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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 답변을 통해 오바마 미 상원의원을 공격하고 있는 하워드 호주 총리
의회 답변을 통해 오바마 미 상원의원을 공격하고 있는 하워드 호주 총리 ⓒ <디오스트레일리안> 인터넷판
고집불통으로 소문난 호주의 '왕보수' 존 하워드 총리와 미국 민주당의 '샛별' 배럭 오바마 상원의원이 이라크전쟁 종료시점을 놓고 며칠 동안 뜨거운 입씨름을 벌였다.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두 정치인 간에 선제공격과 반격, 재반격의 공방이 계속 이어진 것.

입씨름이 가열되면서 급기야 부시 대통령과 하워드 총리의 이라크전쟁 책임론이 불거졌고 불똥은 전쟁초기에 찬성의사를 밝힌 바 있는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에게도 번졌다. 하워드 총리의 오바마 비난발언이 오히려 이라크전쟁 초기부터 반대로 일관해온 오바마 의원에게 도움을 준 셈이다.

더욱 흥미로운(?) 건 '부시의 세컨드 푸들'로 조롱받는 하워드 총리의 굴욕적인 친미외교가 또다시 도마 위에 올라 호주의 신문만평에 그가 '부시를 위해서 짖어대는 개', '목 잘린 수탉' 등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 '부시의 푸들' 원조는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다.

하워드 총리 "부시 비난은 못 참아"

@BRI@논쟁의 발단은 한가롭기 그지없는 호주의 일요일 아침에 불거졌다.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는 <채널9>의 'Sunday' 프로그램에 출연한 '정치 9단' 하워드 총리가 '정치평론 10단'으로 평가받는 로리 오크와의 인터뷰에서 유도질문에 걸려든 것.

로리 오크가 "오바마 상원의원이 지난 10일(미국 시간) 자신의 고향인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에서 2008년 미국대통령 선거를 향한 출사표를 던지면서 2008년 3월까지 미군은 이라크에서 철군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부시대통령을 비난했다"고 언급하자 하워드 총리가 발끈하고 나섰다.

이라크전쟁 뿐만 아니라 테러와의 전쟁 전반에 걸쳐서 부시 대통령과 하워드 총리는 부시 집권 이후 지난 7년 동안 물샐 틈 없는 공조체제를 유지하면서 일사불란한 공동대처로 일관해 왔다. 북핵문제가 거기에 포함되는 건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 과정에서 하워드 총리는 '부시의 세컨드 푸들'이라는 치욕적인 별명을 얻었다.

하워드 총리는 "내가 이라크의 알카에다를 이끄는 지도자라면 달력의 2008년 3월에다 동그라미를 쳐놓고 민주당과 오바마의 승리를 날마다 기원할 것"이라는 위험천만한 발언을 한 것. 오바마 뿐만 아니라 차기집권이 유력시 되는 민주당을 함께 거론했다.

하워드 총리는 이어서 "오바마 상원의원이 엉터리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라크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놓은 테러집단에게 힘을 실어주는 발언을 하고 있다. 오바마의 승리야말로 테러집단의 승리인 셈인데 왜 그들이 오바마를 위해서 기도하지 않겠는가"라고 목소리의 톤을 높였다.

배럭 오바마 미상원의원이 지난 11일 민주당 경선출마를 선언한 다음날 아이오와주 에임스에서 열린 집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배럭 오바마 미상원의원이 지난 11일 민주당 경선출마를 선언한 다음날 아이오와주 에임스에서 열린 집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 EPA=연합뉴스
뜻밖의 호재를 만난 오바마

외국 정치지도자의 그런 발언을 듣고 오바마 의원이 그냥 있을 리 만무했다. 그는 즉각 "하워드 총리는 이라크사태가 그 정도로 걱정스럽고 무슨 뾰족한 수라도 있으면 호주군인을 이라크에 더 파병해서 해결하라"고 서슴없는 반격을 가했다.

오바마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미국은 14만 명이나 이라크에 파병하고 있지만 호주군인은 1400명에 불과하다. 지속적인 전쟁상태가 불가피하다고 판단되면 하워드 총리는 호주군인 2만 명을 추가로 파병해서 임무수행에 나서야 할 것이다. 만약에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하워드 총리의 나에 대한 비난발언은 공허한 수사가 될 것"이라면서 구체적인 숫자까지 들먹였다.

그 당시로서는 위험천만한 '비극'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면서 시종일관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해온 오바마 의원은 "하워드 총리의 비난이 오히려 내게는 칭찬처럼 들린다. 부시 대통령의 친위세력 중에서, 그것도 지구반대쪽에서 나를 직접 공격해주니 일면 우쭐해지는 기분"이라며 하워드 총리를 비아냥거렸다.

실제로 하워드 총리의 비난발언은 오바마에게 여러 가지 측면에서 도움이 됐다. 워낙 민감한 사안이라서 여론의 주목을 끌면서 골칫덩이로 전락한 이라크전쟁 문제를 선거에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게 만들어 준 것. 더욱이 자신보다 한 발 앞서나가는 힐러리 클린턴의 이라크정책도 싸잡아서 비판할 수 있는 양수겸장의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됐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대통령을 꿈꾸고 있는 힐러리 클린턴 의원은 2002년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전쟁을 일으켰을 때 찬성하는 입장에 섰다. 물론 지금은 "부시 대통령이 잘못된 정보로 나와 미국인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었다"면서 자신의 당시 판단을 변명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WMD)가 존재한다는 거짓정보를 과장해서 전쟁을 일으켰다고 비난한 것. 한편 그녀는 최근의 연설을 통해서 "이라크에 미군을 추가로 파병하는 것을 반대하며 2009년 1월까지 전쟁을 마무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워드의 사과를 촉구하는 호주노동당

