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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별게 다 반가울 때가 있다. 어쩌다 함께 한 술자리에서 상대가 술병을 들고 내민 손이 왼손일 때 그러하고 식사하는 자리에서 상대편이 왼손으로 수저를 집을 때가 그러하다.
"왼손잡이시네요. 저도 그래요."
그 말 한마디로 상대와 많은 교감을 나누는 사람들은 바로 '왼손잡이'로 살아가는 이들이다. 그런 자리에서 만난 왼손잡이들은 어릴 적 왼손잡이라며 구박받고 멸시받았던 세월을 잊지 않고 이야기로 풀어낸다. 처음 만난 사이지만 호흡도 잘 맞는다. 살아오면서 겪어야 했던 일들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나 또한 어느 자리고 왼손을 불쑥불쑥 내밀어 면박을 당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 땅에서 왼손잡이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투사와 같은 길인지도 모른다. 오른손잡이를 위해 만들어진 모든 질서를 견뎌내지 못하면 왼손잡이로 살아가기 힘든 게 세상이다.
오른손잡이 세상에서 왼손잡이가 설 곳은 없다
@BRI@전체 인구의 10% 정도가 왼손잡이라 하지만 세상은 그들을 배려하지 않는다. 왼손잡이를 부정의 대상으로 고정화시킨 사회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왼손잡이의 비애는 계속될 것이다. 태생적으로 타고나는 왼손잡이의 삶은 시작부터 기존 질서와 대립한다.
어린 시절 왼손으로 밥을 먹는다는 이유로 구박도 많이 받았다. 즐거운 마음으로 식사를 해도 맛있을까 말까 한 반찬을 두고 늘 면박을 당해야 하니 그 식사 시간이 즐거울 리 없었다. 오히려 밥 먹는 시간이 곤혹스러워 '아직 배가 고프지 않다'며 슬금슬금 피했던 기억이 많다.
그렇게 마음을 다친 아이가 개울로 달려나가 집어든 돌을 던지는 손도 왼손이었다. 아이가 오른손으로 돌을 던져보지만 돌은 발 앞에 떨어질 뿐이었다. 서러움에 눈물을 뚝뚝 흘리며 왼손을 돌로 찍어보지만 결국 오른손잡이는 되지 못했다.
"왼손잡이는 빨갱이여. 그러니 왼손 쓰면 안돼."
크면서 이런 말 참 많이도 들으며 자랐다. 좌익과 우익을 경험한 이들이 만들어낸 왼손잡이에 대한 편협된 생각은 단순히 어느 손잡이라는 의미보다 강한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냈다.
오른손은 착한 손이고 왼손은 나쁜 손이라는 등식은 태생적 왼손잡이를 많이도 괴롭혔다. 어찌 보면 왼손잡이 자식을 낳고 나서 입막음을 하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였다. 호된 질책과 핀잔을 수없이 들어가며 살아왔지만 단 한번도 그 아이가 받을 상처에 대해서 언급하는 이는 없었다.
오른손잡이 되기를 강요하는 부모나 교사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저마다 타고난 성질이 있다는 것 또한 존중받아야 했다. 그럼에도 오른손잡이의 사회는 철저히 왼손잡이 사회를 외면했다. 다름을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살아야 하는 왼손잡이들은 그래서 더 강해지거나 혹은 약해졌다.
남들은 모두 오른손으로
숟가락을 잡고
글씨를 쓰고
방아쇠를 당기고
악수를 하는데
왜 너만 왼손잡이냐고
윽박지르지 마라
당신도 왼손에 시계를 차고
왼손에 전화 수화기를 들고
왼손에 턱을 고인채
깊은 생각에 잠기지 않느냐
험한 길을 달려가는 버스 속에서
한 손으로 짐을 들고
또 한 손으로 손잡이를 붙들어야하듯
당신에게도 왼손이 필요하고
나에게도 오른손이 필요하다
거울을 들여다 봐라
당신은 지금 왼손으로
면도를 하고 있고
나는 지금 오른손으로
빗질을 하고 있다
- 김광규 시 '왼손잡이' 전문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왼손잡이는 누가 바보라 하지 않아도 바보가 되었다. 오른손잡이를 위해 만들어진 가위로 색종이를 자르는 일도 하지 못했고, 연필 깎는 모양이 엉성하다며 친구들에게 놀림도 많이 당했다.
