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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태 <모정리 일기>
임영태 <모정리 일기> ⓒ 운향
<모정리 일기>의 작가 임영태는 공고를 졸업한 세 젊은이의 방황을 그린 <우리는 사람이 아니었어>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작가다. 공고 졸업 후 사회의 주류계급에 속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심리를 쓸쓸하게 그려낸 작품으로, 소박하고 진솔한 소설을 찾아다니는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 소설을 읽었을 때의 신선함, 쓸쓸하게 떨려오던 마음을 지금도 기억한다. 사회의 주류에 속하지 못한다는 것을 선명하게 자각하며 살아가는 비주류 젊은이들의 마음. 중심에 대한 갈망, 그리고 중심이 아닌 것들에 당연한 듯 분배되는 각종차별기제들, 처음부터 불가능한 수많은 소망들. 이는 사실 가계각층에 속한 우리 모두가 매일매일 느끼는 것이리라.

작가의 쉽고 편안한 문체와 속내를 다 보여주는 것 같은 진솔함을 한번이라도 맛본 독자들은 아마도 <모정리 일기>의 출간을 쌍수를 들어 환영했을 것이다. 이 책은 작가와 작가의 부인(소설가 이서인)이 도시 생활을 접고 충북 제천으로 들어가 농촌생활을 꾸려가는 이야기이다.

...탁월한 판단이었어!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향해 축하 인사를 보냈다. 이 다소 과잉된 축하 인사 속에는 사실 십대 이후 죽 도시에서만 살아온 우리 자신에 대한 일말의 불안감이 섞여 있었다. 오지로 들어가는 건 아니지만 시골살이란 아무래도 손품, 발품이 많게 마련, 원고지 앞에서 담배 뻑뻑 펴대며 '예술적 고뇌'나 할 줄 알았지 몸으로 하는 일에 서툰 우리 부부가 과연 변화된 생활을 잘 따라잡을 수 있을지 내심 걱정되는 게 사실이었다...

뚝딱뚝딱 무얼 고치거나 만드는 손재주에 약한 작가는 염증이 난다고 도시 생활을 등지긴 했지만 내심 겁이 난다. 내가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크고 작은 집안일들을 내 손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작가가 예상했던 대로 시골살이는 녹녹치 않다. 문제는 이사 간 다음 날부터 발생한다.

...지금 우리 집 뒷마당은 쓰레기로 가득 차 있다. 이삿날 도와준 동생들과 먹은 소주병, 맥주캔, 음료캔 등이 사과 상자로 하나에, 이사 중에 버려진 각종 포장재와 깨진 그릇 등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그런데 이걸 처리할 방도가 없다. 현재까지의 쓰레기야 한꺼번에 어떻게 처리한다 치고, 앞으로 사는 동안 음식물찌꺼기 등의 생활쓰레기가 계속 나올 터인데 이걸 과연 어떻게 처리해야 되는 걸까? 슈퍼마켓에서 산 규격봉지에 온갖 것 다 담아 집 앞에 내놓고는 한 달에 얼마 쓰레기 처리비만 내면 되던 도시 생활의 관념으로는 도무지 어떤 대책도 떠오르지 않는다...

쓰레기로 시작해서 보일러 문제, 이웃들과 품앗이 후 품삯문제, 서울나들이 후의 귀가 문제, 농작물 수확시간과 글 쓰는 시간사이의 분배 문제 등 이 작가 부부에겐 예상했던 것 보다 더 많은 문제들이 발생한다. 그리고 도시의 편리함과 익명성에 익숙해있던 이들의 도시성이 하나하나 해체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독자는 대리체험을 하는 듯, 해보지 않은 시골살이를 생생하게 느끼게 된다. 아하, 시골에 살면 이렇겠구나.

완전 농사꾼이 아닌 '어설픈 농사꾼'

이 책의 미덕은 '솔직담백함'이다. 작가는 스스로를 농사꾼으로 정의하지도 않고, 시골살이를 너무 이상적으로 그리지도 않는다. 쓰레기 때문에 골머리를 앓으면서 도시의 간편한 종량제봉투를 절실하게 그리워하기도 하고, 글 쓸 시간이 확보하기 위해 과감하게 고추수확을 포기해버리기도 한다.

@BRI@완전 농사꾼이 아닌 '어설픈 농사꾼'임을 스스로 인정하며 글을 풀어나가는 것이다. 귀농을 꿈꾸고 있는 이들에게야 조금 안타까워보일지도 모르겠으나 태어나 살아본 집이라고는 오로지 아파트밖에 없는 나 같은 성냥갑표 독자들에게는 이보다 더 맛깔스러운 책이 있을 수 없다!

누군들 이 안타까운 서울을 떠나고 싶지 아니하랴. 한강변을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는, 군사기지를 방불케 하는 아파트군단을 보고 있으면 누군들 한숨을 쉬지 않겠는가. 자고 일어나면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서울의 하늘은 점점 고층아파트들로 채워지고 있다.

앞으로 이십년 후면 서울은 완전히 아파트로만 채워져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때쯤이면 대한민국 모두가 다 수도권에 살고 있지 않을까. 바야흐로 대한민국은 서울공화국으로 변신해가고 있다. 문제는 서울을 떠나고 싶어도, 서울을 떠난 삶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미 모든 문화적, 경제적 기반이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어 서울을 떠난다면 삶에서 누릴 수 있는 문화적 기쁨에 대한 전면포기를 감수해야 한다. 문화적 생활의 향유란, 전원생활의 기쁨 못지않은 것임을 감안할 때 결국 서울을 떠나고 싶다는 갈망은 그저 갈망으로 마무리되기 일쑤다.

작가 임영태와 이서인 부부는 현재 제천에서의 몇 년 생활을 접고 서울로 돌아와 서교동 근처에서 출판사업을 시작했다. 그들이 다시 돌아오게 된 데는 경제적, 문화적, 지인들과의 거리문제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부부가 제천에서 보냈던 세월은 가슴에 두고두고 남아, 도시 생활을 견뎌가는 데 하나의 풋풋한 지지기반이 될 것이다. 그들의 시골살이를 살짝 훔쳐보기만 한 내게도 그런 것처럼.

모정리 일기

임영태 지음, 운향(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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