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8일 6자회담을 앞두고 회담 결과에 대해 초미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이번 회담의 핵심 당사자인 북미 양측이 베를린 양자회담 및 베이징 금융회담 등을 통해 일정 정도 신뢰를 회복한 이후 열리는 것이어서 어느 때보다 회담 성과에 대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길게는 2003년 8월 6자회담 개시 이후, 짧게는 2005년 9월 공동성명 채택 이후, 처음으로 핵폐기와 이에 대한 상응조치를 본격적으로 논의하는 협상다운 협상이 열리기 때문이다.
@BRI@그러나 회담의 전망이 밝은 것만은 아니다. 북미 양측, 특히 '악의적인 무시'로 일관했던 부시 행정부의 협상 의지가 어느 때보다 높다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측면이지만, 북핵 문제 및 이를 해결하기 위한 상응조치에는 대단히 복잡하고 어려운 정치적, 기술적 문제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듯 한미일 3국은 북한의 핵포기 초기 이행 조치로 영변 핵시설의 '폐쇄'를 요구한다는 방침인 반면에, 북한이 요구해온 경수로 제공은 북핵 문제가 해결되고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복귀한 이후에나 논의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반해 북한은 폐쇄는 나중 일이고 일단 '동결'하되 이에 대한 상당한 수준의 상응조치를 요구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해 <워싱턴포스트>는 6일자 신문에서, 지난주 평양을 방문해 김계관 부상을 만나고 돌아온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과학국제안보연구소 소장 등의 말을 인용해, 북한이 동결의 대가로 ▲중유 제공 ▲금융제재 해제 ▲경수로 사업에 대한 국제적 보장 ▲북미관계 정상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협상 초기에 많은 것을 요구하고 적게 내놓은 뒤 협상 과정을 통해 서로의 요구 사항이 조정되는 것이 관례라곤 하지만, 합의 도달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있을 것이라는 점을 예고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크리스토퍼 힐의 우려... 북한의 '동결' 고집 이유
일단 관심의 초점은 북한이 핵포기와 관련해 어느 정도의 초기 이행 조치에 합의해주느냐에 있다. 이와 관련해 최소한의 수준은 북한이 영변 5MWe 원자로를 동결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시단의 상주를 허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은 이 정도 수준에 만족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2002년 11월 미국의 중유 제공 중단 조치 직후에 IAEA 감시단을 추방하고 원자로 재가동에 들어갔던 것처럼, 북한이 또 다시 이러한 전철을 다시 밟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과의 협상 자체에 불만을 갖고 있는 미국의 강경파들에게 반격의 빌미를 줄 수 있다. 9.19 공동성명 채택 직후 때처럼 말이다.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 역시 이를 경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대 수준이 높아질 경우 실망도 커질 수 있다는 일반론 이외에도 힐 차관보 스스로가 9.19 공동성명 채택 직후 강경파의 반격에 시달렸던 뼈아픈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힐은 북한의 완전한 핵폐기가 목표이지만, 이번 회담에서 기대 수준을 너무 높게 잡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역자사지의 관점에서 볼 때, 북한이 영변의 일부 핵시설에 대한 동결 및 IAEA 감시 허용 수준을 초기 이행 조치로 고집하고 있는 것도 이해가 안가는 것은 아니다. 만약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재가동이 가능한 동결이 아니라 사용불능 조치를 의미하는 폐쇄를 할 경우 미국 등 관련국의 약속 이행을 유도할 수 있는 지렛대가 약해질 뿐만 아니라, 미국이 북한의 불성실한 이행을 이유로 자신의 약속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 대한 대비책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5MWe 원자로를 사용불능 조치를 취할 경우 이를 되돌리기는 대단히 어렵지만, 미국 등 관련국이 중유 제공 중단 조치를 취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근본적으로 북한의 핵포기 조치와 이에 대한 상응조치 사이에는 이처럼 불일치가 존재한다. 북한이 구체적인 핵포기 조치에 앞서 가능한 많은 것을 받아내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6자회담 협상이 더욱 어려운 이유는 핵심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의 불신 때문이기도 하다. 서로를 믿지 못하면 상대방의 약속 이행을 강제할 수 있는 지렛대를 원하게 된다. 미국에게는 중유 제공이 유력한 카드가 될 것이고, 북한은 영변 핵시설 '동결'을 그 카드로 삼으려 할 것이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인가, '시작이 반'인가
따라서 문제 해결의 접근법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낮은 수준의 합의와 이행을 통해 신뢰를 구축함으로써 보다 어렵고 근본적인 문제를 풀어 가는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방식이다. 예를 들어 초기 이행 조치로 북한이 5MWe 원자로를 동결하고, IAEA 감시단을 수용하는 대신에 미국 등이 중유를 제공하는 것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접근법은 여러 가지 단점을 갖고 있다. 우선 한미일 3국은 중유를 제공하기에는 북한의 핵포기 조치가 너무 미흡하다고 생각할 것이고, 북한 역시 동결의 대가로 중유 제공 정도로 만족할 가능성이 낮다. 또한 차근차근 하나씩 풀어간다는 장점이 있지만 문제 해결까지는 상당한 시간을 요한다는 문제점이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미국 강경파의 불만이 거세게 제기되면서 힐 차관보 등 협상파들의 입지가 다시 좁아질 위험성이 있다.
다른 하나는 비교적 높은 수준의 합의를 통해 조속한 해결을 모색하는 '시작이 반'인 접근 방식이다. 즉, 초기 이행 단계부터 '크게 주고 크게 받는' 대담하고 조속한 문제 해결 방식이다.
구체적으로 북한은 추가적으로 플루토늄을 만들 수 있는 모든 핵시설의 사용 불능 조치를 취하는데 동의한다. 여기에는 5MWe 원자로뿐만 아니라 핵연료봉 제조 및 재처리 시설, 그리고 공사 재개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진 50MWe 원자로도 포함되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북한은 추가적으로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없게 된다.
북한이 이 정도의 양보를 하기 위해서는 이에 걸맞은 상응조치가 제시되어야 한다. 미국 등 관련국은 중유 제공과 금융제재 해제뿐만 아니라 경수로 사업 보장, 테러지원국 해제, 인도적 지원의 재개, 평화협정 및 북미·북일수교 협상 개시 등 북한의 요구사항 대부분을 이행하거나 협의를 시작해야 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법은 북한의 핵능력 증강을 불가역적으로 제한하고, 북한 역시 극심한 경제난을 해소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매력을 지닌다. 무엇보다도 북핵 문제 및 북미간 적대관계의 조속한 해결이 가능해질 수 있다.
물론 북미관계의 현주소와 경수로 사업을 둘러싼 근본적인 인식 차이를 고려할 때, 이번 회담에서 이와 같은 통큰 합의를 기대하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이러한 타협안을 진지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부시 대통령은 임기 내에 북핵 문제 해결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북한은 경제난 해소가 시급한 상황이다. '크게 주고 크게 받자'는 포괄적 일괄타결의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6자 외무장관 회담 고려해야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이번 6자회담 이후의 상황을 관리하는 것이다. 2005년 9월 19일 공동성명 채택 직후 오히려 상황이 악화된 사례가 반복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6자회담이 끝난 직후에 정치적 신뢰관계를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강구될 필요가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이번 회담 합의문에 '0월 0일에 6자 외무장관 회담을 개최한다'는 조항을 포함시키는 것이다. 혹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6자 외무장관을 초청해 회담을 갖게 하는 방식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