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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 운동의 좌장인 박효종 교수와 '강한 중도'를 제기한 홍윤기 교수.

두 지식인은 최근 이필상 고려대 총장 논문표절부터 지난해 연말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근현대사 대안교과서 파동'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 현안에 대해 성찰적 자세로 대안을 모색했다.

지난 12일 오후 서울 광화문 <오마이뉴스> 본사 5층 회의실에 열린 대담은 대립적으로 날을 세우기보다는 '대안' 위주로 논쟁을 하고 싶다는 양자의 입장이 관철됐다.

두 지식인은 최근 지식사회의 화두가 돼버린 '표절문제'에 대해 지식인 사회의 자성을 촉구하면서 "'아무개 죽이기' 식의 정략적 접근을 배제하고, 대학과 학문사회에 지식의 자기생산구조를 어떻게 만들어나갈 것인지 토론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표절 문제, '아무개 죽이기' 말고 대안을 만들자"

▲ 박효종 서울대 교수.
ⓒ 오마이뉴스 안홍기
박효종 교수는 "학문의 전당에서 논문 표절이 없어야 한다는 대원칙은 시대정신이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과거 한국 지식사회에는 내 것과 남의 것을 확실히 구분하는 잣대가 없었다"며 "자기 글과 남의 글을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던 관행을 고치고, 남의 도움을 받은 것은 인정하는 풍토가 생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표절 문제가 학문사회 도덕의 일환으로 개선되거나 미래를 향한 아젠다를 세우는 게 아니라 흠집내기, 징벌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홍윤기 교수는 "지난 60년간 한국 지식인 사회는 외국지식을 거의 그냥 다 베꼈다"며 "기술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과학이나 인문학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랬다, 우리는 정신적 문화식민지 상황에 놓여 있었다"고 고백했다.

홍 교수는 "표절한 분들에게 뭔가 요구하기 전에 연구자 스스로 지식 생산의 인프라 부족을 철저하게 반성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또 "표절논란이 정략적으로만 논의되고 있다"며 "교수사회의 자기 지식생산구조가 얼마나 허접한지 따지는 투명성기구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어 언론이 책임지고 표절이나 지적 식민주의를 탈식민주의로 끌고 갈 수 있는 여론을 모아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뉴라이트운동의 정치참여와 관련, 박효종 교수는 "정치 참여를 놓고 상반된 찬반 시각이 존재한다"며 "뉴라이트가 정치를 하면 새로운 보수 입장으로 기존 정치꾼과 같은 속물적 근성에서는 벗어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갖고 있다"고 말했다.

홍윤기 교수는 "뉴라이트운동은 굉장한 딜레마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라이트'를 강조하는 경우는 '올드라이트'와 구분이 안 되고, '뉴'를 강조하는 경우에는 '중도'에 가까워진다는 것. 그는 "한국사회에서 뉴라이트는 자기 정체성이나 콘텐츠를 갖기 어렵다"며 "차라리 강한 중도를 주장하는 편이 낫지 않겠냐"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답을 아낀 박 교수는 "'뉴'의 정체성을 찾는 것은 끊임없는 과제"라며 "스펙트럼이 다양하기 때문에 모든 걸 아울러야 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박효종 서울대 교수(국민윤리학)와 홍윤기 동국대 교수(철학과)의 대담 전문이다.

"'라이트' 강조하면 '올드'하고, '뉴' 강조하면 '중도'가 된다"

▲ 홍윤기 동국대 교수
ⓒ 오마이뉴스 안홍기
- 이달 말 초중등 교육과정이 개편된다. 교과과정 개편논의가 졸속으로 치닫고 있다는 비판이 있는데 어떻게 보나.

홍윤기 "지난 2년간 현장 교사·교수들이 모여 바람직한 교과서 만들기에 대해 토론했다. 나름대로 진보적인 전교조까지 참여했다. 이 사람들은 특정 학맥이 국정교과서 집필을 25년간 독점했던 걸 검인정으로 풀자고 얘기를 해왔다. 그런데 최종보고서를 내는 단계에서 교육부가 전체 콘셉트를 흔들었다. 교육부가 요식적으로 교과서를 심의하려고 하고, 논의되지 않았던 의제를 교과과정 개편에 끼워넣으려고 하기 때문에 대혼란이 온 것이다."

