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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방산 정상에서 겨울 햇살을 즐기고 있는 등산객들.
벽방산 정상에서 겨울 햇살을 즐기고 있는 등산객들. ⓒ 김연옥
지난 11일 통영 벽방산으로 시산제를 겸해 정기 산행을 떠나는 산악회를 따라나섰다. 산악인들은 연초에 한 해 동안 별 탈 없이 산행을 하게 해 달라고 산신령에게 제사를 드린다. 내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그 산악회의 시산제에 참석한 이유는 나와 첫 인연을 맺은 산악회이기 때문이다.

아침 7시 35분에 마산을 출발한 우리 일행은 안정사(安靜寺, 경남 통영시 광도면 안정리) 부근 주차장에 도착하여 아침 9시께 산행을 시작하였다. 경상남도 통영시와 고성군 거류면에 걸쳐 있는 벽방산(650.3m, 碧芳山)은 그 산의 형상이 마치 가섭존자(迦葉尊者)가 바리때를 받쳐 들고 있는 것 같다 하여 바리때 발(鉢)을 써서 벽발산(碧鉢山)이라 부르기도 한다.

석가의 제자인 마하가섭. 그는 언제나 학생 때 배운 염화시중(拈華示衆)과 결부되어 떠오른다. 말을 하지 않고도 마음과 마음이 통하여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것이 그 당시에는 참 아리송한 이야기였다.

우리는 벽발산이라 부르기도 하는  벽방산 정상을 향해 걸어갔다.
우리는 벽발산이라 부르기도 하는 벽방산 정상을 향해 걸어갔다. ⓒ 김연옥
한동안 날이 가물었는데 그나마 산행 전날에 비가 좀 내렸는지 먼지가 폴폴 날리지 않아 다행스러웠다. 그리고 겨울 날씨치고 포근해서 그럴까. 앙상한 나뭇가지에서도 벌써 봄 기운이 전해지는 듯했다. 정상 가까이에는 진달래가 많았다. 산등성이를 연분홍색으로 물들여 놓을 화려한 사월을 머릿속에 그려 보는 것만도 내 마음이 설렜다.

벽방산 정상.
벽방산 정상. ⓒ 김연옥

시산제를 드리는 산악회 회원들.
시산제를 드리는 산악회 회원들. ⓒ 김연옥
벽방산 정상에 이른 시간은 10시 10분께. 시야가 탁 트여 조망이 좋다. 나는 시산제가 시작될 때까지 따스한 겨울 햇살을 즐기며 앉아 있었다.

잠시 후 산악회 회원들이 정성스레 준비한 음식으로 제사상을 차려 놓고 사뭇 엄숙한 표정으로 시산제를 드렸다. 시산제가 끝난 뒤에는 제사상에 올린 음식을 나누어 먹는 즐거움도 있다. 나는 뜨끈뜨끈한 떡을 먹으면서 한 회원이 강화도에서 직접 사 온 인삼막걸리도 몇 잔 들이켰다.

벽방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아름다운 경치.
벽방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아름다운 경치. ⓒ 김연옥
나는 통영시에서 가장 높은 벽방산과 능선으로 이어져 있는 천개산(524.5m)에도 가 보고 싶어 11시 20분께 하산을 서둘렀다. 그 길은 경치가 아름답고 시원시원해 절로 기분이 상쾌했다. 그렇게 30분을 걸어 내려가자 안정치 고개가 나왔다. 지금은 임도가 뚫려 있는 그곳에서 천개산 정상까지의 거리는 불과 900m밖에 되지 않았다.

벽방산 정상에서 안정치로 내려가는 길은 참 아름다웠다.
벽방산 정상에서 안정치로 내려가는 길은 참 아름다웠다. ⓒ 김연옥

ⓒ 김연옥
천개산 정상은 요란스럽지도 산뜻하지도 않는, 그저 평범한 마을 뒷산 같은 분위기였다. 당혹감이 한순간 실망으로 변했다. 나는 곧장 신라 태종무열왕 원년(654년)에 원효대사가 세웠다는 안정사로 내려가기로 했다.

그런데 왔던 길로 되돌아가서 안정사로 내려갔다면 좀 수월했을까. 표지판대로 낯선 길로 그냥 내려갔는데 사람이라곤 도통 보이지 않고 나 혼자뿐이다. 불안, 두려움과 짜증이 뒤범벅되어 울고 싶었던 그 일도 지금 생각하니 우습기만 하다.

소나무와 어우러진 아늑한 안정사에 잠시 머물다

푸른 소나무들과 어우러진 안정사의 아늑한 풍경.
푸른 소나무들과 어우러진 안정사의 아늑한 풍경. ⓒ 김연옥
통일신라 시대에는 1000여명의 승려가 수도할 만큼 큰절이었다는 안정사. 그 절로 들어서면 먼저 조선 시대의 범종(경남유형문화재 제283호)이 눈길을 끈다. 높이가 118cm, 지름이 69cm로 원래 전라남도 담양의 추월산 용천사에서 만든 것인데 임진왜란 때 그 절이 불에 타 버려 안정사로 옮겨 왔다고 한다.

안정사에 들어서자 범종이 먼저 내 눈길을 끌었다.
안정사에 들어서자 범종이 먼저 내 눈길을 끌었다. ⓒ 김연옥
푸른 소나무들과 어우러진 안정사의 풍경은 포근하고 한가하다. 그날 소나무들이 내게 깊은 인상을 준 이유는 안정사에 소장되어 있는 연과 금송패(경남유형뮨화재 제284호) 때문인 것 같다.

조선 영조 때 사도세자의 생모인 후궁 영빈 이씨가 절 주변의 솔숲 관리를 명하는 문서와 금송패(禁松牌)를 연에 실어 안정사 주지에게 보낸 일이 있었다 한다.

안정사 연(輦)은 길이 300cm, 높이 130cm로 사람이 타는 가마가 아니라 큰 불사(佛事)나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불구(佛具), 불경 등이나 그 밖의 귀중한 물건을 옮기기 위한 가마이다.

금송패는 왕실에서 보내는 산림 감시원의 신분증이다. 안정사에는 크기가 다른 세 개의 금송패가 전해지고 있는데 지름이 각각 11cm, 10cm와 8cm이다.

안정사의 해우소에서 근심을 풀었다.
안정사의 해우소에서 근심을 풀었다. ⓒ 김연옥
나는 근심을 푸는 해우소(解憂所)에도 들렀다. 시야가 트인 그 해우소가 기억에 남는다. 몸의 찌꺼기도, 마음의 찌꺼기도 버리는 곳이 해우소이리라. 추운 겨울날 안정사 해우소에 앉아 있으면 정신이 번쩍 들 것 같다.

그날 일찌감치 산행을 끝내고 맛있는 식사, 즐거운 대화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마산을 향했다. 해마다 그 산악회는 시산제를 지내는 날엔 저녁을 함께하고 헤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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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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