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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한길 전 원내대표와 이강래, 최용규 의원이 지난 6일 오전 9시 20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열린우리당 집단 탈당을 선언한뒤 기자실을 나오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솔직해서 좋긴 하다. 논의가 소모성으로 흐를 여지를 스스로 없애줬다.

집단 탈당파의 워크숍에서 발제에 나선 이강래 의원이 대놓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훌륭한 후보감이었지만 훌륭한 대통령감은 아니었다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15가지 잘못을 열거하기도 했다. 반복적 말실수, 코드인사, 언론과의 적대적 관계, 고집·오만·독선, 정책의 일관성 부족 등등이 문제라고 했다.

열린우리당도 비판했다. '좌파정당'으로 인식된 점이 실패의 또 다른 원인이라며 그 근원을 개혁당파와 일부 기간당원들의 '좌파적 이미지'에서 찾았다.

이로써 논리구조는 완성됐다. 노무현 대통령의 존재가 문제면 그와 차별화하거나 탈당을 요구할 일이지 왜 스스로 당을 박차고 나가느냐는 지적이 삐져나을 구멍을 막아버렸다. 열린우리당도 문제라고 했다. 지붕을 새로 얹는다고 안 무너질 집이 아니라는 논리다. 그러니까 짐 싸들고 나온 행위는 정당하다는 주장이다.

솔직하다고 해서 설득력이 배가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빈 구멍이 눈에 띈다. '면피 행태'다. 당 잔류파가 그냥 넘길 리 없다. 당장 역공에 나섰다.

윤원호 의원은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했다고 아들이 집을 나가면 안 된다"며 "노무현 대통령의 공과 과를 함께 책임지는 떳떳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 원혜영 의원도 "탈당파는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책임을 면하려고 당을 떠났다"고 했다.

여당 프리미엄은 맘껏 누리더니 왜 '독박'은 쓰려고 하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비판은 날카롭고 비유는 적절하지만 그렇다고 먹혀들 것 같지는 않다. 집단탈당파의 리더격인 김한길 의원이 그랬다. "여당의 품속에 주저앉아서 편안하게 지내다가 그저 조용히 패배를 맞고, 정권을 한나라당에 진상하자는 것은 책임있는 자세가 아니다"고 했다.

집단 탈당파는 이미 작심을 했다.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는 게 진짜 책임지는 자세이니까 두고 보라고 했다. 이런 사람들에게 도의와 책임을 거론하는 건 하릴없는 짓이다.

대체 어떻게 한나라당 집권 막을 것인가

이걸 물어야 한다. 어떻게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을 것인가?

이강래 의원의 발제에 따르면 비책은 두 개다. 좌파 이미지를 씻어내고, 훌륭한 대통령감을 후보로 옹립하는 것이다. 가능할까?

초를 치는 소리가 벌써부터 들린다. 열린우리당과 다를 바 없다고 한다. 정책이 그렇다고 한다. 개헌에 대해서 반대의 뜻을 밝히고, 한미FTA에 대해 좀 더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며,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는 것을 제외하곤 열린우리당의 정책 노선 그대로라고 한다. 사립학교법이나 사법개혁안, 반값아파트 등이 그렇다고 한다. 좌파 정당을 욕하면서 왜 좌파 정책에 동조하느냐는 지적인 셈이다.

하지만 꼭 그렇게 볼 필요는 없다. 칼로 무 자르는 건 도마 위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세상사가 일도양단식으로 재단되는 건 아니다. 개헌·한미FTA·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등에서 열린우리당과 차별성을 띠려는 시도에 방점을 찍을 수도 있다.

그런데 공교롭다. 집단 탈당파가 제 색깔을 내려는 분야에 이미 특허권이 설정돼 있다. 특허권자는 한나라당이다. 개헌은 절대 반대, 한미FTA는 적극 지지, 아파트 분양원가는 일단 반대인 게 한나라당의 입장이다.

집단 탈당파는 점이지대에 서 있다. 때로는 열린우리당에, 때로는 한나라당에 경도된 정책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 그래서 불리하다.

자신들은 그것이 '통합 노선'이라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국민들은 '절충 노선' 또는 '기회주의 노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 좌파 이미지를 벗겨내려다가 좌고우면 이미지를 덮어쓸 수도 있다.

▲ 김한길 의원 등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통합신당 의원들이 지난 8일 의원회관에서 전원회의를 열었다. 이종걸 의원이 통합신당의원전원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때론 열린우리당에, 때론 한나라당에 경도된 정책 스펙트럼

집단 탈당파가 반한나라당 비열린우리당 노선을 걷기로 작정했다면 제3노선을 내놔야 한다. 훌륭한 대통령감을 후보로 옹립하는 작업도 그 맥락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기존 정치구도에 편입돼 있지 않으면서, 제3노선을 확실한 비전으로 제시할 후보다. 그 뿐인가. 말실수를 하지 않고, 코드인사 우려도 없으며, 언론과는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고집·오만·독선을 보이지 않는, 그러면서도 제3의 노선을 일관되게 집행할 후보여야 한다.

그런 후보가 있는 지조차 불분명하다. 자천타천으로 몇몇 인사의 이름이 거론되지만 그들이 제3노선을 구현할 제3후보로서 적격인지는 검증된 바가 없다. 더구나 그들이 집단 탈당파와 손을 잡으려 한다는 기미는 그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만에 하나의 가능성을 상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집단 탈당파는 최용규 의원을 원내대표로, 이종걸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선출하면서 이들의 활동시한을 3월말로 한정했다. 열린우리당의 2·14 전당대회 이후 더 많은 의원들이 합류할 길을 열어놓기 위해서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이 클 수도 있다. 열린우리당이 전당대회를 무난하게 치르면 탈당을 모색하는 의원들의 발목이 잡힌다. 그러면 집단 탈당파에 합류하는 의원은 극소화되고, 그 여파는 외부인사 영입작업에까지 미친다. 설령 제3후보감이 있더라도 쉽게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탈당파 중에서 후보감을 찾으면 제3노선은 원천무효가 되고, 집단 탈당파는 '도로 열린우리당' 또는 '한나라당 2중대'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다.

이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려면 끊임없이 열린우리당을 쳐야 한다. 특히 추가 탈당사태의 열쇠를 쥐고 있는 정치인을 집중 공략해야 한다. 정동영 전 의장과 같은 사람들이다.

이 순간 공교로운 사태가 다시 연출된다. 정동영 전 의장은 대선 주자로 나서길 원하는 사람이다. 집단 탈당파는 그의 대선 가도에 꽃을 뿌려줄 발판이다. 하지만 집단 탈당파가 살려면 제3후보를 찾아야 한다. 정동영 전 의장 같은 사람은 안 된다. '그 밥에 그 나물'로는 국민들에게 반한나라당·비열린우리당 노선을 설득할 수 없다.

처지가 어긋나고 운명이 엇갈린다. 쉬운 게 하나도 없다. 한나라당 집권 저지는 고사하고 자신들의 생존부터 챙겨야 하는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

태그:#김종배, #집단탈당파, #제3노선, #열린우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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