박효종 "상당히 자율적으로 논의가 이뤄졌는데, 교육부가 갑자기 현장과 조율하지 앟은 상태에서 '위로부터의 지시'를 내렸다. 교육부가 처음부터 필수 교과목이나 국정·검인정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더라면 현장과 조화로운 논의가 있었을 텐데 아쉽다. 새로운 안을 들고 나와서 주장할 때는 좀더 시간을 갖고 의견을 수렴했으면 좋겠다. 위와 아래의 조화 과정이 막판에 혼란돼 유감스럽다. 교육부가 책임있는 자세로 임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홍윤기 "교육부도 자기 의견을 가질 수 있다. 옛날처럼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은 문제다. 검인정으로 교과과정을 개편한다고 '바람을 잡아왔는데' 막판에 태도를 바꾸면 어떻게 하나. 처음부터 5개 교과군을 7개로 늘렸으면 모르겠는데, 이제 와 이러면 뜬금없다. 현 정부의 국정운영이 미숙하다고 욕먹는 이유가 바로 이런 데 있다. 선진정부가 할 의사결정방식이 아니다."

"서구 지식 베낀 한국사회는 정신적 식민지"

- 이필상 고려대 총장의 논문표절 문제가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박효종 "논문은 학계에서 등뼈 역할을 한다. 논문 표절이 없어야 한다는 대원칙은 시대정신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국 학계에서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컸다. 서구사회는 표절 기준이 엄격해서 하다못해 '자기표절'까지 비난받는데, 지적재산권이나 창의성의 콘셉트가 서구와 다르다. 관행으로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고 할 정도이니, 아이디어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앞으로 자기 글과 남의 글을 엄격하게 구분해서 남의 도움을 받는 것은 인정하는 풍토가 생겨야 한다. 표절에 대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을 시대의 흐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홍윤기 "한국사회는 발전된 서구사회 지식을 빠른 시간에 받아들였다. 외국지식, 특히 미국이나 유럽의 지식을 그냥 거의 다 베꼈다. 기술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과학이나 인문학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랬다. 급격한 지식 수입에 따라 우리는 정신적 문화식민지 상황에 놓여있었다. 이걸 빨리 탈피해야 한다. 그런데 내부 인프라가 별로 없다.

이런 역사적 한계를 들여다보고 표절논란을 들여다보자. 지식사회의 대안이 있나? 표절한 분들에게 뭔가 요구하기 전에 지성의 자기생산 인프라 부족을 철저하게 반성해보자는 거다. 표절 척결을 위한 대학·연구사회의 지적 인프라 향상으로 논의가 확장되지 않고 있다. 교수사회의 자기 지식 생산구조가 얼마나 허접한지 따지는 투명성기구가 섰으면 좋겠다.

모든 걸 정략적으로 접근하니까 문제가 안 풀린다. 언론이 책임지고 여론을 모아달라. 과학이나 공학 같은 경제적 관심 때문에 얘기되나 인문학 사회학까지도 지적 인프라를 갖춰달라."

박효종 "표절문제가 흠집내기, 징벌적인 효과로 나타나고 있다. 정략적인 차원에서 문제가 제기되면 해법은 찾기 어렵다. 아무개 죽이기 식의 정략적 접근이 아니라 지성의 발전이라는 방향성을 갖고 인프라를 고민할 수 있다."

홍윤기 "표절 문제는 당연히 극복해야 한다. '황우석 사태'도 결국 연구윤리 문제였다. '학술발전 대토론회'를 열어서 과거의 때도 씻고 대안도 만들어야 한다. 이필상 총장의 표절 문제도 이 차원으로 풀어야 한다. 대학 자체의 노력도 좋지만, 학술 발전이 필요하다."

