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만화영화 <태권V> 복원에 이어 <홍길동> 복원도 추진되고 있다.
만화영화 <태권V> 복원에 이어 <홍길동> 복원도 추진되고 있다. ⓒ 홈페이지 캡처
- 1967년 1월 27일 대한극장 등 전국 11개 극장에서 국내 최초 장편 만화영화 <홍길동전>이 개봉했다. 제작기간 2년, 당시 한국영화사상 최고였던 5400만원의 제작비,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동원한 큰 스케일의 음악, 개봉 6일만에 동원한 관객 12만명, 이로써 한국은 세계 다섯 번째로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든 국가가 됐다. 하지만 현재 <홍길동전> 필름은 남아있지 않다.

- 우리나라 최초의 SF만화로 1959년 연재가 시작된 <라이파이>. 1962년 총 32권으로 완결됐다. 원본이 소실돼 지금 남은 것은 12권 정도다.

- 전국에 태권도 열풍을 불러온 인기 만화영화 <로버트 태권V>. 시리즈 1탄의 필름 분실로 인해 기억 속에만 남아 있다가 2003년 영화진흥위원회 창고에서 극적으로 듀프네거티브 상태 필름이 발견되면서 디지털 작업을 거쳐 복원됐다.

- 한국 SF만화의 대표 명작인 <로버트 킹> 시리즈. 원본이 없어 복간 작업이 어려움을 겪다가, 여러 판본을 모으고, 작가가 재수정을 거친 끝에 어렵게 복간이 이뤄졌다.


우리나라 만화와 만화영화 보관 현실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상당수 작품들이 지금은 흔적도 남아있지 않다. 당시 작업에 참여했던 사람들이나 관객들이 세상을 떠나면 그런 작품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증명할 길이 없다.

왼쪽부터 박기정, 정한기 작가.
왼쪽부터 박기정, 정한기 작가. ⓒ 부천만화정보센터
신동헌 등 원로작가 4인 구술 채록

@BRI@최근 부천만화정보센터(이사장 조관제)가 '한국만화사 구술채록사업'을 시작한 이유다. 지난달 15일 신동헌(81), 정한기(78), 박기정(74), 장은주(67) 등 1세대 원로작가들을 대상으로 1차 작업에 들어갔다.

1947년 <스티브의 모험>으로 데뷔한 신동헌은 국내 최초 장편 만화영화 <홍길동전>을 연출했다. 아우인 신동우와 함께 인기 만화가, 만화영화 연출가로 이름을 날렸으며 1967년에는 신동우 원작의 <호피와 차돌바위>를 연출하기도 했다.

박기정은 1960년대 중반 당시 최고 인기 스포츠 만화였던 <도전자>의 작가다. 1956년 <공수재>를 통해 데뷔한 그는 <흰 구름 검은 구름> 등을 그렸다.

왼쪽부터 장은주 신동헌 작가.
왼쪽부터 장은주 신동헌 작가. ⓒ 부천만화정보센터
정한기는 1956년 <연합신문>에 시사만화 <허사비>를 연재하며 데뷔했다. 주요작품으로 <조랑어사>가 있다. 장은주는 1960-1970년대 한국 순정만화의 대표 작가 중 1명. 1961년 <장미의 눈물>로 데뷔했으며 <로즈마리> <새벽별의 노래> <내 사랑 마리안느> 등의 작품이 있다.

이번 구술작업은 구술자가 기억과 소장한 자료를 통해 자신의 예술과 삶을 말하고 전문연구자가 이를 채록하는 방식이다. 구술자 1인에 대해 1인의 전문연구가가 배당돼 있다.(신동헌-최석태, 정한기-한영주, 장은주-백정숙, 박기정-김종욱.)

전문연구가들은 모두 관련 분야를 전공했거나 관련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다. 필요한 구술을 받아낼 수 있도록 충분한 질문 준비를 해야 하며, 구술자의 말에 주술도 달아야 하기 때문에 전문연구자를 뽑은 것이라고 센터측은 밝혔다.

구술기록, 한국만화박물관에 보관

이들 전문 연구자들은 5회에 걸쳐 원로 만화인의 자택을 방문해 촬영, 녹취를 하며, 회당 인터뷰는 2-3시간 가량이다. 2월 말쯤 끝나며 3월에 책으로 발간, 영상물로 정리될 예정이다. 현재 80% 가량 작업이 진행됐다.

구술채록사업을 진행 중인 이용철 학예팀장은 "과거 간헐적으로 복원 사업을 해왔는데, 좀더 체계적으로 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이번 사업을 하게 된 동기를 밝혔다. 이어 "최근 '태권V'가 복원된 데 이어 '홍길동'도 복원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아주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구술 기록은 음성과 영상, 채록 문건 등으로 정리돼 한국만화박물관 아카이브 자료실에 보관되며, 향후 인터넷 자료 서비스 및 출판을 통해 연구자나 일반인이 쉽게 이용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한 번 구술에 단편 소설 한 권 분량 나와"
[인터뷰] 부천만화정보센터 이용철 학예팀장

- 이번 구술작업이 어떻게 이뤄지나. 전문연구가들이 직접 찾아간다고 들었는데.
"구술자 1인에 대해 전문연구가 1인이 할당됐다. 모두 만화평론을 하면서 책도 낸 분들이다. 김종욱씨는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 기획팀장을 맡은 분이다. 이번 구술 작업은 단지 옮겨 적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하고, 구술자 말에 주석도 달아야 하기 때문에 매우 전문성이 요구된다."

- 제일 나이가 적은 장은주 선생이 67세고, 신동헌 선생은 81세다. 모두 고령이어서 구술 작업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나이 때문에 체력적으로 힘들어하신다. 1회 구술에 2-3시간 정도 시간을 들이는데, 한 번 하고 나면 1주나 2주 정도 여유를 둔다. 또 다른 문제는 그분들의 구술에 대해 불편해하는 분들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점을 잘 고려해서 내용 선택을 하고 있다."

- 내용이 상당히 많을 텐데.
"상당히 많다. 한 번 구술에 소설책 50-60페이지 정도 되는 양이 나온다."

- 그 정도 분량이면 상당히 재미있는 내용이 많았겠다.
"특종이라고 할 만한 게 있긴 있는데… 나중에 밝히겠다.(웃음)"

- 만화와 만화영화를 보존하기 위한 작업을 하자고 한 게 1-2년 전 일이 아니다. 이 시기 갑자기 추진한 이유가 무엇인가.
"간헐적으로 계속 해왔다. 전시회나 핸드프린팅 작업을 하면서 원로작가들 영상작업을 해왔었다. 약 40분 정도 했는데, 그때는 순간적으로 한 것들이라 질문하는 사람이나 작가 분들이나 서로 준비가 안 돼 있었다. 이렇게 표피적으로 접근하는 것으로 한계가 있다고 보고 제대로 깊이 있게 들어가자고 판단했다. 구술작업을 하면 작가들의 생애사도 밝힐 수도 있겠다 싶다는 판단도 들었다."

- 앞으로 계획을 이야기해 달라.
"만화가 1세대 30여명을 인터뷰하는 게 목표다. 또한 당시 출판편집인들을 함께 인터뷰할 계획이다." / 김대홍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