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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도 씻김굿
ⓒ 김수남
씻김굿을 하는 늙은 당골이 희고 긴 고를 푸는 몸짓, 죽은 자의 옷과 짚으로 초매장한 것을 등에 메고 하염없이 바다를 향해 서 있는 심방의 뒷모습, 새롭게 태어난 만신이 넋을 뺀 채 바닥에 누워 상쇄를 흔드는 모습. 무아경이다.

@BRI@이들의 모습을 앵글 속에 담은 이는 지난해 태국 치앙라이의 소수민족, 리수족의 신년맞이 축제를 취재하다 뇌출혈로 쓰러져 끝내 일어서지 못한 고 김수남 작가다. 생전에 “삶과 죽음, 고통과 환희, 좌절과 희망, 이런 것들을 가장 극렬하고 감동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굿판”이라고 말했던 작가의 1주기를 맞아 추모전 '김수남의 사진굿'(2.7~2.20, 인사아트센터)이 열렸다.

김수남은 새마을운동과 함께 근대화 과정 속에서 사라지고 무너져 내린 우리의 민속을 기록해왔다. 특히 미신타파라는 명목으로 한 때 금지되기까지 했던 굿의 진정성에 이끌려 전국 30여 곳의 굿판을 쫒아다니며 생소하면서도 정감 넘치는 현장을 카메라에 담아왔다.

그와 인연이 깊은 김인회 전 연세대 교수는 “김수남은 만나는 사람들 속에 숨어 있는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는 눈을 지닌 큰무당”이라면서 “방울과 부채 대신에 사진기를 들고서 사람들과 만나고, 공수를 내리는 대신에 셔터를 눌러서 자기가 본 것을 형상화하는 사람”이라고 고인을 회고했다.

▲ 수용표 수망굿
ⓒ 김수남
지난해 이맘때쯤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작가 스스로 “사진이 그림과 음악, 문자보다 강한 메시지를 주는 이유가 ‘기록성’ 때문”이라고 얘기했듯 그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기록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뛰어나다.

1983년부터 1993년까지 인류학, 국문학, 민속학, 종교학 등 여러 분야의 학자들과 공동 작업으로 펴낸 그의 다큐멘터리 사진집 <한국의 굿>(열화당) 시리즈는 한국의 굿에 대한 귀한 현장 자료로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도서로 영역되어 소개되기도 했다.

또한 작가는 1990년부터 중국, 인도, 네팔, 미얀마, 베트남, 스리랑카의 오지를 찾아다니며 아시아 소수민족의 전통문화를 담기도 했다. 그는 서구의 꺼풀에 가려져 스러져가고 있는 그들만의 문명이나 문화를 예인을 통해, 그들의 삶과 환경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했다.

이번 전시에는 한국의 굿과 말레이시아, 베트남, 일본 등 아시아의 전통문화, 소리 광대 등의 예인들로부터 농어촌에서 노동의 고통을 소리와 춤으로 버텨온 민중들의 모습까지 담은 사진 110점이 전시된다. 특히 전통복장을 한 태국 리수족 소녀가 밝게 웃고 있는 고인의 마지막 작품도 함께 만날 수 있다.

▲ 김금화 만신이 고 김수남 작가를 위한 진오기굿을 펼치고 있다.
ⓒ 컬처뉴스
한편 7일 개막일 전시장에서는 고 김수남의 넋을 위로하고 명복을 기원하는 김금화 만신의 진오기굿이 펼쳐졌다. 추모객들로 그야말로 발 한짝 뗄수 없을 정도로 가득찬 굿판은 김금화 만신의 뜨거운 움직임과 그를 지켜보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열띤 날숨에 금세 들떠올랐다. 특히나 “헌 옷 벗고 새 옷 받아가요!”라고 외치며 시작된 ‘맑은 혼 맞기’가 진행될 때는 행사장 여기저기서 눈물을 흘리는 추모객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김금화 만신의 황해도 진오기굿을 비롯 서순실, 이귀인, 이상순 만신들이 펼치는 제주, 전남, 서울의 넋 굿도 만날 수 있다. 생전에 그와 돈독한 관계를 맺어온 만신들이 자발적으로 연일 넋 굿을 펼치는 것이다. 또한 김운선의 승무와 도살풀이춤, 지성자의 가야금 연주, 이애주의 넋살풀이춤도 벌어진다. 전시와 더불어 출간된 소장본 도록과 <김수남 대표작 선집>(현암사)은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다. 문의 02-736-1020.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컬처뉴스>(http://www.culturenews.net)에서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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