"뉴+라이트,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 박효종 서울대 국민윤리학과 교수
ⓒ 오마이뉴스 안홍기
- 유석춘 교수 등 뉴라이트 진영이 한나라당과 연대하는 등 정치권과 밀접하다. 뉴라이트와 한나라당과의 관계를 어떻게 봐야 하나.

박효종 "뉴라이트의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정당정치와 마찬가지로 몇 가지 성향으로 나뉜다. '적극 참여하자' 주장부터 '정치적 중립을 지키면서 외곽에서 지성적인 뉴라이트로 남겠다'는 주장도 있다. 소신에 따라 정치에 대한 선택을 하게 될 것 같다. 그래도 '뉴라이트'라는 정체성을 가지니까 새로운 보수, 새로운 정치를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치꾼과 같은 속물적 근성에서는 벗어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갖고 있다."

- 박 교수는 정치할 생각 없나.
박효종 "정치참여보다는 정치를 평가하는 '평론가' 기능도 중요하다고 본다. 문학도 마찬가지 아닌가. 평론가도 필요하기 때문에, 정치에서 이런 역할도 중요하다고 본다."

홍윤기 "뉴라이트운동은 굉장한 딜레마에 빠졌다. '라이트'를 강조하는 분들은 '올드라이트'와 구분이 안 된다. '뉴'를 강조하는 분들은 '라이트'라기보다는 중도에 가깝다. 간혹 뉴라이트 하는 신지호씨를 만날 기회가 있는데, 요즘 자꾸 '자유주의'라는 말을 많이 쓴다. 뭔가 내세워야 하는데, '자유주의' 역사가 만만치 않으니까 이 또한 고민인 모양이다. 한국사회에서 '뉴라이트' 자체가 자기 정체성이나 컨텐츠를 갖기 어렵다.

노무현 정부를 좌파정부라고 하지만 사실 얼치기 진보에 가깝다. 진보담론을 망쳐놓고 신자유주의 담론으로 정책을 추진해 사태를 악화시킨 책임이 있다. 기존의 좌파정책도 실현하기 벅찬데 거기에 '뉴'까지.

차라리 강한 중도를 만드는 것은 어떻겠냐. 중도는 그동안 정치권에서 뭔가 잘 안되는 분들의 기회주의 담론이었다. 얼치기 실용주의가 아니라 가치 극대점으로 모색하는 중도의 사고가 필요하다. 뉴라이트 대신 강한 중도를 만드는 데 나서시면 어떻겠나."

박효종 "'뉴'의 정체성을 찾는 것은 끊임없이 계승할 과제다. '뉴아이디어'든 '뉴페이스'든, 과거와는 달라져야 하겠다. 정치도 달라지고 시민사회도 선진화한다. 정체성 문제는 과제다. 나름대로 괜찮은 용어를 일궈가는 것이라고 생각한 게 '뉴'와 '라이트'다. '뉴라이트'는 스펙트럼이 많기 때문에 모든 걸 아울러야 하는 측면이 있다. '뉴라이트'라고 해서 생각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근현대사 교과서,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

- 지난해 교과서포럼이 근현대사 교과서 문제로 홍역을 치른 바 있다. 당시 근현대사 대안교과서를 만들기 위한 토론회도 열었는데, 현행 근현대사 교과서의 문제점은 뭐라고 보나.

박효종 "한국 근현대사가 아픈 부분이 있는 반면 자랑스러운 부분도 있다. 후대에게 균형잡힌 시각을 가르쳐줘야 한다. 현행 6종 근현대사 교과서 중 건국·산업화에 대해 인색하고 비판적인 반면, 민주화에 대해서는 많이 평가하고 있다. 이에 뜻을 같이하는 교수들이 모여 현행 교과서에 대한 반론의 형식으로 만들어보자는 뜻으로 몇 번의 토론회를 개최했다."