'푸들' 하워드 총리에게 오바마를 물어뜯으라고 명령하고 있는 부시를 그린 <디오스트레일리안> 만평.
'푸들' 하워드 총리에게 오바마를 물어뜯으라고 명령하고 있는 부시를 그린 <디오스트레일리안> 만평.
하워드 총리는 오바마 의원과의 1라운드가 끝나자마자 호주 국내에서 야당과 언론을 상대로 2라운드를 벌이고 있다. 특히 의사당 대정부 질문 과정에서 야당의 파상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또한 하워드 총리의 친미정책 실상이 친부시정책이었다는 질책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물론 의사당 밖에서였지만 여당 소속의 말 와셔 의원도 "하워드 총리가 말실수를 했다"고 발언해서 하워드 총리를 더욱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한편 미국의 민주당은 물론이고 공화당 소속 의원들로부터도 하워드 총리는 "미국은 우리가 알아서 한다. 자국의 문제나 신경 쓰라"는 모욕적인 핀잔을 들었다.

제1야당인 호주노동당의 케빈 러드 당수는 2월 13일 대정부 질문을 통해 "하워드 총리의 말실수로 호주가 곤경에 처했다. 2008년 집권이 유력시 되는 미국 민주당과의 관계를 위태롭게 만들었으니 즉각 오바마 의원과 민주당에 사과하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나 고집불통인 하워드 총리가 사과촉구를 받아들일 리 만무했다. 그는 오히려 "노동당은 정치공세만 할 것이 아니라 국익을 먼저 생각하라"면서 "과거에 노동당 소속 의원들이 부시 대통령을 악마라고 부르는 등 모욕적인 발언을 일삼았던 것이나 반성하라"고 쏘아붙였다.

하워드 총리는 특히 마크 레이썸 전 노동당 당수의 발언을 예로 들었는데, 그는 "부시는 괴짜(flaky)다. 미국역사상 가장 부적절하고 위험한 대통령"이라고 막말에 가까운 비난을 퍼부은 적이 있다. 하워드 총리한테서 "네가 하면 로맨스고 내가 하면 불륜이냐?"라는 볼멘소리가 나올만한 대목이다.

그러나 이번 논쟁이 난해하기 그지없는 이라크전쟁 마무리시점을 놓고 불거졌고 부시대통령을 비롯한 동맹국 지도자들의 전쟁책임이 동시에 거론됐다는 점에서 노동당이 대충 넘어갈 것 같지 않다. 더욱이 집권하면 호주군인을 철수시키겠다고 오래 전부터 공약한 바 있는 노동당은 이라크문제를 올해 말에 실시될 예정인 호주총선의 최대쟁점으로 삼겠다는 심산이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야당은 3일 연속 대정부질문을 통해서 집요한 질문공세를 펼쳤고 급기야 하워드 총리는 짜증스런 반응을 보이면서 같은 내용의 질문에는 답변을 거부하겠다는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케빈 러드 노동당 당수한테서 "TV공개토론을 하자"는 역공을 당하고 말았지만.

빠르게 추락하는 하워드 총리 지지율

사정이 이렇다보니 10년도 넘게 4기 연속집권을 구가하면서 높은 인기를 누려온 존 하워드 총리의 지지율이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 최근 AC닐슨이 실지한 여론조사의 결과를 보도한 <디 오스트레일리안>에 의하면 총리후보 선호부분에서 하워드 총리가 43%의 지지율을 획득하여 48%를 획득한 케빈 러드 노동당 당수에게 대역전을 당했다.

지난해 12월초에 노동당 당수로 취임한 러드는 당수 업무수행 만족도에서 65%의 높은 지지율을 얻어 차기 호주총리가 될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 불만족은 15%. 반면에 호주역사상 신기록인 5기 연속집권을 노리고 있는 하워드 총리는 총리 업무수행 만족도 조사에서 만족 49% 불만족 44%를 얻었다. 여야 정당 선호도에서도 노동당은 58%의 지지율을 얻어 집권당인 자유-국민 연립여당의 지지율 42% 보다 16% 앞섰다.

호주정치판도는 한국과는 달리 정책위주로 인적구성이 형성되고 철저한 정책대결로 국민의 심판을 받는다. 지난 10여 년 동안 집권해온 자유-국민 연립당과 제1야당인 노동당의 차이점을 대별하면 다음과 같다.

보수 대 진보,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를 지지하는 우파 대 선진복지정책을 추구하는 좌파, 이라크전쟁 강경파 대 온건파, 친미 혹은 친 부시 대 반 부시 등 다양한 분석이 가능하다. 이를 현실정치에 대입하면 우파의 중심에 자유-국민 연립당이 있고 좌파의 중심역할을 노동당이 맡고 있다.

특히 호주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미국과의 통상문제는 명분을 잃더라도 국익을 우선적으로 챙기는 자유-국민 연립당과 국익과 대의명분을 동시에 챙기는 노동당이 필요에 따라서 절묘한 역할분담을 담당하는 것으로 보일 때가 많다.

억측일 가능성이 높지만, 이번 하워드 총리의 발언과 노동당의 비판에도 역할분담의 징후가 엿보인다. <디 오스트레일리안>의 존 엘리엇 워싱턴 특파원의 블로그에 실린 칼럼 '하워드 총리는 사과해야 한다'의 댓글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존 하워드는 사과하지 말고 '조지 부시의 개'가 되어서 계속 짖어라. 그리고 케빈 러드는 하워드의 사과를 계속 촉구하라. 1년 남짓 임기가 남은 부시한테서는 하워드가 챙기고, 그 다음엔 호주노동당이 미국민주당으로부터 챙기면 그만 아닌가? 지난 200년 동안 호주는 그렇게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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