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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맹이가 꽉 찬 홍합
알맹이가 꽉 찬 홍합 ⓒ 김대갑
홍합은 참 재미있는 생물이다. 패류의 일종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모래펄이나 뻘 속에 숨어 있는 게 아니라 파도가 왔다갔다하는 경계지점에 둥지를 틀고 있다.

@BRI@보통 수심 20m 정도의 조간대에 서식하며 족사라는 섬유질을 바위에 단단히 붙이고 산다. 그래서 파도가 아무리 세게 쳐도 보란 듯이 바위에 붙어 있다. 이런 강한 생명력 덕분인지 자연산 홍합의 살덩이는 무척 탄력 있다. 족사 부근의 살은 흡사 고무의 탄성을 지닌 양 잘 씹히지도 않는다.

구포장에 우연히 들렀다가 자연산 홍합을 파는 할머니를 발견하게 되었다. 흥미롭게 구경하다가 내친김에 8마리를 사게 되었다. 그런데 8개라도 꽤 묵직한 것이 양식장 홍합과는 그 무게감이 달랐다. 껍질도 양식장보다 배나 두꺼웠고, 따개비가 군데군데 붙어 있었다. 100% 자연산임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아내가 홍합을 정성들여 잘 씻은 후, 냄비에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덤으로 양파와 땡초, 파 등 속을 넣었다. 10분이 지나지 않아 물이 끓어오르면서 신선한 바다향이 부엌과 거실에 가득 찼다. 향긋한 해풍이 살랑 불어왔고, 푸른 바다 위를 날던 큰기러기들의 울음소리가 아스라이 배어 나왔다. 파도가 '솨아' 하며 부딪혔고, 햇살이 땡글땡글하게 내려오기도 했다.

널부러진 홍합의 나신
널부러진 홍합의 나신 ⓒ 김대갑
어찌 이리도 살덩이가 꽉 차 있을까. 껍질이 벌어지면서 부끄러운 듯한 모습으로 나신을 보여주는 담채의 붉은 속살! 노오랗게 물이 오른 것도 있고, 처녀의 홍조을 닮은 것도 있다.

손으로 속살 한 덩이를 통째로 집어 드니 묵직한 쾌감이 손마디에 전해져 온다. 한 입 베어 물으니 입 안에서 쪽빛 물결이 넘실거렸다. 팍팍하지도, 텁텁하지도 않은 상큼한 육향을 오래도록 음미한 후 담채국물을 그릇 째로 들이마셨다. 한 마디로 끝내주는 국물 맛! 입 안에 개운하게 밀려오는 푸른 해초의 맑은 꿈!

한국어만큼 표현이 풍부한 언어는 별로 없을 것이다. 또한 역설적인 상황을 기막히게 표현하는 언어도 없을 것이다. 뜨겁고 김이 나는 국물을 마시면서 시원하다고 느끼는 감수성은 그 얼마나 우수한가.

뜨거운 복국이나 콩나물국, 홍합 국물을 마시면서 시원하다고 표현하는 정서는 우리의 풍부한 감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개운하면서 뒤끝 없는 맛, 담박하면서도 깔끔한 맛. 그런 맛을 우리는 시원하다는 단 한 마디로 표현하는 것이다.

홍합의 속살과 국물의 만남
홍합의 속살과 국물의 만남 ⓒ 김대갑
그런데 자연산 홍합의 시원한 맛은 시원하다는 표현으로도 모자랄 정도였다. 그래서 광고에서 나온 표현을 잠시 차용하여 '끝내주는 맛'이었다고 덧붙여야겠다. 정말 국물이 끝내줬다. 자연산 홍합의 탱탱한 육향과 끝내주면서도 시원한 국물 맛에 소주 1병이 금세 동나고 말았다. 다음 장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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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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