홍윤기 "건국·산업화·민주화를 관통하는 긍지가 있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이 부분은 분단·계급화·불안정으로, 민주화와 더불어 세계화라는 반대상이 있기 마련이다.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건국했던 아픔을 일방적으로 미화·부정하면 큰 문제가 된다. 산업화도 30년간 비호해오지 않았나. 너무 오래 한 것 같기도 하다(웃음). 민주화도 그동안 너무 부족했던 것이 문제이지 결코 과잉이 문제는 아니었다.

여러 문제가 많음에도 우리는 중진국 가운데 상위 발전국이 됐다. 나름대로 냉철한 자기비판, 근거있는 자신감을 후대에게 정확하게 알려줘야 한다. 교과서가 거짓말이나 자학의 도구가 돼서는 안 된다. 교과서문제를 통해 지식인들이 국민 불안을 야기하는 분열상을 보일 필요도 없다. 잘못하다가는 정신분열 양상도 보이게 된다."

▲ 홍윤기 동국대 철학과 교수.
ⓒ 오마이뉴스 안홍기
박효종 "우리의 역사 가운데 찬란했던 부분과 어두웠던 부분이 감춰져 있다는 걸 전제로 하는 것이다. 후대 교과서라면 뭐든 공정하게 반성해야 할 것은 반성하고, 자신감 줄 수 있는 것은 자신감을 주는 게 세계 11대 경제대국의 수준이다. 찬란했던 역사와 어두웠던 역사 전체를 아우르는 비전이 필요할 것 같다. 학계의 치열한 토론이 필요하다."

홍윤기 "5·16 군사쿠데타를 혁명으로 미화하는 것은 상당히 곤란하다. 박정희 대통령 집권으로 대한민국에 많은 이득이 있었다는 것은 누가 부인하겠나. 그러나 그걸로 박정희 대통령의 모든 걸 신성시하는 것은 후대에 도움이 안 된다. 냉철하면서도 공정하게 보겠다는 게 있다면 당연히 그렇게 기술해서 넘겨주는 게 어떠냐."

박효종 "5·16혁명 등에 대한 기술은 단순히 하나의 안이었고, 토론거리였다. 최종안이 나오려면 시간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나 찬란했던 부분과 어두웠던 부분을 모두 아우르는 방향으로 논의하고 있다. 이영훈 교수가 책임자로 활동하고 있는데 너무 조급하게 하는 것도 좋지 않다."

"한일도 공동교과서 만드는데, 한국 내에서 못 만드나"

- 진보쪽에서도 대안교과서가 필요하다는 입장인가.

홍윤기 "우선 나한테 진보라고 하면 어색하다. '진짜 보수가 보기에 진보'라면 몰라도(웃음). 우리나라에 진성진보나 진성보수는 없다고 본다. 얼치기 진보, 얼치기 보수라고 생각한다.

세계화'라는 도전 앞에서 미뤘던 과제가 많다. 통일도 생각해야 하고, 주변국이나 성숙한 민주시민으로서 정체성을 지키려면 할 일이 많다. 솔직히 교과과정이 가슴을 확 트이게 하는 데는 부족하다. 많은 책임은 교수들이 져야 한다. 진보·보수 어느 쪽의 교과서가 아니라 대한민국을 위한 '대안교과서'는 정말 필요하다."

박효종 "교과서는 성경과 같다. 정책에 있어서는 진보와 보수가 나뉠 수 있지만 후대를 위한 고민에서는 같이 가는 게 정상이다. 역사학계에 진보와 보수가 함께 논의하는 장이 없는 게 유감이다. 앞으로 다른 분야에서도 그와 같이 어우르는 움직임이 나타나면 역사학계도 대화들이 가능하지 않을까."

홍윤기 "한일공동 역사교과서는 아주 좋은 시도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도 대안교과서가 나오는데, 한국 내에서 못 나온다면 참 갑갑하다. 국가간 가능한 일을 국내에서 왜 못하느냐. 한번 과시할 필요가 있다."

▲ 박효종 서울대 교수와 홍윤기 동국대 교수는 12일 오후 서울 광화문 <오마이뉴스> 5층 회의실에서 '교육개혁과 근현대사 교과서'를 주제로 한 대담에 참여했다.
ⓒ 오마이뉴스 안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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