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광주 북구청의 2004년부터 2005년까지의 기관업무추진비 등의 지출결의서를 분석해 별도로 정리한 자료. 자료에 따르면 북구청은 홍보성 기사를 쓴 해당 기자와 언론사에 사례비를 준 것으로 기재돼 있다.
광주 북구청의 2004년부터 2005년까지의 기관업무추진비 등의 지출결의서를 분석해 별도로 정리한 자료. 자료에 따르면 북구청은 홍보성 기사를 쓴 해당 기자와 언론사에 사례비를 준 것으로 기재돼 있다. ⓒ 오마이뉴스 강성관

'인물마당 10만원, 지방자치판 20만원, 민선3기취임2주년 130만원, OOO매거진 20만원, 신년특집 20만원.'

한 지방자치단체 단체장이 각종 치적이나 홍보성 기사를 보도한 언론사 기자 등에게 '보도 사례비'를 건넨 것으로 드러났다.

14일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광주광역시 북구청은 명절 떡값 등 일반적인 의미의 '촌지' 성격을 넘어서 해당 기사나 TV 프로그램의 보도에 대해 단체장의 업무추진비에서 사례비를 준 것으로 나타났다. 지출 기간 등에 비하면 많지 않은 돈으로 볼 수도 있지만, 주민들의 혈세가 행정기관이 출입기자들을 '관리'하는데 부적절하게 사용된 것이다.

이는 행정기관과 언론의 부적절한 관계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비난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홍보성 기사에 '혈세'로 사례비 건네

이승희(민주노동당) 북구의회 의원이 2004년부터 2005년까지 북구청의 '기관업무추진비 및 시책업무추진비' 지출결의서를 분석한 자료에는 날짜, 해당 언론사나 기자 이름, 지급된 액수, 명목 등이 상세히 적혀있다. 이 의원이 분석한 지출결의서에 기재된 부분은 순수하게 현금으로만 지출된 업무추진비로 다른 행태의 촌지는 제외된 것이다.

이 자료에 따르면, 북구청은 당시 김재균 구청장이 사용한 업무추진비 중 1830만원을 모두 73차례에 걸쳐, 23개 언론사와 북구청 출입기자단, 광주시청 출입기자단 등에게 10만원에서 130만원까지 각종 명목으로 지급했다.

그 동안 '단체장 인터뷰 기사에 한 지면을 할애하면 몇 십만원'이라는 보도 사례비 관행에 대한 소문은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확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눈에 띠는 부분은 각 언론사들의 기사 꼭지마다 사례비 명목으로 돈이 건네졌다는 것이다. 한 언론사의 '인물마당판'에 10만원, '지역기업을 키웁시다'는 10만원, '지방자치판'은 20만원, '문화주역 전라도 2030'에는 10만원, '자치단체장 릴레이 인터뷰'는 10만원, '사람 그리고 세상'에는 30만원이 지출됐다.

한 라디오 방송사에는 편성 프로그램에 대해 10만원에서 20만원이 지출된 것으로 기재돼 있고, 한 케이블 방송사 역시 편성 프로그램이나 신년특집 명목으로 20만원을 몇차례 받았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또 광주·전남지역이 아닌 마산지역 한 방송사에도 '주요시책 프로그램 제작 관계자 격려금' 명목으로 20만원을 건네기도했다.

가장 많은 돈이 오간 것은 구청출입기자단과 기자들의 체육대회 등 각종 행사 지원금이다. 지난 2004년 6월에는 '민선3기 취임 2주년'을 기념해 구청 출입기자단에게 모두 130만원의 촌지가 건네졌고, 같은 해 '그린시티 선정' 기념으로 100만원이 건네졌다. 또 지난 2005년에는 구정 주요시책 홍보를 명목으로 광주시청 출입기자단에게 180만원, 언론사 편집국장단에 100만원을 지출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게다가 어떤 경우는 구청과 상관도 없는 해외 특별 취재와 한 언론사의 창사 기념행사를 명목으로 10만원에서 20만원이 건네지기도 했다.

언론사별로 받은 횟수와 규모는 천차만별이다. 특히 방송사의 경우 거의 한차례씩 받았지만 일부 지방지는 9차례에 걸쳐 150만원을 받았고, 또 한 곳은 6차례에 걸쳐 90만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언론사의 경우는 몇 곳만 언급됐다. 한 차례도 언급되지 않은 지방지도 있다.

"언론사가 부적절하게 받은 돈 환수해야"

자료에는 단체장 취임 등을 기념해서 출입기자단에게 촌지를 건넨 항목도 있다.
자료에는 단체장 취임 등을 기념해서 출입기자단에게 촌지를 건넨 항목도 있다. ⓒ 오마이뉴스 강성관

지출결의서 분석을 지켜본 안영돈씨는 "지출결의서를 일일이 확인하고 해당 항목과 언론사 등을 별도로 정리한 것"이라며 "업무추진비가 제대로 사용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또 한번 확인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출결의서를 보면 보도 사례비로 지출이 된 것으로 보이고 관행적으로 주어지는 촌지도 있는데 주민 세금이 이렇게 사용되어서는 안된다"며 "관행적으로 돈을 건넨 구청도 문제지만 언론 스스로도 자정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승희 의원은 "업무추진비의 경우 어디에 사용됐는지 정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언론사가 부적절하게 돈을 받았다면 다시 환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지난 12일 29개 언론사에 '실제 해당 언론사와 기자가 사례비를 받은 일이 있는지, 받았다면 주민 세금이 제대로 사용되지 못한 것인데 반환을 용의가 있는지' 여부를 묻는 공문을 우편으로 전달했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일부 언론사에서 공문을 받았다면서 문의하는 전화를 받았다"고 밝혔다.

북구청은 해당 자료에 대해 명쾌한 해명을 하지않고 있다. 북구청 한 관계자는 14일 저녁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답답하고 한탄스럽다"면서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느냐, 할 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대한민국 어느 기관이나 업무추진비 중 홍보와 관련해 지출을 하고 있고, 다른 구청도 같은 사항"이라며 "도가 지나친 것은 아니고 일반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부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다, 기사를 썼다고 사례비로 준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대놓고 눈치주는 기자들도 각성해야"

지출결의서에 보도 사례비를 받은 것으로 기재된 한 기자도 "보도 사례비는 아니다, 관행적으로 받은 촌지"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일간지 기자는 "관행이라면서 큰 문제를 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주고 받는 것이 안타깝다"며 "어떻게 보면 큰 돈이 아니라고 해서 눈감을 수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자들 스스로가 (촌지를) 받지않는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도 사례비와 촌지 제공에 대해 전남지역의 한 기초단체 홍보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공무원은 "솔직히 곤혹스러운 때가 있다"며 "대놓고 보도사례비를 달라고는 하지 않지만 '이번에 기획 한번 하자'면서 눈치를 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경우에는 신년특집이나 단체장들 릴레이 인터뷰을 하면서 치적이나 홍보성 내용으로 해서 기사 한번 만들어보자고 말한다"면서 "이게 돈을 좀 달라는 사인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어쩔 수 없이 줘야하는 경우가 있다, 모든 기자들이 그렇지는 않지만 관행이 된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