고교시절엔 교련시간이 가장 싫었다. 제식훈련도 그러했지만 목총을 들고 총검술을 해야 할 때는 왼손잡이의 비애를 처절하게 느껴야 했다. 아이들과 반대 방향으로 서 있는 모습을 본 교련담당은 왼손잡이 학생에게 매질을 했다.
처음 잡아본 야구글러브는 애초 오른손잡이를 위한 운동기구였다. 글러브는 죄다 오른손잡이를 위한 것들뿐이었다. 왼손잡이가 낄 자리가 아니라는 걸 그렇게 보여주었다. 그때부터 야구라는 운동이 싫었다.
왼손잡이에 대한 정신적 육체적 폭력 멈추는 것이 '상생'
대학 강의실에 놓인 책상은 왼손잡이를 우습게 만들었다. 세상은 언제나 오른손잡이를 위한 것들뿐이었다. 왼손잡이를 위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컴퓨터 자판이 그러하고 휴대폰과 TV 리모컨도 오른손잡이를 위해 만들어졌다.
심지어 시골에 들어와 처음 낫을 샀을 때 왜 이렇게 낫이 들지 않을까 고민할 정도였다. 낫질이 서툴러 그런가 보다 했지만 그것 역시 오른손잡이를 위한 낫이었다. 주방에서 사용하는 칼 또한 오른손잡이를 위한 것들뿐이었다.
국어사전에 보면 왼손잡이는 '왼손을 오른손보다 잘 쓰는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설명은 간단 명료하다. 왼손을 잘 쓰기에 왼손잡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은 왼손잡이를 간단하고 단순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오른손잡이의 세상에서 왼손잡이는 불편한 대상을 넘은 지 오래다.
오른손잡이들이 행한 왼손잡이에 대한 사회적, 정치적 폭력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왼손은 사상적, 철학적 담론에서도 불손한 편에 속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런 일은 자행되어왔다. 오죽하면 '세계 왼손잡이의 날'까지 만들어졌겠는가.
오른손잡이 사회에서 왼손잡이에 대한 폭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 폭력이 싫으면 오른손잡이의 방식에 따르라는 식이다. 타협도 배려도 없는 일방적인 폭력이다. 이러한 폭력은 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을 바꾸라는 것과 같아 야만적이다.
왼손잡이에 대한 폭력에 앞장선 것은 유감스럽게도 이 사회와 정부다. 왼손잡이들의 불편함을 덜어주려고 노력해도 시원찮을 세상인데 모든 행동양식을 오른손잡이처럼 하라 요구한다. 몇 해 전 어느 국회의원이 왼손잡이를 위한 입법을 추진했지만 법안이 통과되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렇게 보면 국회도 공범이다. 사회적, 국가적 폭력이 그 도를 넘어섰다.
장애가 아님에도 장애를 지닌 것처럼 살아가야 하는 왼손잡이는 그래서 더 서럽다. 어느 누구 왼손잡이를 위해 편들어 주는 사람이 하나 없다. 그러니 왼손잡이를 위한 정책이 나올 리 만무하다. 왼손잡이가 오른손잡이보다 머리가 좋다는 말이나 돈을 더 잘 번다는 조사 결과, 창조적 활동을 하는 예술인이 많다는 소식들만으론 왼손잡이로 살아온 힘겨운 세월이 위로 되지 않는다.
왼손잡이는 국어사전의 표현처럼 왼손을 오른손보다 잘 쓰는 사람일 뿐이다. 이 사회가 더도 말고 그 정도만이라도 인식해주었으면 좋겠다. 그 숱한 핍박을 받고도 인권위원회에 제소 한번 하지 않은 걸 보면 왼손잡이들의 성정이 참으로 선량하다. 왼손잡이에 대한 정신적 육체적 폭력과 그에 따른 인권탄압 또한 멈춰지는 날이 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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