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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은 비구름에 가려 몽유도원도를 보는 듯 합니다.
지리산은 비구름에 가려 몽유도원도를 보는 듯 합니다. ⓒ 조태용
겨울비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봄비라고 해야 할까요? 지리산 깊은 골 피아골에 비가 내립니다. 새벽부터 내리던 비는 그치지 않고 이 골짜기 저 골짜기 가리지 않고 촉촉하게 적셔 줍니다. 겨우내 겨우 목숨만 유지하면서 졸졸 흐르던 계곡도 가쁨 숨을 내쉬면 섬진강으로 흘러갑니다.

계곡마을 어귀, 꽃망울 매친 매화는 빗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물꽃으로 먼저 피어납니다. 지나던 아주머니는 "요 매실은 토종이라 알이 작아서 상품성이 없어" "요즘 사람들은 큰 것 좋아하잖아" 말을 화두처럼 건네며 가던 길을 가십니다.

아주머니 말씀처럼 토종 매실은 알이 작다는 이유로 최근에 계량 종 매실이 주로 심어지고 토종 매실은 점점 자리를 잃고 있습니다. 토종이 사라지는 것이 어디 매실뿐이겠습니까?

세월이 바뀌면 생각도 바뀌고 생각이 바뀌니 과거는 고루하고 개혁해야 할 대상으로만 보여 좋은 것들도 낡았다는 이유로 사라집니다. 오히려 엉뚱하게 못 된 것들이 새 옷을 입고 나와서 새것인 것처럼 현혹하기도 합니다.

꽃망울 매친 매화는 빗방울이 송송글 맺혀 물꽃으로 먼저 피어납니다.
꽃망울 매친 매화는 빗방울이 송송글 맺혀 물꽃으로 먼저 피어납니다. ⓒ 조태용
경제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토종이 사라지는 것은 수확량과 모양이 작은 토종매실을 수확량과 크기가 큰 개량종 매실로 농장으로 개발시킨 것입니다. 아마 자본주의가 만든 최고의 히트 상품이 '개발'일 것입니다.

웬만한 일도 개발이라는 말이 붙으면 엄청난 힘을 발휘하면서 사람들을 현혹합니다. 개발과 함께 따라다니는 절친한 친구가 있는데 그 녀석이 바로 돈이죠. 개발은 곧 돈이 되기에 누구라도 감내해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새만금 갯벌도 개발과 돈이라는 단어에 현혹되어 굴복하고 복종하게 된 것입니다. 부동산 투기 열풍이나, 한때 '묻지마 투자'를 유행시킨 코스닥 열풍을 보면 웬만한 소박한 사람들도 돈 앞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 주식 모르고 부동산 투기 모르는 사람 있겠습니까?

피아골에서 섬진강으로 흘러가는 계곡을 따라 내려오니 조그마한 마을들이 줄줄이 이어져 있습니다. 산마을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산골 마을은 고요합니다. 아마도 자본주의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바로 이런 산골에서 자립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소비가 필요 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물건을 만들어 팔아야만 유지되는 사회입니다. 누구나 다 알듯이 대량생산, 대량소비가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버팀목이지요. 그래서 소비가 필요 없는 사람만 존재하면 자본주의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지나던 아주머니는 "요 매실은 토종이라 알이 작아서 상품성이 없어""요즘 사람들은 큰 것 좋아하잖아" 말을 화두처럼 건네시며 가던 길을 가십니다.
지나던 아주머니는 "요 매실은 토종이라 알이 작아서 상품성이 없어""요즘 사람들은 큰 것 좋아하잖아" 말을 화두처럼 건네시며 가던 길을 가십니다. ⓒ 조태용
소비사회에서 벗어나는 사람만이 자본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최소한의 소비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은 시골에서 스스로 자립적으로 농사를 짓는 사람 바로 농부입니다. 농부 중에서도 소농입니다. 하지만 자본은 결코 그런 농부들을 가만두지 않지요. 단일 작목으로 대단위 농업을 하면 잘 살 수 있다고 살살 꼬드깁니다.

결국 농부들은 이 기계 저 기계를 구입하는데 보통 논농사에 필요한 장비만 구입해도 일억 정도가 됩니다. 그 기계로 품 팔면서 농사지어 기계 구입 비용과 이자 상환하다가 보면 어느새 농부는 빚더미에 몰려 파산하기에 이릅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시골에 가장 많이 나부끼는 것이 개인파산을 도와준다는 광고입니다. 여기저기 현수막에 농민들이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보이지도 않던 변호사들이 개인파산을 도와주겠다면 난리들입니다. 진작 좀 도와줬으면 개인파산 하지 않았을 텐데요.

피아골에서 섬진강으로 흘러가는 계곡을 따라 내려오니 조그마한 마을들이 줄줄이 이어져 있습니다.
피아골에서 섬진강으로 흘러가는 계곡을 따라 내려오니 조그마한 마을들이 줄줄이 이어져 있습니다. ⓒ 조태용
70평생을 땅 3천 평과 경운기 하나 소유한 농부로 다섯 자식을 대학 졸업시킨 부모님의 자랑은 돈이 많은 것이 아니라 빚이 한 푼도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단 돈 100원도 허투루 쓰시는 법이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식탁에 오르는 거의 모든 작물을 직접 키우시죠. 한 달에 한 번도 장에 가지 않은 때도 있습니다. 아버지는 10년 된 고물자전거를 여전히 타고 다닙니다. 이 "돈돈" 하는 사회에서 가난한 소농으로 빚 없이 살 수 있었던 부모님의 유일한 무기는 '소박함과 검소함'입니다.

지리산 피아골 깊은 골에 여전히 촉촉이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강물은 위를 보지 않고 아래로만 흐른다는데 아직도 위로 가고 싶은 욕심은 내리는 비를 보면서도 멈추지 않습니다.

지리산이 안개에 가려 마치 몽유도원도를 보는 듯합니다.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세상이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현실인지 꿈인지 이런저런 생각들이 빗속에 흘러 섬진강으로 흘러갑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친환경 농산물 직거래 장터 참거래농민장터(www.farmmate.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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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서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친환경 농산물 직거래 참거래농민장터(www.farmmate.com)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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