져있다. 따라서 그 뒤쪽 별에서 나오는 빛도 휘어진다. 실제로는 A 지점에 있는 별이, 마치 B 지점에 있는 것 처럼 보인다.
ⓒ 김준희
또한 아인슈타인은 광전효과이론을 통해서 양자역학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하지만 아니러니 하게도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을 매우 싫어했고 죽을 때까지 양자역학을 의심했다.

양자역학이라는 것은 간단하게 말해서 마이크로 물질의 성질이나 운동을 연구하는 물리학의 한 분야이다. '양자'라는 것은 마이크로 세계의 최소 단위이다. 이런 마이크로 세계에는 고전적인 물리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마이크로 입자의 움직임은 멋 대로고 물리 법칙을 통해서 그 움직임을 예측할 수 없다. 예측 뿐 아니라 정확하게 측정하기도 어렵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에 의하면,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양자역학이 현대과학에 기여한 바는 엄청나다. 레이저, 광통신을 비롯해서 컴퓨터, 반도체, 휴대폰 등은 모두 양자역학의 산물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거의 모든 전자제품은 양자역학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실생활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양자역학을 왜 불신했을까? 그것은 양자역학이 가지고 있는 우연과 불확정성, 확률의 개념을 아인슈타인이 싫어했기 때문이다. 양자역학의 세계에는 결정론과 인과율이 적용되지 않는다. 뉴턴이 살아있었다면 아마도 맹렬하게 양자역학을 공격했을 것이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이는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을 불신하면서 했던 유명한 말이다. 이에 대해서 양자역학의 대가인 닐스 보어는 전능하신 신께 지시를 내리는 일을 그만하라고 응수하기도 했다.

빈 대학의 물리학 교수인 안톤 차일링거의 <아인슈타인의 베일>은 이런 양자역학에 관한 책이다. 언뜻 생소해 보이는 양자역학이라는 분야를, 그림과 이야기를 곁들여서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는 양자역학의 역사에 등장했던 수많은 가설과 이론, 논쟁과 역설을 풍부하게 포함하고 있다.

안톤 차일링거는 양자역학의 발단이 된 빛의 수수께끼부터 책을 시작한다.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입자의 성질과 파동의 성질을 모두 가지고 있는 빛. 바로 이 빛의 수수께끼를 연구해온 역사는 양자역학의 역사나 마찬가지다.

오래 전부터 빛이 입자인지 파동인지에 관한 논쟁은 계속되어 왔다. 하지만 영국의 뉴턴이 빛의 입자설을 지지하면서부터 빛의 실체는 입자인 것으로 굳어져왔다. 이에 대한 획기적인 반론이 나온 것은 19세기 초, 그 주인공은 영국의 의사 토머스 영이었다. 영은 그 유명한 '이중 슬릿' 실험을 통해서 빛이 간섭무늬를 만든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간섭은 파동에만 있는 현상으로 입자에서는 결코 볼 수 없다.

하지만 영의 이 실험결과는 당시 물리학자들의 강력한 반발을 받았다. 그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뉴턴의 권위에 상처를 입히려는 행위라는 이유였고, 다른 하나는 영이 물리학자가 아닌 의사라는 점이었다. 회의에 빠진 영은 두 번 다시 빛에 관한 연구를 하지 않았지만, 빛의 파동설은 서서히 물리학자들에게 스며들고 있었다.

그리고 파동설에게 승리를 안겨준 결정타는 맥스웰에게서 나왔다. 전자기학 이론을 만든 영국의 맥스웰은 전자기파의 속도가 빛의 속도와 같다는 것을 밝혀냈다. 거기에다 빛과 전자파는 모든 면에서 성질이 일치했다. 맥스웰에 의하면 빛은 전자파다. 빛은 전기와 자기가 서로 번갈아 발생하면서 전해지는 파동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여기에서 아인슈타인이 등장한다. 아인슈타인은 광전효과를 조사하면서 빛은 입자의 성질도 함께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아인슈타인은 이 빛 입자를 '광양자' 후에는 '광자'라고 불렀다. 이 광양자 가설도 처음에는 다른 학자들의 많은 반론에 부딪쳤다. 하지만 1916년에 아인슈타인의 가설이 증명되었다. 이제 빛은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이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도전한 사람들이 바로 양자역학자들이다.

<아인슈타인의 베일>은 이런 양자역학의 역사와 다양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 파동 방정식을 만든 슈뢰딩거,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을 확률해석의 문제로 바꾼 막스 보른, 아인슈타인과 격렬한 논쟁을 벌인 끝에 물리학계를 양분시킨 닐스 보어. 아인슈타인과 보어는 학문의 문제에서는 완전히 다른 가치관을 가진 당사자들이지만, 서로에 대한 존경과 애정은 일생동안 변함이 없었다.

현대 첨단산업의 기초임에도 불구하고, 양자역학이라는 것은 분명 일반인들에게 익숙한 분야가 아니다. 이것은 양자역학이 수학적으로 어렵기 때문이 아니다. 양자역학에도 많은 수식이 등장한다. 이 수식을 적용해서 일반적인 답을 이끌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양자역학의 어려움은 바로 그 수식의 의미를 파악하려고 시도할 때이다. 양자역학의 세계는 우리가 가진 상식과는 다른 세계이기 때문이다. 양자역학에서는 확실성 대신에 불확정성이, 인과율 대신에 확률이 적용된다. 그리고 객관적인 세계가 아니라, 관측 여부에 따라서 달라지는 물질이 존재한다. 이에 대해서 아인슈타인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달도 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가?"

양자역학의 중요성은 현대 첨단산업의 기초가 되었다는 점뿐만이 아니다. 양자역학은 세계관과 사물을 보는 사람들의 생각 자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인간은 자연을 이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다다른다. 양자역학이 다루는 마이크로의 세계에 인과율과 확실성이 적용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우리는 세계를 이해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피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은 매크로의 세계다. 매크로의 세계에서 양자역학의 원리는 무시해도 좋을 만큼 작다. 뉴턴의 인과율이 적용되는 일상의 세계에 젖어있기 때문에, 양자역학의 세계관을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어쩌면 아인슈타인이 범한 오류도 이런 것 아닐까.

아인슈타인은 평생 양자역학을 불신했지만, 만일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을 받아들였다면 이후의 물리학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았을까. 물론 이것은 알 수 없는 일이다. 물리학자들은 자연의 현상을 규명하기 위해서 애를 쓰지만,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면 다른 문제가 또 앞을 가로 막는다. 과학 그 자체가 어쩌면 끝이 없는 이야기 일수도 있다. 닐스 보어는 이런 말을 남겼다.

"자연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알아내는 것이 물리학의 과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류이다. 물리학의 과제는 오히려 자연에 대해서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안톤 차일링거 지음 / 전대호 옮김. 승산 펴냄.


아인슈타인의 베일 - 양자물리학의 새로운 세계

안톤 차일링거 지음, 전대호 옮김, 승산(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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